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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내 편, 네 편

우리들의 '편 가르기'(갈라 치기)와 작은 '우리'만을 위한 '팬덤' 정치

내 편이냐?’ vs ‘네 편이?’

합참의장의 결기, 외교 장관의 노련함

자존심과 무관심


우리들의 '편 가르기'(갈라 치기)와 작은 '우리'만을 위한 '팬덤' 정치

'우리'가 되려면 여기에는 분명하게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과정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는 마치 개들이 서로 ‘킁킁’ 거리며 냄새로 상대를 확인하듯이… 통성명이 끝나면 나이, 고향, 출신학교로 서열을 정하고, 상하좌우 ‘서로의 관계’를 확인한다. 이제, 평소에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이라도, ‘우리’라는 틀 안에서 서로 만나, ‘우리’ 사이의 관계가 설정되고 같은 편으로 ‘얽히면’, 서열이 정해진 구조에 ‘정'과 '의리’를 더해가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구성원 상호 간의 관계는 더욱 탄탄해지고, 그 다음부터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남이가..?’를 내세운 검찰 간부로 부터 조폭들에 이르기까지 그런 모습을 익히 보아왔다.


반면에, 이런 ‘관계’도 없이 ‘우리’라는 틀 밖의 ‘남’이나, 평소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태도는,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인사는커녕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하다. 문제는, 이 냉랭함에 사상이나 이념이 개입하면 ‘남’은 손쉽게 바로 ‘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적인지, 아군인지?’로 관계가 식별되면, 그때부터는 ‘적’에게 죽기 살기로 적대하는 말과, 폭력으로 공격을 가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과거, 같은 민족이고 피를 나눈 동포였고, 서너 명만 거치면 아는 사이가 되지만, 이념이나 ‘생각이 다르다’고 ‘적’이라며, 총을 겨누며, 서슴지 않고 서로를 죽였던 '동족상잔'의 아픔을 가졌다. 6.25 전쟁 때 공산군이나, ‘여순반란’ 반군이 우익 인사나 그 가족에게 행한 악행은, '종교' 차이로 '인종청소'를 했던 사례와는 비교조차 안 된다. 


이처럼, '이념적 차이‘에 의한 증오의 휘발성은 예측을 불허한다. 그런데, 잊혀 가는 '이념대결'의 망령을 되살리는 게 누군가에게 정치적 이득이 되었을까? 온갖 번지르르한 논리로 상대에 대한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되었다. 불평, 불만이 팽배했던 이들도 정치인들이 부추기는 논리에 마음껏(?) 춤을 추었다. 과거, 어떤 정권의 반정부 데모대는 죽창을 만들어 시위를 제지하는 경찰의 눈을 노렸고, 데모대의 폭력은 시가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하였다.


국가적 사안의 논의나 비전도 유사하였다. '우리끼리'에 집착하는 우리 정치권이나 일부 지식인들은 국가적 사안을 서로 논의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보다, 집단별 정치적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명분논리에 집착한다. 그리고, 힘으로 밀어 부친다. 하지만, 이런 오만한 '패거리' 정치인들의 행태를 외면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썩어 문드러진 병폐는 가만히 둔다고 저절로 아무는 게 아니다. ‘행동하는 소수’에 의해서라도 보이는 족족 도려내어야 사회가 건강하고 나라도 건전해진다. 


그런데, '행동하는 소수'를 표방한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에게 '이념적'으로 동조하는 '우리 편'세력을 비호하기 위해 폭력적 언어와 행동으로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격대상인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인격을 모욕하는 일조차 서슴지 않는다. 그게 '우리'를 위한 일이라고 믿는걸까... 이처럼, 악성 팬덤이 '표현의 자유'라는 탈을 쓰고 기승을 부리지만, 기성 정치권은 속수무책이다. '우리'라는 '동지적' 표를 의식해서이다. 하지만, 맹목적인 이들이 더욱 확장되고 흉폭화 되어간다면, 우리 사회의 자정력은 힘을 잃을 것이다. 


역사에서 보듯, 소수의 '무솔리니'의 이태리 파시스트들이 반대파에게 공포스러운 테러를 가하면서 성장하였고,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이념화된 홍위병 집단이 사회전체를 폭력으로 뒤집어 엎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특별히, 이미 엄청난 전쟁을 경험한 우리에게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지'를 위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팬덤 정치'의 폭력적이고 편파적인 언행은 또 다른 '우리'라는 '패거리' 관계주의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팬덤 정치'는 과거 누구의 말대로 무슨 '선거판의 양념'도 아니고, 또 다른 누구의 말대로 '세계의 주목'을 받을만한 일도 아니다. 이들은 그저, 일부 정치인의 편향된 이념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정치 세력일 뿐이다. 


택시기사 분신자살 (출처 경향신문)

 언젠가, 한 택시기사가 국회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였다. 그를 우파인사로 여긴 좌파 국회의원 보좌관은 분신으로 죽은 자를 ‘통구이’라며 버젓이 조롱하였다. '편 가르기'를 장기로 삼는 일부 정치인이나 그 정당을 지지하는 특정세력이 반대파의 언행이, 자신과 입장이나 관점과 다르다며 적개심에 가득 찬 '문자 폭탄'을 날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최근, 진영 간, 계층 간, 빈부 간, 세대 간, 남녀 간 갈등과 '갈라 치기'는, 위험 수위에 달했다. 이처럼, 정권을 누가 잡든 서로에 대한 적의는 현재진행형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우리 사회에서 갈등과 증오에 대한 치유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내 편이냐?’ vs ‘네 편이?’

‘할 바(할랄)’와 ‘안 할 바(할렘)’를 가리는 무슬림도 우리처럼, 누군가를 대할 때는 반드시, 내 편이냐? 아니냐? 라는 ‘편 가르기’를 한다. 이는 같은 신을 믿는 이슬람 종교의 영향도 있지만, 유목민의 전통이기도 하다.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를 통합하여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교도)’와 ‘다르 알 하르브(이교도)’의 구분 선을 날카롭게 긋는다. 그래서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 적응하는데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런대로 어울려 살아가지만, 이슬람교도는 타 종교를 믿는 집단과의 화합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느낀다. 이는 이슬람의 전투성, 화합 불능성과 비 이슬람교도와의 물리적 근접성 등의 지속적인 특성 때문이다.」 (‘문명의 충돌, 샤무엘 헌팅톤, pp359 - 360)


이처럼, 처음부터 낯선 이들을 ‘같은 편’이나 ‘다른 편’으로 갈라놓다 보니, 저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평소에도, 아는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비즈니스에서는 이들과 얼굴을 터는 것이 어렵지, 한번 트고 나면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한국인에 대한 일반 무슬림의 생각은 ‘같은 편’에 가깝다. 역사상 한 번도 저들의 정치에 간섭하거나, 이해관계로 다툰 적이 없고, 종교에 관대하고, 원조나, 한류문화, 경제성장 등 좋은 이미지 탓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들은, ‘같은 편’으로 간주하면 먼저 선물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많은 중동 아랍국 지도자는, 우리를 ‘같은 편’으로 여겨서, 무슨 일을 하려면 선물을 요구한다. 저들이 선물을 요구하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것이니,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따라서, 아랍권 외교에서는 대통령이나 장관부터 실무자들까지 선물을 요구해 오면, 화내지 말고 대응을 슬기롭게 해야 한다. 


특히, 이집트 같은 후진국은 자국의 지리적, 정치적 중요성을 큰 흥정거리로 여겨 국제 관행이나 규범보다, 개인이나 패거리 이익추구에 집착하는 편이다. 우리가 선물을 주면 독재정권의 충성 유도에 사용하는 식이다. 그런 부분을 떠나서, 선물에 대한 저들의 감성적인 정서를 이해하여 얼마만큼의 선물을 주고서라도 적극적으로 만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 현장의 분위기 파악이 중요하다. 


합참의장의 결기, 외교 장관의 노련함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아랍권은 벌집을 쑤신 듯 격렬하게 반발하였고, 각종 테러 단체는 '미국 주도 다국적군'에 참가하는 국가에 대해 테러 위협을 쏟아내었다. 이 와중에 한국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였다. 석유 수입으로 아랍권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동맹국인 미국의 파병요청에 응해야 했다. 


정부는 한국군 파병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려 외교, 국방, 산자부 인사들로 아랍권 15개국 순방을 계획하였다. 국방부도 K 합참의장이 사우디, 이집트, 터키를 방문하는 것으로 정해져, 필자는 이집트 국방부와 방문 일정을 협의하였는데, 뜻밖에 선물 교환문제가 불거졌다. 


이집트는 자기네 장관이 한국 합참의장에게 이러, 이러한 선물할 예정이니, 우리 측 선물내역을 알려 달란다. 국방부에 확인하여, 이러, 이러한 선물을 준비한다”라고 했더니, 이집트 담당실장은, “그런 것보다 S전자 휴대폰 000대를 주면우리 국방장관이 매우 유용하게 쓸 것 같다”라고 노골적으로 자기네 바람을 드러내었다. 당시, 아랍어판 S전자 휴대폰은 대당 $6~700의 고가품이나,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은 제품이었다.


필자가 난감해하자, 보고를 받은 C 대사는 마침, 이집트를 방문 중인 S전자 Y 부회장과의 공관 만찬행사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이라는 서두를 꺼낸 Y 부회장은, “자신들이 국가를 위해 기여할 좋은 기회인 동시에자신들의 회사를 홍보하는 좋은 기회로 여겨 기꺼이 그 물량을 제공하겠다”라고 무관에게 약속하였다. 


그 약속을 듣고 내심 다행이라 생각한 필자가 우리 국방부에, 이집트가 선물을 요구하는 건 “같은 편으로 인식(?)하기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아랍의 정서를 설명하면서, 필요한 선물은 S사가 지원한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합참의장은 S 전자의 제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몰상식한 아랍 X으로 노발대발하며 당장 이집트 방문을 취소하라고 지시하였다. 아마, 이집트 정도의 후진국은 합참의장 관심 밖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편이 되겠다”는데 박차 버렸다. 결국, 국방부는 일체의 외부 도움 없이 주어진 출장비 내에서 선물하겠다며, 합참의장의 이집트 방문을 곧바로 철회하여 버렸다.


그러자, 중동에서 이집트의 비중을 잘 아는 외교부는 B 외교부 장관이, 이집트 대통령을 예방하도록 협의하였다. 지난번처럼, 이집트 대통령실에서 자국 외교부를 통해 국방부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난민 지원용으로한국 자동차 000여 대를 제공해 달라는 제의를 우리 장관 방문 전에 제시하였다. 이번에는 자동차였다. 고위층으로 갈수록 명분도 거창하고 단위도 커진다. 그리고, 교묘하게 얽어맨다. 필자는, ‘휴대폰’으로 막을 일을 ‘자동차’로 막는 상황이 아닌지? 걱정했다.


얼마 후, B 외교장관은 이집트 대통령을 예방하였다. 우리 정부가 이집트와 어떻게 조율하였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은 이집트가 요구한 자동차나 휴대폰을 주지 않았고, 이집트도 한국군 이라크 파병에 별 반응이 없었다. 아마, 외교관으로 오래 다져온 국제외교 경험과 리더십으로 외교적 맥락을 잘 짚고 성과를 낸 것 같다. 


반면, 합참의장은 군인으로서 '강직한 결기(?)'는 대단했으나, 공인으로서 국익을 위해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유연성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어쨌든, 순방은 끝났지만, 이집트의 떼쓰기(?) 외교에도 국제적 배경이 ‘있는 분’과 ‘없는 분’ 간의 외교적 대응에는 차이가 많았다. 


그런데, 서구인은 무슬림과 달리, 누군가가 접근해 오면 처음부터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구분하기보다, 상대의 반응이나 행동을 지켜보며 '유익'에 따라서 ‘같은 편’을 정하는 편이다. 그리고, 같은 편이라고 무슨 대단한 편애를 하기보다도, 지킬 것은 최대한 지켜주며 이익을 나누는 정도라 할까? 이런 모습은 서구의 ‘나’ 중심 사회에서는 개개인 모두가 독립적인 인격을 가지고 ‘합리성’을 추구하며 서로의 관계에 따라 접촉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합법성'과 ‘개인의 유익’이 중요한 잣대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50여 년 간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는 독특하게도, 무슬림처럼 적과 아군을 미리 판단하여 '좋은 고객'과 '나쁜 고객'으로 상대를 나누어 대했다고 한다. 선입견이나 편견이 갖는 위험성을 몰랐을까? 다만, 둘 간의 차이점은 무슬림은 당연하든 말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절대로 바꾸려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당연한 것’에 대해서도 항상 “Why (왜)?”라는 질문으로 당연한 ‘가정 (Assumption)’을 파괴하고, 모두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데... 어쨌든, 피아로 나눈 것은 나눈 것이다.   


자존심과 무관심

아랍 연맹 회의장

'카이로'에 본부를 둔 ‘아랍연맹’은 매년 회원국의 정상회담을 개최하지만, 회의에서 외교적 성과를 내겠다고 노력하기보다, 거의 '보여주기' 식이다. 매년 정상들은 회의 도중 친미, 반미 발언 등을 반복하다가 서로 간에 다투고, 감정이 상해서 TV 중계 앞에서도 개인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도대체, 지도자에 걸맞은 교양이 없어 보였다. 윗물이 이러니, 아랫사람도 개인 '감정 표현'에 별다른 자제력이 없어 보인다. 굳이, 아프간, 이라크 사태를 언급하지 않아도 무슬림 고위 장교들은 여전히 반미 성향이 강하다. 더구나, 이들이 물질보다 자신들의 체면, 그리고, 신앙적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둔다는 사실에 소홀하였던 미국은 많은 돈을 들이고도 저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오래전, 필자가 다닌 미국 국방언어학교는, 유럽, 일본, 한국 등 자국 정부가 주는 생활비로 지내는 장교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미국 정부의 원조로 생활비를 받는, 군사원조 수혜국 장교로 구성되어 있었다. 덕분에, 원조받는 이들이 매주 화요일마다 생활비를 받으러 가느라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하였다. 그런데, 가끔씩 경리부에서 돈을 받을 때, 일부는 '장교'라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돈을 나누어 주는 미군 병사의 태도가 불손하다며 분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서도 음식이 공짜라며 수북이 가져와서 남기거나, 갖고 나가는 등 좀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를 말리는 식당 계산대 '아줌마 (Cashier)'의 태도가 거만하다며 반발하며 언쟁을 벌이거나, 반미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부분 중동,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일부 미군 병사나 종업원은 이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였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장교식당 벽면에는 아랍어 등 수많은 외국어로 뭔가를 잔뜩 써 놓은 글들이 많았다. 아랍 장교에게 그 뜻을 물어보니, 대부분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이라 해서, “원조받는 처지에 무슨 비난은” 이라며 어줍지 않게 생각했다. 당시, 미군 병사나 식당 아줌마 등 미국인 소득은, 후진국 장교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니, 저들의 눈에 비친 외국 장교는, 작은 돈이나 음식에 집착하는 '무지하고 교양 없는' 인간으로 무시나 경멸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득이나 교양 수준은 상대적이다. 비록, 후진국 장교가 미국인에 비해 소득은 낮았을지 모르나, 나름대로 장교라는 자존심이나 국가에 의해 선택된 자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군 엘리트로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 가졌을 꿈과 설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재단하는 미군 병사나 일반 미국민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경멸을 당했다면...? 참기 어렵고 대립 각을 세우는 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많은 돈으로 미국을 이해시키려는 프로그램이, 몇몇 병사나 일부 직원의 무성의, 무관심으로 외국군의 분노를 사고 역효과를 내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무신경이 안타까웠다. 외국군 장교를 상대하는 곳에 근무하려면 국제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어떤 경우든 존중과 배려로 이들을 대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의 혁명직후, 최후 직전(출처: 동아일보)

그런데, 이들 중동이나 아프리카인들은 보기보다 뒤 끝이 강한 듯하다. 굳이,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다가 몰락한 리비아의 ‘카다피’ 원수를 언급지 않더라도 중동과 아프리카의 많은 군부 지도자들이 이 학교를 거쳐갔다. 나중에, 국제 업무를 하는 동안, 미국에 유학하였던 아랍권 장교를 많이 만났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공개적으로 반미, 반서구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아마도, 이들은 미국이 자신을 우방국이라고 여기며, 각종 원조 등 혜택을 ‘주니까, 받은 걸’로 생각하거나, 어쩌면 부자는 빈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라마단’적인 규율에 따라 ‘받는데’ 익숙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받는 과정에서 느낀 모멸감은 서구로부터 받은 역사적 아픔과 함께, 오랫동안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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