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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우리'가 남이가?

'패거리' 정치 - 사색당쟁(四色黨爭)

우리가 남이가?’ 

우리끼리’의 접대 문화 

서구인의 '내 것네 것'


'패거리' 정치 - 사색당쟁(四色黨爭)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 오륜(倫)은 충, 효와 부인, 노약자, 친구에 대한 '사람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이 중 친구(붕, 朋) 관계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해서 친구지간의 '신뢰'를 강조하기도 했지만, 한자의 '신(信)'은 중심이라는 뜻도 있으니, 친구를 '마음의 중심에 둔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뜻이 맞아 남이 아닌 친구가 되면 서로 붕당(朋黨, '패거리')을 만들어 어울리기를 좋아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관계의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선비들이 어울리던 '패거리' 정치는 조선시대 사색 당쟁의 근간이 되었다. 


이들 '패거리' 선비들은 붕당을 지어 ‘기호학파’니 ‘영남학파’니 하는 지역이나 학연을 들먹거리며 '우리끼리' 관직을 나누고 행세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누구에게든 반대하거나, 도전하는 자에 대해서는 모두가 합심해서 그런 시도를 물리쳤다. '우리'니까, 남이 아니니까... 예컨대, 유교의 윤리학에 따라 ‘예’를 숭상하던 조선 왕조는 왕비 등 망자 (亡者)의 의례를 논의할 때에도 ‘우리’와 또 다른 ‘우리’가 서로 다른 관점으로 대립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불거진 감정대립은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사화 (士禍)’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전 정세판단에도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였다. 국가와 민족의 안위보다 내 당파나 내 편의 이익이 먼저였다. 그래서 한쪽이 "일본이 침략을 해 올 것 같다"라고 하면, 다른 한쪽은 "그럴 리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실제 "뭐가 어떻다"의 문제보다 그저 상대에 대한 반대가 더 앞섰다. 그렇게 당하고도 모자라, 불과 40여 년 뒤의 병자호란 때도 그랬다. 당파사이 갈피를 못 잡던 왕이 워낙, 못났던지 ‘청 태종’은 자기 목숨만 구걸하는 왕을 살려주는 대신, 조선을 마음껏 유린하였다. 왜란과 호란으로 조선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리고 200여 년, ‘우리’ 가문의 이익을 앞세운 세도정치로 나라는 멸망하였다. 진즉, 바꿨어야 할 무능한 왕조였다.


쪽지예산 (출처: 정의당)

오늘날 우리 국회는 어떨까? 매년, 예산편성 때 여야 불문, 지역구 예산확보를 위해 예결위원들에게 매달리는 과정에서 ‘쪽지문화’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이들은, 따낸 예산 반영을 마치 자신의 능력인양 과시하기도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신세를 지면 어떤 형태로든 배상해야 한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입법 청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히 ‘우리끼리’라는 ‘관계’의 문화 – ‘패거리’ 정치의 영향력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도 일본처럼, 한때, 정치권에 무슨, 무슨 계라는 인맥 위주의 계파 정치가 있었다. 


가파른 복지예산 증가율(출처: 조선일보)

그런데, 아직도 이런 '우리끼리'라는 생각이 우리들 바탕에 깔려 있는 듯하다. 우리 정치권이나 일부 지식인들은 국가적 사안을 논의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보다, 집단별 정치적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명분논리에 집착한다. 정치인의 불체포 특권은 논외로 하더라도, 서로가 싸우는 와중에 내편, 네 편은 상대에 대한 포용이나 설득은 없다.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이다. 심지어, 같은 편 가운데서도... 


'우리끼리'에게는 국가의 미래보다 ‘우리’ 패거리의 생존을 위해 선거의 승리가 중요하니, 선심성 복지 정책이 봇물을 이룬다. 우리 사회에는 수 천 개의 이런저런 단체가 지자체나 정부 기관 주변에서 사무실을 얻어 쓰고, 사업자금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아 쓴다. 정부 예산이 단돈 1원도 사용되면 반드시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지만, 눈먼 돈을 받으며 패거리의 주변 세력 행세를 할 뿐이다. 20세기 이후, '포퓰리즘'으로 망한 나라가 수없이 많지만, 표를 얻는 데는 그만한 방법이 없어 내 돈한 푼 안 들이고 '손 안 대고 코푸는' 유혹을 이기기 힘들다. 


국가적 사안의 논의나 비전도 유사하다. 지도자라면 누구든 추종자의 생존을 책임지려 ‘모두의 관심’에 따라 '표 계산'에 몰두하며 '편 가르기'를 서슴지 않아야 한다. ‘찬성이 유리한지? 반대가 유리한지?’는 논리적 근거나 원칙보다 '세몰이' 여론에 좌우된다. 최근에 불거진 국책 사업의 당위성 여부 제기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끼리'가 판치는 이런 틀 속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 말은 천금만큼 무겁다. 이 말은 전직 검찰 간부가 경상도 모 복집에서 누군가에게 한 말이다. 남이 아니면 친척이란 말인데... 남이지만 친척으로 여기는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사실, 농경사회의 이웃은 친척 그 이상이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이웃’과 꼬이면 되는 일이 없고 매사가 피곤하다. 


그래서 ‘나는 나, 너는 너’라는 관계보다 ‘우리’라는 인간관계에 유독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어떤 집단이든 한 집단에 속해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 이웃을 많이 갖는 것이 힘과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이웃이나 그 이웃을 통해 해결하였다. 중국의 '꽌시'(관계)와 똑같다. ‘우리’ 속의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가진 권한, 인맥, 영향력 등으로, 뭔가 해달라 하면 잘 맞춰줘야 한다. 그래야 ‘의리 있는 인간’이 되니, 나로서는 안면을 내세워 청탁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게 되어야, 비로소 내가 ‘우리’ 속에서 위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힘자랑(?), 결혼식장의 줄지어 늘어선 화환(출처:조선일보)

이처럼, 끈으로 얽히고설킨 인연은 이해관계까지 겹치면 목숨까지 불사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나이, 지연, 학연 혈연 확인이 필수였다. 그래야, 위상을 정할 수 있으니까... 특히, 나이는 보편적 기준이었다. 위상의 높낮이에 따라 존대와 하대를 하는 우리말 특성에 나이가 한몫했다. 그리고, 친인척(혈연)은 물론, 동향(지연)이나, 학교 선, 후배는 ‘관계 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자녀 결혼식장에 가 보면 그런 저런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과시하듯 화환을 줄지어 세워 놓고 부조금 행렬이 줄을 잇는다. 저절로 힘이 느껴진다. 굳이, 농사철에 한 마을 이웃끼리 나누는 상부상조나 ‘품앗이’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런 유산은 '우리'라는 공동체가 이루어 놓은 '금자탑'이다.


뿐만 아니라, 대형 식당이나 휴일 유원지 등에 가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슨 '00 모임', '000회' 등의 이름으로 수십 명씩 떼를 지여 다니며, 먹고, 마시고, 크게 떠드는지...? 이들은, 마치 '우리'의 일원이 되면, 내가 큰소리로 떠들어도 우리 패거리가 있으니, 아무도 감히 나를 제재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거다. 그러니, 남의 불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함이 곳곳에 넘쳐난다. 만약, 누군가가 '시끄럽다'라고 항의하면, 그쪽 패거리가 일제히 들고일어나 '이런, 저런 공격을 가할지 모른다'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우리끼리’의 접대 문화 

‘우리’들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함께 먹은 옆사람과 따로따로 밥값을 계산하려면 영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러니, 외국인과 함께 식당에 갈 경우에도 한국 사람이 "밥값을 내겠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면 외국인은 우선 “왜?”하며 경계심을 표한다. ‘더치 페이 (Dutch Pay)’가 생활화된 외국인이나 일부 젊은이는, 한국 사람이 ‘왜, 밥값을 내겠다고 그러는지?’ 이러한 ‘관계의 문화’의 속 뜻을 잘 알지 못한다. 


음식비 먼저 지불하려는 몸싸움(출처: 뉴시스)

그래서,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신기한(?) 모습 중의 하나가, 음식점 계산대 앞에서 친구지간은 물론, 심지어 부자지간, 형제지간 등 가족 간에도 서로 먼저 음식비를 계산하려고 서로 붙들고 밀치며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누군가의 음식값을 다른 이가 내려고 하거나, 더 나아가 서로 먼저 내겠다고 다투는 문화는 참 특이하다. 도대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무슨 대가를 기대하기보다 체면(?)때문에 ‘밥 값을 서로 먼저 내겠다’고 몸싸움을 벌이는지? 한국 이외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평가는 상반된다. 이를 ‘아름다운 싸움’이라고 평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기 과시’라고 폄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서로를 속박하기 위한 행위’라고 평하기도 한다. 한번 얻어먹으면 또 만나서 갚아야 하니까 자꾸 얽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남의 밥 공짜로 얻어먹고, 나중 ‘나 몰라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평가야 어떻든, 한국인의 ‘우리끼리’ 문화나 ‘우리 가족’ 관계는 물질을 초월한다.


지금의 20~30대 젊은이는 어떨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밥 사는데 인색한' 선배나 웟 사람은 후배의 존중을 받기 어렵다. 후배들은 그런 사람을 스스로가 ‘우리’라는 관계를 갖지 않으려는 이로 단정한다. 그 순간 부로 우리가 아닌 남이 되니, 선배라는 이유로, 웟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속내’를 내어줄 리가 없다. 


사무실내 미국인과의 회식 시, 미국식 레스토랑에 가면 각자가 먹은 것을 계산하고 가면 되는데, 한국 식당에서 회식하면 식비 지불 문제로 난감할 때가 있다. 동료인 한국인 누군가가 일괄적으로 회식비용을 지불한 뒤, 전체 금액을 1/n 인원수로 나누어 다시 돈을 걷으려 하다가는 큰 곤욕(?)을 치른다. 어떤 미국인은 공깃밥 한 그릇도 자신이 먹지 않은 것은 지불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누가 ‘공깃밥 한 그릇을 추가로 먹었는지?”, “맥주 한잔을 더 마셨는지?”를 확실히 따진다. 한국말은 모르지만, 각자의 셈법은 확실하다. 이런 사람은 '음식비를 서로 내려고 실랑이를 하는 모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혼밥 (출처: 엠씨플러스)

그런데, 우리도 이제 같이 밥을 먹더라도 각자 자기가 먹은 만큼만 지불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뭐, 그게 더 부담도 적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물론, ‘2인’ 이상 주문이 가능한 메뉴를 만들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였던(?) 식당 주인은 이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혼밥’ 문화도 정착되어 간다. 사실, 혼자 밥 먹는 게 어색하다는 사람도 많지만, 식사시간만큼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픈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혼자 밥 먹는 문화가 오래전에 정착되었다. “아름다운 싸움”을 연출하였던 “우리끼리” 접대 문화도, 이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저물어 갈 수 있을까? 


서구인의 '내 것네 것'

이처럼, 서구인은 “내 편이냐네 편이냐?”를 확실히 따지는 무슬림이나, '우리끼리'에 목을 매는 우리와 달리, 내 것네 것에는 확실하게 달려든다. 이들은, 계약을 중시하고, 물질 중심적이고 계산적이며, 신용이나 자기 영역, 금전관리에 철저하다. 설령, 부부 사이라도 이혼하게 되면, 몇 센트 단위까지 확실하게 따진다. 서구는 ‘셰익스피어’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차용금 변제 불가시 ‘살 1파운드’를 떼어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계약이 엄중하다. 그러니, 잘, 잘못에 대한 판단보다 계약서에 쓰인 문구에 대한 해석을 놓고 법정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당연히, 세상에서 변호사가 가장 많기도 하고 그 업이 성행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계약과 신용, 서명을 목숨같이 여기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황당하게 보는 것은 ‘신용카드 대리서명’이다. 지금은 5만 원 이하는 무서명이지만, 얼마 전까지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서명하였다. 그런데, 카드를 받은 일부 상점 주인이 마치 자기 것처럼 대충 사인한 뒤 결제를 하는 것을, 나야 귀찮은데 상점 주인이 대신하니그러려니...” 하고 용인하였지만, 외국인에게는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은, 아니어떻게내 서명을 타인이 아무렇지 않게 대신하며또 그게 금융기관에서 승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거다.


이들은, 금전 관리를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대충대충 하는 우리와 달리, 어떤 소유물이든지 ‘내 것’과 ‘네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개인소유 토지’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경계를 침범하면 자칫 총에 맞아 죽는다. 실제로, 어느 ‘핼러윈 데이’ 날 어린아이가 이웃집에 사탕 얻으러 갔다가, 무단침입으로 총에 맞아 죽었다. 아이 부모는 통곡하였지만, 총을 쏜 이는 법적 책임이 없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을 내어 기부하는 것은 돈에 집착하는 영역과 다르다. 필자의 사무실에서는 미군 현역 장병들의 전출, 전입이 잦았다. 당연히, 이들을 위한 파티가 있음직한데, 장군이든 고위직이든 떠나는 부하를 위한 이런 예산은 한 푼도 없다. 이들이 한국 공무원의 업무추진비를 부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부서별로 자원한 봉사자가 “000을 위한 환송 파티에 음식이나 돈을 기부해 달라”라고 요청한다. 이에, 동료들은 현금이나, 한, 두 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일종의 ‘파틸락’으로 모두가 ‘십시일반’ 하는 식으로 준비한다. 이럴 때, 자원자인 주관자가 대부분 사전에 음식량을 조율하지만, 가끔 돈과 음식이 남기도 한다. 


그런데, 자원한 주관자에게는 '돈은 조금이라도 남으면' 곤란하다. 이들은, 설령, 돈이 남으면, 1/n로 나누어 되돌려 주거나, 아니면, 남은 돈에 차라리 자기 돈을 조금 더 보태 행사용 물건 하나를 더 사더라도 그 돈을 모두 사용하려 하지, 나중 일을 위해 보관하거나, 최초 의도한 일 이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부정, 부패 소지를 없애기 위해, 돈이 남지 않도록 조치한다. 그 정도 사명감이 없으면 아예 돈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 사회의 방식은 다르다. 부서에서 회식하거나 기념패 등을 제작하는 경우, 똑같은 금액을 내지만 애매한 잔돈이 남았다며 돌려주겠다고 하면,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 나누어서 돌려주려고 그래그냥 두었다 나중에 쓰지라며 대범하게 말하든지, 아니면 누군가가 호기롭게, “다음 행사에 보태 쓰라”라고 말하면, 모두가 속 내와 달리,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이하동문'으로 동조한다. 공과 사의 구분이 불투명한 탓이다.


이런 분위기라, 누군가가 회계 담당에게 금전 출납 관련 세세한 설명을 요구하기라도 하면, 그 시간부로 ‘쫌생이’로 낙인찍혀 “저 xx와 같이 할 수 없다며 왕따나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연히, 잔금을 흐지부지 주관자에게 맡기게 된다.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하지 않는 것, 그게 우리 방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투명하지 못한 문화가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에 기여하였다. 이런 모습은 더 큰 일을 위해 서로 믿고 맡긴다는 신뢰에 기반한 거였다. '우리가 남이 아니니까...' 계약에 따라 한 건, 한 건 처리하고 돌아서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사람 간의 관계가 맺어지면, 한 건이 두 건이 되고... 이게 단골이 되어 점점 금액과 모임 규모가 커진다. 


자세히 보면, 무슨 모임이나 조직에서 한, 두 번 금전관리를 하다가 자연스레 당연직 총무로서, 각종 친목, 상조 행사까지 연락을 도맡아 하였고, 이게 또 다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식이다. 그러니, 총무가 잡일을 맡아 하지만,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인연이 점점 커지면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에서 한껏 행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화무백일홍’이다. 과거, 대통령을 했던 몇 분이 평생을 함께했던 총무의 비겁함이나, 저지른 부정에 발목이 잡혀 감옥행을 당하였다. 권력이 없어지고 돈 떨어지면 믿지 못할 사람을, 마치 자신의 분신인 양 무한 신뢰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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