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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신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삶(6신 5행의 실천(1))

6 신과 5행 -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신앙과 실천의 세계

5행의 하나인 이슬람의 첫걸음 - 신앙고백 (‘샤하다’) 

5행의 하나인 '기도' (쌀라흐)와 '아잔' 소리

5행의 하나인 '라마단' (한 달 금식)과 3일 축제

5행의 하나인 관용과 긍휼의 자카트’ (종교세)

5행의 하나인 '하지'(순례)와 무슬림의 유대감



6 신과 5행 -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신앙과 실천의 세계

AD 620년경에 창시된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내세관이 뚜렷한 두 종교와는 달리, ‘내세와 현세를 동일하게 여기면서도, ’ 현세의 삶‘을 중시한다’. 이런 속성은 ‘정교일치’와 원리주의 때문으로, 사회생활 전반에서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신앙과 실천의 세계가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신앙’ 즉, '6 신(‘믿음’)은 알라, 신의 사도와 예언자들, 천사, 성서, 최후의 심판과 내세, 정명론 등 6가지로 ‘믿음’의 영역이지만, 5행(실행) 즉, 5가지 ‘행할 바’는 신앙고백, 기도, 하지, 자선, 라마단으로서 이는 ‘실천’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들 6 신과 5행은 경전인 ‘꾸란’, ‘샤리아’ 율법의 근간이다. 


‘6信’(6가지 믿음)에서 보듯이, 무슬림에게는 믿음(신앙)’이 최고의 가치이다. 이슬람은 믿음의 본질을 신을 ‘기쁘시게’ 하는데 두었다. ‘믿음’은 ‘소유하는 것’ 즉,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신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생활 속에서 6가지 믿음(信)을 5가지 행동(行)- 즉, 실천으로 보이는 것이다. 만약, ‘믿음’을 알지만 신을 기쁘시게’ 하는데 실천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여겼다. 기독교 신약성경(히브리서 11:1~12)에서도 ‘믿음’의 정석을,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예배)를 드리는 것, ’ 하나님을 기쁘시게 ‘ 하는 것, ’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말씀한다. 즉,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반면에, 기독교의 성경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3 가치 중에서, ‘사랑’을 최고로 꼽는다. 이는 기다리며 기도하는 동안 얻어지는 ‘인내의 결과물’인 ‘소망’이나, ‘하는 것’ 자체에 최대한 가치를 두는 ‘실행의 결과물’인 ‘믿음’에 비해, ‘사랑’은 각자의 ‘노력의 결과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두 종교의 가치 체계는 그 관점이 확연히 달랐다. 


이집트는 일부 '콥틱교'외에 거의 전 국민이 무슬림으로 이슬람이 국교이다. 이슬람이 국교라면,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의식주와, 개인의 신념, 사고체계, 관습이나 행동 등 삶의 방식, 예술, 정치 체제 등 모든 삶의 관점을 에워싸는 통합적인 시스템의 개념이다. 이는 사회나 문화의 상위개념이기에 이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생활 자체가 힘들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 일단 이슬람이 들어오면 각 개인의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세금과 병역의 의무, 법과 제도 그리고 공동체(움마)의 울타리를 본인 세대는 물론, 후손 세대에도 피할 길이 없다. 예컨대, 이집트에서는 외교관조차 그곳에 사는 동안 이슬람 종교와 아랍의 관습, 그리고, 이들의 ‘샤리아 율법’이나, ‘라마단’ 등 실천적 관습을 경험하며, 이슬람을 알아가게 되어 있다.    

 

5행의 하나로 이슬람의 첫걸음 - 신앙고백 (‘샤하다’) 

‘신앙고백’은 5행의 하나로 이슬람의 첫걸음이다. 이는 “앗쉬아두 안라아 일라하 알라, ... (‘알라(외에 다른 신이 없고 모함마드가 사도라는 내용)”라는 것으로, 이 하나를 암송하는 것으로 무슬림이 되니, 기독교의 '사도신경'과 같은 개념이다. 여기에는, 6가지 믿음(6 신) 중 ‘알라(신)와 사도 ’ 모함마드‘가 언급되는데, 아이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샤하다(증언사)’를 들려주며, 아이는 살아가는 동안 ‘샤하다’를 암송하며, 늙어 죽을 때까지 ‘샤하다’로 기도한다. 이보다 더한 자기 세뇌는 없으며, ‘샤하다’를 암송하는 무슬림은,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가장 완벽한 종교’를 믿기에 자신의 현 위치가 어떠하든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에 항상 관용하는 마음과, 6가지 믿음 중 최후의 심판과 ‘내세’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정명(定命) 의식’을 갖고 있어 세세대대로 신이 준비하신 내세를 믿고 현실에 인내한다. 


'정명' 의식은, 현세는 힘들더라도 감내하는 운명이지만, 내세에는 현세의 고통스러운 삶의 대가로 ‘신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운명론적으로 순응하는 것이다. 꾸란에서도, ‘내 길 때문에 상하고, 죽은 자들, 이런 자들이 어떤 나쁜 일을 하였다 해도, 이를 사면하여 내세의 낙원으로 들여보내겠다.’(꾸란 3:195)는 계시로, 박해받은 자는 물론, '지하드'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살인자조차 ‘신’의 곁에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태복음 5:10)라는 말씀이 있다.

          

'카이로'의 '모함마드 알리' 모스크. 뽀쪽한 첨탑이 인상적이다

인구 2,000여만 명이 넘는 '카이로'시의 도심 지역에는 이집트 최대의 모스크인 '모함마드 알리' 모스크가 있고, 그 주변은 무덤 지역으로 일대에 거대한 빈민굴이 있다. 이곳에는 조그마한 집도 없는 사람이 줄잡아 약 300여만 명이 몰려 산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는 무덤과 달리, 무덤은 지붕이 있고 각각 구획이 되어있어, 1-2 명이 자기 집처럼 살더라도 별 지장이 없다. 더구나, 더운 나라라 냄새 등은 금방 증발해 버리니 악취가 그리 심하지도 않다. 


또한, 이들이 먹는 빵은 전통적인 무교병 '에이쉬' 빵으로 6장에 1달러도 안 된다.(정치가 아무리 부패해도 폭동은 없지만, 빵값이 올라가면 바로 폭동이 일어난다) 그러니, 빈부차이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신께 의지하며 매일 낙천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숙식이 보장(?)되어서일까? 이들은 설령, 노숙인이라 하더라도 삶에 별로 절박하지 않은 듯하다. 생활이 어려운 길거리 노점상도 유사하다. 그들은 자신이 ‘완벽한 신’을 믿는 일에 감사하며, 신께서 정해준 처지에 불평 없이 순응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그들을 동정하려 하면, 오히려, 알라(신)를 알지도 못하고, 금식도 하지 않으며, ‘물질’만을 내세우는 ‘불신자’인 우리를 가엽게 생각하고, 구원하려 한다. 


이들은, 경전 암송으로 경건한 삶을 이어가는 자신의 처지에 더 만족하자고 자신을 다잡으며, 조상이 물려준 전통대로 지금껏 살아온 생활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을 가장 ’ 편안하게 ‘ 사는 생활로 알고 지낸다. 큰 저택이나 좋은 차가 있어야만 ’ 편안하다 ‘는, 물질지상적인 자본주의의 ‘냉정한 잣대’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가치기준’이다.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천박한' 물질 따위에 집착하기보다, 경전을 외우며 신이 주신 운명에 순응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들에게는 '진정한 삶'인 것이다.  


여기에는 내세의 운명에 대한 강한 믿음이 깔려 있다. 이를 보면, ‘더 편안한’ 미래를 위한다며 평생 동안 물질에 집착하여 아등바등(?)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달리, “가난해도 선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우리 고전인 ‘흥부전’에 더 가깝다. 지난 1,400여 년 동안 이슬람은 종교지만, 곧 사회생활이요, 삶의 기준인 율법이었다.


5행의 하나인 '기도'(쌀라흐)와 '아잔' 소리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하루 종일 혼잡하고 온갖 차량 소음으로 시끌벅적하지만 이곳도 밤이면 조용하다. 하지만, 이슬람이 국교인지라 조용한 새벽녘부터 새벽기도 즉,  ‘아잔’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이슬람의 5행 - 즉, 5가지 ‘행할 바’에서 ‘라마단’이나 ‘하지’, '자카트'에 못지않게 실천이 중요한 것은 하루 다섯 번의 ‘기도(예배)’이다. 심신이 건강한 무슬림 남녀는 의무적으로 ‘기도(예배)’를 해야 한다. 


이른 새벽,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잔’ 소리로 아침 해뜨기 한 시간 전부터 첨탑에 부착된 커다란 확성기로 기도하라고 알려준다. 대략적인 내용은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 외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다. 기도하러 오라. 성공으로 오라!"라는 것으로 예배가 잠자는 것보다 나으니, 소원 성취하러 어서 오시라고 호소하는 거다. 


과거, 확성기가 없었었던 시절에는 '이맘'이 첨탑에 올라가 큰 목소리로 '아잔'을 읊었다고 한다. 어쨌든, 비이슬람권 사람들은 여행할 때 모스크에 가까운 호텔에 투숙하면 ‘아잔’ 소리 때문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깨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의 아침 기도 소리에 대놓고 불평하지 못한다. 경찰보다 종교경찰이 더욱 파워풀한 사회다.


하루에 다섯 번하는 기도 시간은, 해가 뜨기 한 시간 반 전, 검은색과 흰색이 분간되는 아침, 해가 중천에 있을 때, 검은색과 흰색이 분간되는 저녁, 밤 잠자기 전으로, 계절에 따라 해의 길이가 달라져 요즘은 신문, 방송으로 알려 준다. 성지 메카를 향해 드리는 ‘기도(예배)’는 종교적 의식이자 암송이며 '라카'라는 절을 하는 예배의 행위이다. 기도는 10분 정도 혼자 할 수 있지만, 모함마드는 생전에 새로운 ‘이슬람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집단예배를 사원에서 드리는 것을 장려하였다. 

 

무슬림의 '라카', 절하는 모습

모함마드는 기도의 목적을 ‘자기 정화’라고 정의하였다. 어느 날, 모함마드가 그의 제자들을 모아놓고 “만약 어떤 사람이 매일 다섯 번 목욕한다면 그의 몸에 때가 끼일까?”라고 질문하자, 제자들이 때가 끼일 리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이 바로 매일 다섯 번 기도하는 의미라며, 알라(신)와 무슬림이 항시 만나고 대화하며 가까이하는 장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예배하고 절을 많이 하면 이마에 군살이 박혀 까맣게 변한다. 한때, 사우디에서 일부 한국인 근로자가 음주 후에, 공사장 밖으로 나갔다가, 종교 경찰에게 음주로 체포되어 수감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수감생활 중 열심히 기도’하면 감형이 된다 해서 이마를 일부러 땅에 찧어 까만 군살을 만들어 감형을 얻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든,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무슬림은 그 시간을 매우 경건하게 여긴다. 특히, 금요일은 기독교의 주일처럼 집단으로 예배 보는 날이다. 모함마드가 금요일을 집단 예배일로 택한 것은, ‘메디나’에 금요일마다 대상들이 모여 큰 시장이 서자, 이들에게 설교한 데서 유래하였다. 그래서, 금요일은 흡사 명절 같은 분위기이다. 모두가 깨끗한 옷을 입고 전신세정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모스크로 모여든다.


모스크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입장하기 전에 신발을 벗고 손발을 씻어야 하며 (화장실 용변 후에 물로 세척) 모자를 써야 한다. 예배는 마음의 안정과 몸의 정결이 선결조건이다. 특히, 남녀의 예배장소는 엄격히 구분하며, 기도할 시에 여성들은 손, 눈만을 제외하고 모두 가리게 되어있다. 이는 이성을 보면 예배 중에 마음가짐이 흩어질까 염려하여 취한 조치라고 한다. 꾸란은 특별히 ‘사원에서 예배를 할 때 여자와 사귀면 안 된다. 알라(신)께서 정하신 규정이니 여자를 가까이해서는 안된다.’(꾸란 2:187)고 강조하고 있다. 


5행의 하나인 ‘라마단(금식)’, 그리고 '박시시 (용돈, 일종의 팁)'

- 육안으로 식별하여 시작하지만, 엄격한 '라마단' 

이슬람은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을 사용하는데, 5행 중의 하나인 '라마단’ 금식은 이슬람력의 9번째 달을 '신성한 달(神聖月)‘로 규정하고, ‘기도’와 ‘자선’을 동시에 곁들이는 달이다. 이 기간에는 해 뜨는 아침부터 해 지는 저녁까지 어떤 음식도, 물도, 배우자와의 성관계도 금지하는 등 강력한 금식 기도가 행해진다. 이때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해서도 안되고, 식욕, 성욕과 같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억제하므로, 화려한 옷도 삼간다. 그리고, 말과 행동 그리고 악에 대해서도 내적 절제를 통해 정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슬림은 낮시간 단식을 위해 해가 뜨기 직전 `수후르'라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해가 지면 밤늦게까지 이웃이나 친척을 초대해 `이프타르'라는 긴 저녁을 먹는다. 금식으로 육체적인 고통은 있지만, 오히려 기도와 자선의 시기인 것이다. 

 

초승달 관측으로 '라마단' 개시 시간을 정한다.(출처: 인터넷)

신성한 달에 초승달이 뜨기 시작하면 라마단이 개시되고, 사회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라마단' 개시 시간은 일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지만, 지역별로 초승달이 뜨는 시간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집트에서는 초승달이 뜨기 전 날부터 이슬람 종교학교인 '알-아자르' 대학과, 종교부대표, 각국의 무슬림 대표들이 모여 카이로에서 가장 높은 '모카탐' 산기슭에 있는 모스크의 첨탑에 올라 달 관측에 들어간다. 사우디 아라비아도, '메카'에서 초승달이 뜨는 시간을 기준으로 '라마단' 개시시간을 선포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몇, 몇 인사의 육안 관측에 의존하고 있다. 


지구의 거의 1/4에 걸쳐있는 57개 이슬람 국가들은 상호 간 지리적 이격도가 워낙 커서, 라마단의 시작은 해당 국가의 권위 있는 종교 기관이 초승달을 관측한 뒤 시작을 선포하도록 되어있다. 예컨대,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는 사우디보다 하루 전에 시작하고 파키스탄은 하루 늦게 라마단에 들어가므로 동, 서 끝점 사이에는 이틀 정도차이가 난다. 


- 처음 맞이하였던 ‘라마단(금식)’, 그리고 '박시시 (용돈)'

#1. 필자가 이집트에 부임하였을 때 마침 5행 중에서도 ‘신을 기쁘시게’하는데 가장 ‘실천’적인 ‘라마단’ 금식 기간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 냉동고 등 몇 가지 전자제품이 필요하여 정부 면세점에서 이를 구입할 때부터 종교적, 문화적 충격이 시작되었다. 정부 관리인 면세점 매니저는, 느릿한 동작으로 돈을 받은 후 "저녁 8시까지 배달하겠다"며 약속하였지만 정작, 밤 12시 넘어서야 물건이 배달되었다. 너무 늦게 와서 은근히 화가 나 있었는데, 배달 직원들은 '웃는 얼굴'로 다른 주문보다 빨리 처리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박시시’ (일종의 팁)를 요구하였다. 그들의 천진한(?) 태도에 정말 화가 났지만, 얼마 지나서 그 문화를 이해하고, 항상 매사에 급했던 우리 문화를 오히려 되돌아보게 되었다.


#2. 며칠 후, 집의 하수구 배관에 문제가 생겨서, 낮잠 (라마단 기간에는 대부분 밤늦게까지 보내다가 아침에는 잠을 잔다)을 잔다는 집주인을 깨워서 닦달거렸더니 수리공 2명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들은 하수구는 쳐다보지도 않고 두어 시간 동안을 계속해서 꾸란 경전만 낭송하고 있었다. 경전 낭송을 방해하는 게 실례라 싶어, 꾹 참았는데 한참 후에야 슬금슬금 배관을 수리하고는, 또 ‘박시시’를 요구하였다. 언짢은 마음으로 집주인에게 “왜 자꾸 내게 추가적인 돈을 달랐는지?” 물어보았더니, “라마단’ 중에는 부자는 빈자에게 한없는 자선을 베풀어야 하고또 빈자들은 부담 없이 부자에게 자선을 요청하는 것이 관례라고 말해 주었다. 


‘부자는 빈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구절에 따라, 빈자가 부자에게 구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미 이슬람 국가들은 미국의 원조를 당연시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이 가르친 대로 사는 것’과 ‘하나님 가르침인 경전을 읽는 것으로만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 같다. 


#3. 라마단이 끝날 무렵, 현지인 여비서 ‘마이’가 오늘은 잔돈을 많이 바꾸어서 퇴근하시라”라고 권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지나가는 빈자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라”라고 한다. 이는 신약성경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는 것처럼, 무슬림도 ‘라마단’ 기간에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은 사람’을 대접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길에 군데군데에 많은 차들이 서 있고, 차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카이로'의 도로는 차선이 없어서 차가 멈추면 사람과 엉킨다) 그리고, 돈을 받으면서 돈을 주는 사람에게 '알라(신)의 은총이 있기를' 축복해 주는 장면을 보았다. 필자의 차에도 누군가가 다가왔다.  


누추한 모습의 어린이와 할머니가 차창을 ‘툭툭’ 친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화를 내기는커녕 얼른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어 주었다. 구휼을 베풀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돈 받은 그들이 뭐라 중얼거리기에 뭐라고 그러냐?” 물으니, 알라()의 은총을 우리에게 빌어 주었다”라고 한다. 필자는 동전을 주니 영 마음이 불편하여, 작은 돈이지만 지폐를 주려 하니, 기사는 “그러지 마시고몇이나 더 올지 모르니 자기 잔돈으로 주겠다며”, 그래서 약간의 돈을 주며 '잔돈으로 바꾸어 쓰라'라고 주었더니, ‘그래야 한다’는 듯 당연히 받았다.


약 4주간의 라마단 기간 마지막 10일간은 최고로 헌신하는 시간으로 무슬림은 그 기간 내내 사원 안에서 머무른다. 필자의 운전수와 비서는 라마단의 3주가 지나고 4주 째도 여전히 단식하며 출근을 하였다. 비서는 얼굴이 핼쑥하여 기력이 없었고, 운전수는 하루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무슬림으로, 거의 빈사 상태여서 운전을 맡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유엔군 임무단에서, 출퇴근 시간마다 필자를 데리러 오던 파키스탄 군 운전요원도 꼭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들에게 휴가라도 줄걸?!” 하고 후회가 된다.


- 한 달의 금식과 3일 간 축제 

꾸란에서는, '.. 알라를 믿는 너희에게도 단식은 의무라, 자제를 통하여 의로워질 것이라...'(꾸란 2:183-185) 

고난의 4주간을 지내고 라마단의 27번째 되는 날을, 예언자 모함마드가 꾸란의 첫 번째 경구를 받은 날로 여겨 '권능의 밤'이라고 하여 밤새워 기도한다. 그리고, 라마단이 끝나면, 바로 이슬람 경축일인 ‘이드 알 피트르 (Eid-al-Fitr)’라는 축제로 3일 동안은 맛있는 음식과 선물을 서로 나눈다. 오랜 고행 끝에 얻은 기쁨이라 평상시 누린 모든 것에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을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미덕을 배우는 것이다.


라마단 금식이 끝나면 축제의 음식으로 이들이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이 따뜻한 차와 말린 '대추야자'이다. 이 둘은 매우 달콤하여 몸에서 에너지로 빨리 전환되기에, 금식을 지켜온 사람들의 빈 속을 달래주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 섭취 방식 탓(?)인지 중동이나 아랍에 가면 비만해 보이는 무슬림이 많다.  


축제가 시작되면, 빈자나 부자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 양을 잡고 가족, 이웃끼리, 나누며 잔치를 즐긴다. 본격적인 식사는 뭐니 뭐니 해도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양고기이다. 축제가 시작되자마자 동네마다 양들을 나무에 걸고 도축하는 걸 볼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중동 지역에서 이 축제일에 약 9천만 마리의 양이 희생된다고 하니, 한 사람이 양 1마리를 잡거나, 7명이 소 1마리, 혹은 낙타 1마리를 먹는 셈이다. 정부는 라마단 중에 빵(에이쉬 빵 6장: 미화 $1)과 양(한 마리: 미화 $100-120 정도) 값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정치가 어찌 되든 상관치 않던 국민들도 이들 값이 불안하면 소요사태로 돌변한다. 빵은 미국의 경제원조로 밀가루가 들어오면 해결되지만, 양고기는 기후조건에 따라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정부는 양 값에 신경을 곤두 세운다.

 

이집트 시장의 '파누스' 등불

그런데, 이집트인 이슬람교도는 기도와 신을 향한 길을 밝히기 위한다며 라마단의 '성스러운 달' 전통의 일부로 '파누스'로 알려진 등불을 사용한다. 작은 금속 조각을 용접하여 만든 전통적인 랜턴인데, 이 등불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라마단 기간에는 발코니에 걸고 가족이 함께하는 아침 식사나 저녁 식사 테이블의 중심에 둔다. 이집트 '파누스'의 역사는 10세기부터 카이로에서 이슬람 세계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던 '파티미드'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장식품이나, 최근 값싼 중국제의 침투로 전통적 장인들이 사라지며 예술적인 미를 잃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제함을 통하여 의로워질 것이라'는 꾸란의 말씀(2:184)에도 불구하고, 라마단 동안 많은 무슬림은 낮시간 거의 온종일 집에 있으니 TV 콘텐츠 수요가 급증하고, 부유층이 베풀어야 하는 자선용 쇼핑도 늘어난다. 특히,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일에는 새 옷을 입고 사원에서 예배를 올린 후, 부모와 가족, 친척을 방문하여 밤늦도록 축제를 즐기고, 서로 선물을 교환하기 때문에 의류, 완규류의 매출이 급증하고, 가전제품과 생활소비재 판매가 연매출 30% 이상 증가한다. 


- '라마단 카림'(은혜로운 라마단)!

아무것도 모르고 난생처음 맞이하였던 그해 '라마단'은 필자에게 무슬림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이제부터는 매년 돌아오는 '라마단'기간에는 우리가 크리스마스 때 이웃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또는 설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듯이, “라마단 무바라크(행복한 라마단)!” 혹은 라마단 카림(은혜로운 라마단)!”이라고 인사하길 권한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카히르 무바라크(당신에게도..)!" 라거나, "알라후 알크람(신은 더욱 은혜롭다)!"라고 응대할 것이다. 혹은, 반대로 그들이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걸어올 수도 있을 거다... 우리가 비록 비무슬림이지만, 그들 나라에서 산다면 이런 인사말로 라마단 기간 금식하고 수행하는 무슬림을 더욱 존중하고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과 좋은 이웃이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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