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떡 Aug 23. 2024

더 이상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난 언제나 방구석 슈퍼스타였다. 장녀로 태어난 덕분에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외가에서는 유일한 여자 손주였고 친가에서는 20년 만에 태어난 귀염둥이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나를 향한 집안 어른들의 선물 공세썰이 도시괴담처럼 전해진다. 시골 농부이신 큰아버지는 신생아인 나를 위해, 당시 정읍 시내에서 가장 비싼 유모차를 사 오셨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고가의 유모차는 집에 배송되자마자 엄마가 바퀴를 부러뜨려서, 큰아버지께서 눈물을 훔치셨다는 이야기.


지나친 사랑과 관심은 사람을 망나니로 만든다. 보다 못한 부모님의 제지로 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기는 4살에 마무리된다. 밥을 먹다 문뜩 화가 난 4살의 내가 아빠한테 유리잔을 던져버린 것. 결국 엄마, 아빠는 나의 독주를 막기 위해 동생을 데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집안이 별이었다. 학구열이 남다른 엄마 덕에, 공부도 꽤 열심히(잘) 했기 때문. 똑똑하고 순했던 과거의 나는, 의도치 않게 친척들의 비교 대상이 되어 어른들에겐 관심을, 언니와 오빠들에겐 눈총을 받았다. (성실한 것 빼곤 재능이 없던 나와 달리, 다양한 재주를 보유했던 사촌들은 나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


아무튼 그런 내가 K 장남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시댁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구나. 우리 부모님처럼 시부모님께도 자신의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구나. 당연한 진리임에도 우주 최강 관종인 나에겐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시댁에서 나는 내가 아닌, 장남의 아내로 비춰지는구나. 고유한 나로 인정받기보단 장남의 아내로, 언젠가 태어날 손주의 엄마라는 역할로 살아가겠구나. K 장녀 유부녀들은 모두 이런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지난주 시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했다. 남편 회사의 현황, 보너스, 남편의 성취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우리 엄마도 친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