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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신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삶(6신 5행의 실천(2))

5행의 하나인 관용과 긍흘의 자카트’ (종교세)

5행의 하나인 '하지'(순례)와 무슬림의 유대감

이슬람의 순례, 기독교의 순례 



5행의 하나인 의무적인 자선 - 종교세(‘자카트’) 

- 이슬람 세력 확산에 기여한 관용과 긍흘의 자카트 

전 세계의 많은 문화와 종교는 자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의무화하지 않아, 자선은 그냥 적극적인 의지일 뿐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부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위를 의무화하고 국가가 무력을 사용하여라도 자선을 추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였다. 모함마드는 '자카트'를 부자에게서 가져와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즉, 이슬람은 '자카트'를 제공하는 것이 부자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꾸란은 기도와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자선'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이슬람의 원칙 중의 하나는 재화를 포함한 모든 것은 ‘알라(신)’에게 속한다는 것으로, 인간의 모든 소유물은 일시적으로 맡겨진 것에 불과하다는데... 


2015년 타게 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압둘라' 왕의 무덤: (출처 조선일보)

몇 해 전에 사우디의 국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2경 8천조 원의 재산을 가진 엄청난 거부였지만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무덤과 달리, 그도 역시 평민처럼 평소 다니던 사원에 있는 조그마한 무덤에 평범하게 묻혔다. 전 세계에서 엄청난 조문객이 운집하였지만, 장례식 자체는 모스크에서 간단한 추모의식을 가진 뒤 공동묘지에 안장되는 1일장으로 간략하게 치뤼 졌다. 수니파 국가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 동양과 다르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은 예언자 '모함마드'가 죽음을 예견한 뒤, 재산을 정리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메디나'에서 가장 가난한 자에게 돈을 주고 사후를 부탁하였던 모함마드의 모습을 따르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모든 것이 ‘신의 소유’라는 개념이 강하게 깔려있다.


그러므로, 부자도 소유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마음의 정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식물이나 나무를 가지치기하여 성장을 촉진하는 개념이랄까? 부자를 더 키워주므로, '자카트'의 의미는 정화, 성장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는 '빌 게이츠' 등 억만장자가 사회가 요구하는 곳이나 공익을 위하여 기부하여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마음을 정화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수령자도 기부자의 따듯한 마음을 느끼고 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 증오 등 빈부 격차로 인한 불편한 마음도 정화시켜 줄 수 있다.  


의무적인 자선행위 '자카트'(출처: 인터넷)

그런 의미로, ‘종교세’(자카트: 자선행위)는 신앙고백, 기도, 라마단, 하지(순례)와 함께 '신을 기뻐시게하는' 무슬림 5대 실천사항 중 하나로 '독실한' 신앙의 표현이다. 이슬람은 재화의 최종 소유는 ‘알라(신)’이라며, 기본적인 주거비와 직업에 필요한 비용 등을 뺀 1년 치 소득의 1/40(2.5%)을, 조세처럼 ‘알라(신)’이 원하는 일에 쓰도록, 1년에 한 번 자발적으로 ‘자카트’를 사원 등 종교기관에 맡겼다. 


참고로, '자카트'를 양 떼의 소유로 알아보면; 양이 40~120마리 사이이면 양 1 마리이지만, 40마리 미만은 '자카트'가 필요하지 않으나, 기부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자카트'를 종교담당 정부기관이 수납, 관리한다. ‘구빈세’라고도 하는 이 종교세는 절대로 모스크 건설 등 성전 건설에 쓰지 않고 자선금처럼 가난한 순례자나 결식자, 불쌍한 자나 빈민 구제자, 채무환급 불능자, 여행자 등 빈민구제에 써야 한다.(꾸란 9:60). 무슬림은 구제가 이슬람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온다고 믿으며, 각 개인별로 구제액수를 산정한다. 


- '자카트'라는 새로운 방식의 '부의 재분배'와 '사회보장제도' 출현

‘사우드’ 족의 부족장 ‘압둘 아지즈’가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하고 국왕이 된 후, 석유 발견으로 돈방석에 앉게 되자, 국가의 면모와 위상을 강화하였다. 그는, 이슬람을 사회공동체(움마)의 지주로 삼는 한편, ‘가문의 부족장’은 부족민을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는 사우디 부족의 오랜 전통에 따라, 모든 부족민의 대학 교육, 의료, 주택은 물론, 전기, 가스, 수도까지 무상으로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였다. 그런데, 이는 비단 사우디뿐만 아니라, 쿠웨이트 등 인근 왕정국가들도 부족장이 부족민에게 무상 복지를 시행하는데, 이게 '자카트'이다.


이처럼, '자카트'는 '알라(신)'의 명령으로 '모든 무슬림이 한 형제'라는 강력한 연대감을 심어주었다. 여기에는 물질적 구휼뿐 아니라, '측은지심이랄까?' 가난한 자와 불쌍한 자에게 위안을 주는 정신적 구호 행위도 포함된다. 예컨대, 다른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거나 불편한 장애인을 돕거나 공동체에 유익한 봉사를 하는 것도, 수입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정신적인 희사로서 '자카트'를 내지 못하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AD 7세기 초반 이슬람 창설 당시의 세계 각 왕조국가들의 왕과 귀족은, 서민들을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모함마드에 의해 주창된 이슬랍의 일반 대중에 대한 '관용과 규휼'의 '자카트' 방식은 자연스러운 '부의 재분배'는 물론,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사회보장 제도'로 자리 잡은 셈이었다. 


아는 또한, 전쟁에 대한 의식변화를 일으켰다. 이슬람은 정복지 서민에 대한 약탈은 금지하는 대신, 이슬람 군인들에 대한 보상은 정복한 왕국 재물 중 4/5를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1/5만 메디나로 보내었다. 구태의연한 기존의 왕국이 전투적 이슬람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슬람은 개종하여 이슬람을 받아들인 각 부족에게는 그들의 규율과 자치를 인정하여 주는 등, 관용을 베풀었다. 그 결과, 모함마드 사후에도 그를 추종하였던 '칼리프'들에 의해 이슬람 세력은 계속 확산하였고 왕국은 급속도로 팽창되었다. 

   

살라딘에게 십자군 왕이 항복하는 모습 (출처: 인터넷)

참고로, 이슬람이 베푼 관용의 예를 들면, 1187년, 십자군 전쟁 동안 이집트와 시리아를 지배하던 술탄 ‘살라딘’의 이슬람 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십자군의 왕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동안 약탈과 살인을 수없이 자행했던 십자군에게 조차, '살라딘'은 패배자들이 '떠날지? 남을지?'를 선택하게 해 주었다. 서구는 그의 관용성에 놀랐다. 성경에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구절이 있었지만, 실행된 사례가 그리 많지않다. 그렇지만, 정작, 이슬람에게는 정복한 지역 주민을 학살하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그렇지만, 십자군 전쟁에서 아픔을 겪은 아랍인의 가슴속에는 이들에게 깊은 증오심으로 남아있어, 지금도 ‘기독교와 십자군’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 많다. ‘살라딘’ 사후에 이어진 서구 십자군 공격은 모두 실패하였다. 이런 연유로 지금까지 아랍 무슬림은, ‘살라딘’을 알라 신의 은총으로 서구를 이긴 이슬람 세계의 해방자이며, 구원자로 추앙하며, 서구세력이 이슬람권에 개입할 때마다 ‘살라딘’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다고 외친다. 참고로, 살라딘은 무슬림 형제들이 독립국 건설을 거부하여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 출신이었다.


- 개종과 세금 감면이 가져온 부메랑

이슬람의 발흥이래 급격한 세력 확장과 정복은, 개종을 통한 무슬림으로 하여 한 '형제'라는 강력한 연대감을 심어 주었다. 심지어, 무슬림은 자신의 지배 하에 있는 이교도가 개종을 거부해도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는 ‘관용성’을 보였다. 다만, 개종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그들의 종교를 갖는 대가로 ‘지즈야(인두세: 꾸란 ‘제9장 ‘회개’의 장에서 단 한 번 언급)’라는 가혹한 세금 부과 정책을 썼지만... 꾸란은 ‘종교는 강제로 할지 말지니라(꾸란 2:256)'고 하면서도, 동시에 '이교도를 처단하라(꾸란 5:33, 9:5)'는 상반된 계시를 갖고 있기도 하다.


발칸반도의 '유고슬라비아'는 1989년 신앙, 민족에 따라, 6개국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1992년, ‘그리스정교’의 ‘세르비아’계와, ‘기독교’의 ‘크로아티아’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코소보’ 등에서 '무슬림의 씨를 말린다'며 무슬림 여성에 대한 강간과 남성 살해 등 인종청소를 감행하였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5년에 발생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다. (이 책 처음 부분에 언급) 비극의 배경은 ‘오스만 터키’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세금도 감면받고 정치적 배경까지 얻어, 인종적 주인 행세를 한 무슬림 개종자에 대한 증오심 탓이다. 이슬람 확장에 기여하였던 낮은 세금 '자카트'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던 것일까?


참고로,  독일의 종교세가 급여의 9% 수준이라니, 이슬람의 2.5%에 비하면 꽤 높은 수준이다. 독일에서 이슬람교도가 늘어나고 기독교 신도 수가 줄어드는데 단순히 종교세 때문이었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천박한 '물질'이 종교라는 '신앙'세계를 압도하는 아픔이다. 천주교와 달리, 기독교는 '십일조' 개념이 분명하다.  


5행의 하나인 '하지'(순례)와 무슬림의 유대감

- 이슬람의 성수(聖水) - '메카'의 '잠잠수'

'하지'(순례)는 이슬람력 12월 8일을 전후로 6일 정도 전 세계에서 몰려온 무슬림들이 참여한다. 이집트 대사관에서 국방무관으로 근무할 때, 이슬람력 12월 '하지' 시즌이 시작될 즈음, 사우디의 왕족인 사우디 국방무관이 아랍어 서신과 함께 물 두 박스를 보내왔다. 서신을 읽어주던 비서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가져온 성수(聖水-잠잠수)’라고 하면서 마실 것을 권했다. 하지만, 중동에서 외국인은 아무 물이나 마시면 배탈 등이 나므로, 비서에게, “그냥, 네가 가져라라고 했더니, “아니, 이렇게 귀한 것을 제게 주시다니… 알라()의 축복이 있기를!” 하면서 뛸 듯이 기뻐하며 감사하는 바람에, 영문을 모르는 필자가 되레 어리둥절하였다. 이 물이 그녀에게 귀하였던 것은, ‘꾸란’에 등장하는 물이여서다. 


구약성경에는 기원전 1,400년경,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정 부인인 ‘사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삭’을 낳았고, 애굽사람으로 그녀의 하녀였지만 그녀에 의해 아브라함의 첩이 된 ‘하갈’은 ‘이스마엘’을 ‘이삭’보다 먼저 낳았다(창세기 16:11). 늙은 나이의 ‘사라’가 ‘이삭’을 낳자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치도록 요구하여, 「…’아브라함’은 첩인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쳤다. ‘하갈’이 광야에서 갈증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러 기도하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하갈’에게 샘물을 주고, ‘이스마엘’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 약속하였다.」 (창세기 21:14-21 요약)


'잠잠수'의 위치와 샘물 구조. 좌측상단부가 검은 돌이 놓여있는 '카바'(출처: 인터넷)

'꾸란'에도 같은 내용이 등장하는데, 아브라함으로부터 추방된 ‘하갈’(아랍어 '하자르')과 ‘이스마엘’이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어갈 때, 하갈이 엄청난 땡볕 아래에서 음식이나 물을 구하기 위해, 어린 '이스마엘'을 놔두고 좌, 우측 2개의 언덕 위로 7번을 뛰어다니다가 허탕치고 다시 이스마엘에게 돌아와서 소리 내어 통곡하자, 하나님의 천사(가브리엘)가 나타나서 ‘이스마엘’에게 '모래바닥을 문지르도록(일설에 의하면, 발로 구르도록) 하여' 그곳에 물을 주셨다고 한다. 그때 바로 그 샘물이 솟아난 땅이 ‘메카’에 있는 ‘잠잠’ 지역이다. 앞에서 기술한 대로, 그 샘물을 ‘잠잠수’라 부르는데, 사막 한가운데지만 좌우 1~3m 크기인 이 우물에서는 지금도 지하 31m 아래에 찬물이 솟아난다. 이곳은, 예로부터 '메카'를 지나는 대상(隊商)들의 휴식처였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장례식 후 성경 속에서 사라지지만, 수천 년 뒤에 창시된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서는 ‘아브라함’ 이후의 자손들이 계속 등장한다. 꾸란은,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야곱 및 여러 종족에 주어진 모세, 예수 및 선지자를 믿는다. 우리는 이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꾸란 3:84)고 적시하고, ‘아브라함은 유대교도 기독교도 아닌 성실한 무슬림으로, 또한 우상숭배를 한 분도 아니었노라.’(꾸란 3:67)고 한다.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 '하지'(순례)의 종착역 - '메카'의 '검은 돌' 

메카의 '알 하람' 모스크. 타원형 광장 중앙에 놓인 '카바'와 그 주위를 도는 수많은 순례객 (출처: 나무위키)

꾸란은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로 물이 솟은 장소를 기념하여 '이스마엘'이 '아브라함'과 함께(?) ‘카바’ 신전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카바'(정육면체라는 뜻)는 화강암 건물로 그 자체로 '카바' 신전을 의미하는데, 이곳에 성스러운 '검은 돌' (하자르 알 아스와드)이 보관되어 있으며, 건물 외벽에는 검은색 비단천을 드리우며 금실로 꾸란 구절을 새겨 놓았다. (사진 중앙의 검은 점) 후세 무슬림은 '하갈'이 물을 얻기 위해 뛰어다닌 '사파'와 '마르'라는 2개의 언덕을 포함하는 '메카'지역에, '검은 돌'이 놓인 '카바'를 둘러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알 하람' 모스크 (연면적 약 18만 평방미터, 50만 수용가능, 입구만 64개)를 건설하여 이슬람의 제일 중요한 성지로 만들었다. 


순례자가 ‘하지’ 기간에 ‘메카’에 도착하면, 먼저 검은 휘장에 가려진 직사각형의 검은 돌을 모신 '알 하람' 모스크의 광장 중앙에 놓인, ‘카바’ 신전으로 간다. ‘카바’ 신전은 모함마드가 메카를 정복한 후, 알라(신)를 모셨다. 거기서 검은 휘장에 가려져 있는 '카바' 신전에 놓인 성스러운 '검은 돌'에 입을 맞춘 후, '카바'를 반시계 방향으로 빠르게 4번, 천천히 3번, 총 7번을 돌아야 한다. 만약, 횟수를 빼먹거나 제대로 못하면 순례 자체가 무효가 된다. 


잠잠수를 마시려는 순례객들

그 다음, ‘잠잠’이란 샘물을 마셔야 한다. 이어서, 모함마드가 메카를 점령한 뒤, 모함마드가 속한 ‘꾸라이쉬’ 부족이 하던 관습대로 ‘카바’ 신전의 온갖 잡신을 제거하고, 악마에게 돌을 던지며, 양, 염소 등의 제물을 바친다. 이게 모함마드가 참배하고 돌아본 이 코스가 순례의 의식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메디나’에 있는 모함마드의 묘를 찾는다. 따라서, ‘메카’는 무슬림 순례자가 꾸란에 따라 행하는 종교적 의무의 최종 목적지이다.  


- 5행의 하나인 '하지'(순례)와 무슬림의 유대감

무슬림은, '6 신(6信)' 중의 하나인 '천사에 대한 믿음'으로 '가브리엘(Gabriel)'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 ‘계시’를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내쳐진 목마른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샘물을 주었으니, 이는 ‘하지'(순례)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라마단’ '단식'은 모함마드에게 '꾸란'을 가르친 ‘가브리엘’ 천사의 '신성한 달'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니, ‘라마단’과 ‘하지’는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다. 원래, ‘성지 순례’는 '예루살렘'을 찾는 유대교에서 나왔지만, 이슬람도 '하지'(순례)를 실천사항으로 강조하고 신체 건강한 남녀 성인 무슬림은 반드시 일생에 한 번은 선지자 '모함마드'가 태어난 성지 '메카'를 찾도록 하고 있다. 


무슬림들이, ‘하지’로 '메카'에 순례를 할 때에는, 국적 불문 남성은 누구나 회색의 ‘이흐람’을, 여성은 검은색 옷을 입는다. ‘옷이 날개’ 이듯이, 옷은 빈부나 신분의 표시하는데 모두가 같은 색깔로 같은 종류의 옷을 입는 것은, 세상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신 앞에서 모두가 동일하다'는 평등사상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하지’ 기간에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백만 무슬림이 똑같은 의상을 입고 '알라(신)'의 계시를 되뇌며 불평 한마디 없이 함께 어울려 행사를 치른다. 대규모 군중이 똑같이 이렇게 하는 것은 서로 간에 어떤 일체감과 유대감 없이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모든 무슬림은 ‘하지’ 기간 중에 성지 '메카'를 찾으려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는 연중 수용 가능 인원을 고려하여, 연간 250여만 명을 각국의 무슬림 인원수에 비례하여 ‘하지 참석용 비자’를 발급한다. 예컨대, 무슬림이 2억 명인 인도네시아는 약 22만여 장, 파키스탄, 인디아가 각각 17만여 장이다. 이 정도면 대략 계산해도, 매년 250만 명이 60년 동안 찾는다면, 전세계 16억 무슬림이 60세 평생에 한 번은 '하지'를 할 수 있다.


'하지'(순례) 기간에, 사우디 종교경찰이 '메카' 출입을 감독하여 불신자의 입장 불가 등, 여러가지 안전 조치를 취하지만, 순례 행사에 워낙 많은 사람이 참여하다 보니, 밟혀 죽는 사고가 매년 빠지지 않고 TV에서 속보로 나온다. 사고의 원인은 주로 이 '검은 돌'에 입을 맞추는 일 때문이다. 순례 기간에는 너무 사람이 몰려들다 보니, 이슬람 위원회에서 "반드시 '검은 돌'에 입 맞출 필요가 없이 손만 그쪽으로 뻗어도 순례로 인정된다"라고 강조하지만, 무함마드가 검은 돌에 입을 맞췄던 전례 때문에 모든 무슬림은 이 돌에 입을 맞추고 싶어 한다. 수백 만 명이 들어찬 신전에서 서로 '입을 맞추겠다'라고 '검은 돌'로 달려들면 금방 대오가 무너진다. 


이슬람의 순례, 기독교의 순례  

순례와 '십자군' 전쟁

전쟁을 선교의 영역으로 알고 정복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던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의 충돌 지점은 ‘십자군 전쟁의 중심이 된  예루살렘이었다. 로마 제국이후, 기독교인은 기독교 발상지인 ‘예루살렘’에 대한 '성지 순례'를 종교적인 의무로서 순례하였다. 하지만, 이슬람은 모함마드의 창시이후 계속 확산되다가 제2대 칼리프 '우마르'가 ‘예루살렘’을 차지하자, 자신의 성지라며 예루살렘에 대한 기독교 순례자의 진입을 통제하였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2대 칼리프 '우마르'(출처: 인터넷)

사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과 '예수' 등 여러 선지자의 활동 무대였으며, 예언자 모함마드도 이곳에서 천상에 다녀왔다고 전해지는 등 3 종교에게는 각별한 곳이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의 바위의 황금 돔 '알 아크사' 모스크는 이슬람의 가장 큰 성지인 '카바' 신전이 있는 메카의 '알 하람' 모스크와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모함마드의 무덤)'와 더불어, 이슬람 3대 성지이기도 하다. 


순례자의 길이 막히자, 기독교의 교황은 서구의 각 영주에게 ‘이슬람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예루살렘을 탈취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11C 말- 13C 말까지 약 200여 년간 8차례에 걸쳐 ‘십자군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서구와 아랍의 전쟁이었다. 당시 교황은, ‘카놋사의 굴욕(AD 1077)’사건에서 보듯이, 종교적 권위(신권-교황)가 세속적인 권위(왕권)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중 자행된 무차별한 학살 등과 ‘십자군 전쟁’에서의 패배로 민심은 신권을 떠났고, 결국 왕이 교황을 유배하는 ‘아비뇽의 유수(1309-1377)’로 이어져 신권은 쇠락을 길을 걷게된다. 순례로 인한 '십자군 전쟁'의 패배로 유럽의 역사가 바뀐 셈이다.


- 고행을 통한 마음의 평화

옛날, 말과 낙타밖에 탈 것이 없던 무슬림에게 ‘하지’는 종교적인 의무로 '신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지만,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부터 멀고 먼 아라비아 사막에 있는 ‘메카’로 순례를 떠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무슬림은 ‘순례’를 가장 중요한 실천 의무로 간주하고 최상의 영광과 보람으로 여겼다.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순례를 떠난 이들은 '고행'을 겪으며 자연스레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그리고, 지리적인 멀리 떨어진 이슬람 각국은 순례를 통하여 이슬람 문화가 교류되어 문화적 일체감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슬람에서는 실제, 순례를 수행하고 온 사람의 이름 앞에는 반드시, ‘순례를 수행한 사람’이라는 뜻의 경칭인 ‘하지’를 붙인다.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는, 이 경칭은 오늘날에도 대통령 직함 앞에 놓을 수 있는 최고의 직함이며, 순례자가 돌아오면 온 마을이 대축제를 벌이며 그를 환영한다.


이슬람의 이런 사회적 예우와 달리, 기독교의 순례는 영광의 쟁취라기 보다 ‘나 자신을 오롯이 다시 생각하는’ 고행길이다. 기독교 순례자의 성지 순례는 ‘그간 지은 죄를 속죄받는다’는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처음, '고행길'로 순례를 시작한 이들은 수도자와 성직자였다. 그들은 주로 예루살렘에 갔으나, 십자군 전쟁 패배 이후 긴 세월 발길을 돌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 스페인 '콤포스텔라' 대성당

기독교(구교)의 유명한 순례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매년 50여 만 이상의 순례자가 각지에서 모여든다. 긴 시간 혼자 험한 길을 걷는 게 쉽지 않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 중 상당수는 딱히 목적지인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것만 목적이 아니다. 길을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길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내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길을 걷는 모든 고행의 시간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순례를 잘 요약한 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독교 고전서적인 '존 번연(1628~1688)'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으로,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불후의 명작이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와 많은 이들이 관람하였다. 이 책에서, 주인공인 순례자 '크리스천'이 여행간 마주한 여러 사람과 상황들은 '종교를 넘어서 살아가며' 접하게 될 상황이지만, 순례의 최종 종착지로 그가 찾아가는 '천성(하느님)'은 자기의 이상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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