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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말 문화, 기록 문화

'문화, '기록문화 

사고의 차이 - 실리와 체면 

양자택일과 두리뭉실

올바름과 계약서 이행



 '문화, '기록문화

서구의 인간관계는 철저하게 계약적이다. 웬만한 일은 모두 기록으로 남기므로 섣부른 잔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잘 보이려고 비굴하게 굴 필요도 없다. 이들은 문서로 쓰인 계약을 절대적으로 여기듯, 뭘 하려면 각종 서류에 서명을 몇 번씩 해야 한다. 때문에, 무슨 불만사항이 있다고, 고함을 지르고 거칠게 항의하는 직설적인 행동보다, 문서로 점잖게 접근해야 한다. 전화나 말로 항의하면, 좋게 대꾸하고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불만사항을 기록하여 문서나 이멜로 보내면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바로 반응한다. 기분이 나빠도, 감정이 앞세우는 행동을 미숙하게 보는 것이다. 또, 남아있는 기록은 어쩌지 못하니까... 이들은 말보다는 기록이라는 진리를 교육이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변호사 직업이 번성할 수밖에 없다.


지하실 석면제거 작업(출처: 인터넷)

필자가 미국 육군지휘참모대학 교환교수로 부임하였을 때, 학교 측은 고풍스러운 단독주택(지상 3층, 지하 1층) 관사를 제공하여 주었다. 미군은 대령급이면 대충 이런 집에 살지만, 당시, 어린아이 둘과 우리 부부 등 4 식구가 살기에는 집이 너무 커서 '가지고 간 조그마한 짐들'을 풀어놓아도 흔적이 없을 정도라 지하실 공간은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소파, 식탁 등 집안 가구를 모두 빌려준 학교 지원센터에서, 서신이 왔다. 서신내용은 당신이 살 집 지하실에 이사 전에 미리 철거해 둔 마루용 카펫에서 '석면(asbestos)'이 검출되었다며, 지하실 출입을 삼가고집안 전체를 다시 검사해야 하니 불편하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석면은 유리 섬유의 일종이다. 석면가루가 폐 속으로 들어가면 제거가 불가하여 폐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검사는 신속히 진행되었지만, 우리나라 은행 대출 심사처럼 여러 군데 서류의 '확인', '동의' 등에 많은 자필 서명을 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법무과의 향후,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다시 서명하였고... 모든 과정이 기록과 서명의 연속이었다. 너무 많은 서류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그들의 염려와 철저한 확인, 보상 등 진행과정과 후속 조치는 놀라울 정도였다. 이처럼, 서구의 기록문화는 철저하다.


이와 달리, 아랍인은 말이 앞선다. 각종 공식 행사에 가보면 정치가는 물론, 군인도 모두 더운 날씨에 병사들을 세워놓고 지루하게 열정적으로 연설하였다. 지도자부터 말이 많아서일까?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도 순식간에 몰려들어 서로 잘, 잘못을 따지며 한 마디씩 던진다. “말이야 무슨 말을 못 하랴!?” 늘 그렇듯, 실체가 없는 '말'은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해법도 없다. '카이로' 도심 곳곳에는 무슨 일만 있으면 주변을 배회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두가 뭐라고 떠들며 참견하는 장면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그러니, 외국인으로서는 이들과 얽히거나 무슨 사고라도 나면 우선 현지를 '얼른' 떠나는 게 최선이다. 


과거 식민지 시절, 지배자 서구인에게 뭔가를 기록한 용지에 서명하였다가 곤욕을 치른 사례를 체험했던 이들이다. 그렇기에, 무슬림의 '말 문화'는 정당한 '계약서'조차 서명을 꺼리게 만든다. 특히, 불리한 상황에서는... '인샤 알라'라고 한마디 하면 답이 없다. 문자로 남겨진 문서를 좋아(?)하는 서구인과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른지?' 정답은 없다. 다만, 조화롭게 살기 위해, 모두가 알고 받아들이고 양해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사고의 차이 - 실리와 체면 

필자가 유학시절이나, 대사관, 구주안보협의체 (OSCE), 유엔 평화유지군 등 '국제 환경'에서 근무할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은 미국, 오스트리아, 덴막, 프랑스 등 서구와, 아프리카, 서남아 및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가졌다. 그런데,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큰 틀에서 보면 사고와 행동 방식에서 유사성이 많았다. 물론, 몇 군데 다른 환경에서 만난 몇몇 사람으로 그 행태나 특성을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대인관계를 쌓아가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되었다. 


이들의 사고나 행동을 대략 요약해 보면, 서구인은 ‘성취’를 존중하고 ‘실리’를 추구하나, 한국인이나 무슬림에게는 ‘명분’, ‘체면’ 등 ‘위상’ 존중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아래 사례로 엿볼 수 있다. 


먼저, 서구인은 사물을 볼 때 동양인이나 무슬림에 비해 좀 더 큰 맥락에서 생각하는 듯하다. ‘대관소찰(大觀小察)’이라는 말이 있다. 먼저 ‘큰 그림을 그려보고 세세한 것을 챙겨라’는 뜻인데… 서구인은 돈에 관하여 매우 세심하지만, 나머지 분야는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지 않는 편이다. 특히, 비교하거나, 남을 비방하거나, 헐뜯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무슬림은 매사에 세심하고, 일일이 관여하고, 평가하기를 즐겨하는 듯하였다. 잘, 잘못을 따지고, 만약에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감싸주기보다는 흉을 보거나, 야단치고, 잔소리를 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었다. 아랍인은 문맹률이 높지만 말 잘하는 달변가가 많다. 아침 인사만 해도 매우 아름답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무슬림은 행동보다 말이 많고 ‘사실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현상을 세심하게 이해하여, ‘정보를 과대하게’ 전달하는 경향이 있으니, 이들의 말은 항상 꼼꼼하게 확인하고, 새겨들어야 한다. 특히, 환담 시에는, 중국인이 각종 고전이나 시언을 인용하듯이... 꾸란이나 ‘비유 및 은유(이야기, 속담, 은유, 우화) 화법’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니, 만약, 용어나 배경을 모르고 말뜻을 모르면, 절대로 수긍하지 말고 반드시 그 진의를 재차 확인해야 한다. 대충 아는 척하고 수긍했다가 나중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대립과 순종’의 구도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다문화적인 수평적 사회에서 성장한 서구인은 서로의 견해에 대해서는 존중은 하나, ‘대립적’이다. 그러므로, 서구인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편이다. 


미국 학생들 토론회

함께 공부했던 한 미국 학생은, 아무리 저명한 교수가 설명해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하여 질문을 이어갔다. 교수의 저명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객관적 진실을 추구하며 고집스럽게(?) 반박이나 논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서구인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세로 논쟁과 지적 토론을 통하여 문제의 핵심과 이치를 따지고 사리분별로 새로운 정보나 아이디어를 찾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고교 때부터 ‘화술과 토론 (Speech & Debate)’을 주요 과목으로 선정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학술 토론회'나 '모의 유엔 회의' 등의 형식으로 자신이 부여받은 입장과 역할에 따라 상대와 치열한 토의를 통하여 배울 점을 도출해 내야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다. 대학은 물론, 군사전문학교에서도 학교에서 뭘 가르치기보다는 같은 주제를 놓고 토의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예컨대,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중국이 맞붙은 몇 차례 대형 전투에서 미국은 각자의 방식대로 교훈을 정리하여 자국 장교에게 교육하였다. 장교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팩트 자체는 모두가 아는 내용이니 큰 의미가 없다. 초점은, 철저하게 상대의 관점에서 내가 배워온 지식을 뜯어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토론 매너와 방법과, 실력을 중시한다.


그런데, 서열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동양인이나 무슬림은 공개적인 반박이나 논쟁은 조직의 화합 저해와 ‘관계’의 문화에 부정적이라 생각하며 ‘대립 회피적’ 자세였다. 한국인은 대부분 팩트에 대한 숙지로 만족하기에, 토론회에서 일반적으로 조용히 있는 편이다. 많은 한국인은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때문에, 문제를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질문하기보다 옆 사람을 통하여 조용히 알고자 노력하거나, 설령, 짧은 질문에 나온 답변을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그냥 대충 ‘알겠다’ 며 적당한 선에서 빠져나온다. 체면을 중시하고 주관적 만족을 추구하는 한국인은 ‘교수와 나’와의 관계에 따라 ‘큰 틀’을 조망을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비켜 가려한다. 그리고, 설령, 평가라도 받게 되면, 그 교수의 방법과 논리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한다. 짝퉁이 되더라도 학점을 잘 받는 걸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 매우 '순종'적이다. 


중국인은 약간 다른 듯하다. 비유와 개괄에 능한 이들은 전통적으로 어떤 상황을 고도로 개괄하는 능력과 정곡을 찌르며 한마디로 표현하는 방법을 추앙한다. ‘촌철살인’의 기법이다. 중국인은 한 사람이나, 한 상황에 대한 명과 암을 일시적으로 함께 포용하려 하였다. 다만 명, 암 각각에 비중의 차이는 둔다. 중국인은 처신에 있어 ‘겉과 속이 다른 상대’를 3류로 취급한다. 그들은 비록, 불행했던 과거라도 그대로 간수하고, 재현하며 교훈으로 삼는다. 반면에, 일본인은 거의 속내(혼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랜 무인정치 탓이었을 것이다. 


무슬림도, 토의 시에 직관적인 은유나 비유를 통하여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만, 장황하기도 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토론이 안 된다. 자기주장이 강하다고나 할까? 특히, 학교 밖의 사회적 문제에는 좀 더 조심스럽다. 무슬림은, ‘대립 회피적’이지만, 이들은 자신의 종교나 관습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무례한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견해와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에 대해 분노나 원망, 심지어 복수의 열기에 사로 잡힌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체면’이 중요하고 '같은 편'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실각한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 원수는 '아랍 연맹'회의에서도 친미적인 다른 아랍국가 원수들에게 대한 거친 비난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무슬림은 만약, 무슨 불평, 불만 사항이 있으면, 다혈질인가아니면 평소에 억눌린 기분을 풀려는 것인가?” 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소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열변을 토하며 큰일 난 것처럼 난리를 친다. 반면에, 이들은 '불리하다' 싶으면, 마치, 우리가 아는 ‘중동의 침대 축구’처럼, 어딜 가나 '약자 행세'를 한다. 집단의 일부로 살아온 습관으로 개인적 책임에 감각이 무디어, 무슨 일이든 말로써 때우려 하고 심지어, 범죄행위를 저질러다 경찰에 체포되면, 자신이 '무슬림'이라 억울하게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양자택일과 두리뭉실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 강조한 여러 문화권의 자식 교육은 매우 흥미롭다. 서구의 어머니들은, 남과 다른 사람이 되어라.”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것이다.”라고 자기중심적인 개인적인 삶을 강조하였지만, 동양의 일부 어머니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라”,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두리뭉실하게 살아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등 '중용적' 자세와 주변사람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자신을 드러내는 서구보다, 동양은 집단의 일부로 자신의 역할이나 위상 찾기에 주안을 두었다. 공자의 중용사상도 ‘두리뭉실’을 추구하고 모순에 덜 민감하며, 상반된 주장을 동시에 믿게 해 주었다. 우리에게 패거리 정치나 모함, 권모술수가 남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인은 '인간관계'를 사회생활의 중요한 척도로 여기며, 상호관계를 2중, 3중으로 다양하게 맺는다. 상하관계를 분명히 정하고 상급자 위주로 인간관계를 고려한다. 그리고, 그 행사의 성격에 맞게 모두가 함께 참여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급적 대충이라도 '두루두루' 인사하려 하고, 인사하지 않는 이에게 섭섭해한다. 이에 비해, 서구인은 꼭 필요한 사람하고만 인간관계를 맺으며, 직장 상사라 하더라도 자신이나 다른 동료들과 동등하지, 특별히 우위에 두지 않는다. 그러니, 파티를 하더라도 필요한 사람하고만 시간을 보낸다. 


이처럼, 서구의 사고방식은 이지적, 합리적이나,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는 형식주의(몸/마음)의 틀에다가 논리적 접근법만 강조하는 모습이다. 논리의 정당성은 '상황 배제'가 전제이다. 그러므로, 차갑고 딱딱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기본이 ‘뉴턴’의 물리학과 같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서구식 과학기술은 과학과 수사학 (기하, 물리, 통계)을 연결하나, 동양의 사고는 논쟁과 수사화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양자택일’의 논리만 해도 그렇다. 서구는 어떤 행동의 배후에는 ‘하나의 이유’가 있다지만, 그 배후에는 사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상황적인 원인보다 행위자 내부 원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단칼에 잘라버린 실타래(출처: 위키백과)

과거, ‘디오게네스’ 앞에 선 ‘알렉산더’ 대왕이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 실타래를 바라보다, 일일이 풀기보다 단칼에 베어버렸다. 이런 식의 문제해결처럼, 서구인은 가급적 문제를 ‘단순화’ 하려 한다. 국제관계의 갈등 해결도 서구는 ‘시시비비’에 따라 대응책을 내놓고 ‘정의 구현’을 내세우지만, ‘적대감 해소’가 목적인 동양은, 가해자가 일단 먼저 ‘사과하기’를 바란다. 이들에게는, 마음에 응어리가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순조롭고 기분 좋은 계약이 되기 어렵다. 이들의 논리는 계산은 머리로 하나계약은 마음으로 한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은 무슨 계약을 했더라도 ‘마음이 바뀌면’ 이를 인간관계나 적절한 타협으로 변경하고자 시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처럼, 한국인의 사고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가변적이며, 상황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황희’ 정승의 우화처럼, “모두가 옳다는 방식으로 양귀를 열어두어야 '인격이 원만하다'라고 평가받는다. 매사를 문구 그대로 해석하면 “고지식하다”라고 한다. 이처럼, '주변 정황'을 따지는 한국인은 ‘두리뭉실’함으로 ‘양자택일’의 오류를 덜 범하고 더 쉽게 수정하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의 오류는 자칫 상대를 자극하여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올바름'과 '계약서' 이행

지난 정권에서 시작된 한‧일 갈등의 원인은 ‘올바름’과 ‘약속 이행’에 대한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한‧일 간 갈등의 중심에는 '과거사'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정부는 식민지배는 불법이고, 당시 결정이 ‘올바르지 않았으니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실로, 일제 36년간 살육과 수탈, 압박과 통제로 억압당한 식민지배의 참혹함은 그 무엇으로도 단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고, 배상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일괄타결되었으니, 어떤 문제든 그에 ‘정해진 기준’을 따르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유학사상에 길든 한국인의 진실성은 ‘올바름’이다. 올바르지 않으면 배척한다. 그러나, 선과 악을 가르는 '올바름'은 정직과는 다르다. 다만, 도덕 지향적이다. 도덕은 현실보다 ‘이상적’이다. 또한, 한국인의 올바름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조선의 유생에게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일이었다. 때문에, 가끔씩 ‘올바름’은 도덕적 명분으로 ‘권력다툼과 밥그릇’ 싸움의 빌미가 되기도 하였지만, 이들에게 '사죄와 배상'이라는 마음과 물질은 '진심과 성실'이 함께해야 했다. 


그렇지만, 일본은 1990년 태평양 전쟁 전범 '히로히토' 일왕의 대를 이은 아들 '아키히도' 일왕이, 조선 식민지배에 대하여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다"는 '대단히 애석하게 생각한다'는 정도의 애매한 수준의 사죄에 그쳤다. 그러고도, 일본은 "지난 60여 년간 약 50여 회의 사죄를 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사죄를 되풀이해야 하나...?"라고 되물으니, 한국인들은 "사죄에 진정성이 없다"라며 아예 다시 '사죄하라'라고 냉담한 반응인데.. 아마도, 일본인이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맨 땅에 무릎 꿇고 앉아 이마를 땅바닥에 갖다 대는, 이른바, '도게자'식의 사과를 하라는 것인지...?  상대에게 수치심과 반발만 안겨주는 걸로 마음의 위로를 삼겠다는 걸까?


이에 비해, 오랜 시간 서양과 교류해 온 일본인은 ‘계약적’이다. 한국과 달리, '프로세서'(Process, 과정)에 익숙한 일본인의 현실에는 늘 '매뉴얼'(manual, 교범)이라는 ‘정해진 룰'(Rule, 규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룰'은 계약이라는 현실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명론자에게는 상황과 시간이 바뀌더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가치였다. 마치, 스포츠 게임에서 '룰'이 중요한 것처럼... 그러니, 문서로 된 '합의(계약)서'에 서명했으면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도덕과 현실 간에는 간격이 있다. 즉, 한‧일은 서로 간의 ‘가치’가 다르다. 다른 잣대로 ‘과거사 문제’라는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면, 둘 간의 합일점은 없어 보인다. 


일본 방위 백서 표지(출처: 인터넷) '기마 무사'의 표지가 매우 호전적인 의도를 담고 있어 보인다.

한국에서, 과거사 문제가 다시 이슈화되자마자 일본은, 2019년 판 ‘방위백서(防衛白書)’에서 안보 우선순위로 미국-호주-인디아-동남아 다음에 한국을 두었다. 일본은, 이제 한국을 더 이상 어깨를 나란히 할 동맹이 아니라, ‘약속(계약)’을 지키지 않으니 국가로서 인정하거나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못 믿을 나라’이니 당연히 수출 규제 같은 조치가 따랐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을 국가 간의 약속 따위를 내팽개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나, ‘정직하지 않은 나라’로 부각해 국제적인 이슈화로,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한편 한국도, “못 믿겠다는 나라와 안보를 나눌 용의가 없다라며, 2019년 판 한국 ‘국방백서’에 ‘일본과 기본가치 공유…’ 부분을 지우고, 주변국 군사 협력 순서에서도 일본을 중국 다음에 놓았다. 또, 수출규제에 대해, 자해적(?)인 조치로 일본과의 ‘군사정보 보호 협정 (지소미아, GSOMIA)’마저 폐기하겠다고 위협하였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이 주장하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으로는, 일본의 보복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국가 간의 약속을 지켜라!”라고 요구하면, 한국만의 잣대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특히, 국가 간 협정 위반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과 판단은 객관적이고 냉혹하다. 국가 간 ‘협정’은 이미 국제적인 규범으로서 자리 잡았다. 따라서, 한국의 가치나 내부 사정을 이해하기보다, 약속과 ‘룰’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비판과 후유증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대응이 너무 ‘나’ 중심적이면 안 된다. 한‧일 양국이 ‘편 가르기’적 관점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걸, 서로 ‘국내 정치용’으로 바라본다.  


최근 들어, 정권이 바뀌자 양국 정상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반발 무마가 더 급해 보인다. 여당은 "약속은 지켜주되, 과거는 잊지 말고, 이제부터는 미래를 준비하자"는 정책이지만, 야당은 이런 게 '일본에 대한 굴종'이라거나 '침략 행위 합법화' 정책이라며 첨예하게 대립한다. 일본 또한, '이미 끝난 일이니 사죄를 못하겠다'거나, 이 참에 '독도 영유권' 등 온갖 난제를 해결하라고 달려들 태세다. 그쯤 되면 화해와 협력은 물거품이다. 필자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언제까지나 이런 일에 얼마나 더 많은 국민적,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되는지...?" 걱정하는 입장이다. ‘국제 협력’이나 '동반자' 관계는 항상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무슨 문제든 ‘나 위주’로만 생각하면 해답은 없다. 더구나, 작금의 현실은 '말'로 해결하기에는, '기록'이라는 '계약서'가 더 우위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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