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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합리적 개인주의 - '임무'보다 '인간 존중'

존중과 배려 '인간 존중'의 마음 

유엔군 에피소드 (1): 합리적 개인주의 공동체인 유엔 

유엔군 에피소드 (2): “나에게 충성을..?”

유엔군 에피소드 (3): 거짓말과 고발정신

합리적인 개인주의


존중과 배려가 기본인 사회

미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만났던 대부분 미국인들은 피부색이나 계급에 무관하게 최소한의 기본 인성에, 건전하고 성숙한 의식으로 살도록 교육받은 사람들 같았다. 물론, 필자가 살았던 동네가, 군부대 안이거나 대학교 근처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미국사회가 범죄율도 높고, 좀 모자라거나 이상한 사람도 많다고 알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대부분 사람의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태도는 일상적이었다.


그중에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은, 뒤따라 오는 타인을 위해 출입문을 잡아주는 것인데… 미국 사람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매일 들락거리는, 아파트나 사무실에서 자신을 위해서만 출입문을 열고 닫지, 절대(?) 둿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 같지 않다. 언젠가 필자가 “설마, 그런 걸 할 줄 몰라서 그럴까..?” 하고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잠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준 적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따라 나오던 사람들은,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잡아주겠다고 하지도 않았고,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 모두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지나쳤다. 한 마디로, 문을 잡아주는 것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보이는 예의' 정도로 알고 있으니, 상, 하 관계가 아닌 사람은 서로에게 해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3초의 배려, 둿 사람에게 문 잡아 주기(출처:조선일보) 

그런데, 그런 일을 경험하고도, 또 실수를 하였다. 일전에,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식당 내 커피머신에서 커피 두 잔을 빼서 양손에 들고 나오다가, 앞서가는 사람이 그냥 문을 닫고 가는 바람에 커피를 쏟고 약간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필자의 주변 미국 사람들은 이런 경우 의례히 문을 잡아 주었으니, 누가 문을 좀 잡아 주리라 기대하고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하려 했는데, “웬 걸…,” 양손에 물건을 든 사람이 나오는 걸 뻔히 보면서도 매몰차게도 문을 확 닫고 나가버렸다. 


아는 사이나 상하관계가 아니니, “내가 너에게..., 왜?”라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배려하는 것을 배운 적도 없고, 체질화되지 않은 탓인지? ‘모르는 사이’라는 잘못(?) 외는 잘못이 없는데… 양손에 물건 들고 따라 나오는 사람 보면, “못 본척하기보다, 좀 배려해 주면 어떨까?” 3초 정도 신경 쓰면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 되는데... 그에 비해, 자신에 뒤이어 누군가 문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면, 자신이 양손에 물건을 든 경우에는 발로라도 문을 붙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미국인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실, 이는 글로벌 문화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긴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OPEN’ 버튼을 눌러 주는데..  도대체, 엘리베이터 문보다 더 위험한 건물의 출입문 도어는 왜 한사코 안 잡아주는지? 아마도, 호텔 '도어 맨'이라는 직업을 연상하였기 때문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건 체험적으로 몸에 배여야 하는 것 같다. 나가면서 뒤를 보고 따라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연 뒤, 뒷사람이 올 때까지 잡고 있다가, 둿 사람이 문을 잡을만한 위치에 오면 슬며시 인계하면 되는 일이다. 불과 3초 이내의 시간만 배려하면 사회가 한결 정겨울 텐데...   


- '인간 존중'의 마음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옳음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치는 일이 많다. 어느 날, 한국인 직원들 간에 약간의 불상사가 있었다. 약간 직책이 높고 나이 든 남자가 약간 나이 어린 여자에게 “네가 업무적으로 000을 잘못하는 바람에 나의 입장에 어렵게 되었다”며 야단과 호통을 치니까, “사실이 그렇지 않다”라고 대응하던 여자가 억울한(?) 마음에 그만 울어버렸다. 그런데, 소란이 벌어지자 하필이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였고 급기야 그들의 상급자에게 보고가 되었다. 잠시의 흥분으로 나이 든 사람에게는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고함지르고, 호통치고, 악쓰는 일 - 상대를 무시하는 일

이런 일에 대한 미국인의 관점은 분명하다.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치는 일 (yelling, screaming, shouting)”은 상대에 대한 무시에 다름 아니다. 그 남자에게, “아무리 누가 뭘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치는 일이 더 큰 문제”라는 거다. 일의 잘, 잘못 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 “같이 일을 하면서, 비록, 욕을 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다. 사람의 희로애락은 개인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거의 유사할 터이다. 아무리, '장유유서'의 유교적인 관습에 익숙한 우리들이라 할지라도 누구한테 야단맞고, 욕먹고서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18년 8월, 별세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의 '가나' 출신이다. 유엔의 평직원으로 시작하여 35년 만에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고, 많은 분쟁을 타협으로 이끌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장점은 '모든 이에 대한 공손함과 절제된 언어의 사용'이었다. 한 마디로, 유엔은 ‘업무 효율성’보다 ‘인간존중’이 더 중요한 기구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가 유엔군에 근무할 때 경험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유엔군 에피소드 (1): 합리적 개인주의 공동체인 유엔 

필자는 ‘유엔 평화유지군(PKO) 인디아-파키스탄 정전(停戰) 감시단’(이하, 유엔 인-파 정전감시단)에서 부단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단장은 총 병력 2만여 명의 크로아티아군 중 몇 안 되는 장성으로 근무하다 선발되어 왔는데, 약 20여 년의 군 생활 대부분을 공병학교에서 교관으로만 근무하여, 각종 의전, 의사결정, 업무지시 등에서 많이 서툴렀다. 때문에, 아무리 국가의 추천으로 왔다지만 이런저런 도전과 반발에 직면하였다. 


그렇지만, 단장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웬만한 사건이나 도전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그저 참고 조용히 일했다. 나중에 사석에서 그런 태도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진담 반농담 반 이라며, 원래 불평과 의심이 많고 소심한 편이라, 그런 일이 매우 언짢았지만꾹 참았다사실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유엔 급여가 자국에 비하면 너무 큰돈이라, 굳이 권위를 내세워문제를 야기하지 않고 그저 참고또 참았다.”라고 실토하였다.


그런데, 이런 단장의 태도는 뜻밖에도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전임자 '이태리'군 소장은 여단장 등 지휘관을 오래 해서 그런지 직업군인의 강한 기질처럼, '직설적‘인 '돌직구'를 날려 주위 사람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이에 비해, 조용히 자기 일만 하는 신임 단장은 '이태리' 장군에게 식상하였던 많은 간부로부터 훌륭한 인격자로 미화되었다. 모두 그를 좋아하여, 그의 업무능력 부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바로 유엔이 요망하는 리더십이다. 유엔은 권위주의나 상명하복의 리더십을 용납하지 않는다. 모두 동등하게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부여된 직책과 권한에 따라 팀워크로 업무 하는 리더십을 원한다. 세계 각국 회원국의 기여로 지원받은 인력들이니, 당연히, 수준이나 능력이 들쑥날쑥 다를 수밖에 없다. 그저, ‘유엔헌장’ 정신 하나로 일하는 조직이다. 


다른 일화다. 단장의 유엔본부 출장으로 단장 대리를 하는 동안,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많은 비로 도로 곳곳이 붕괴되고, 산악지대 감시초소에서 통신장비 이상 보고가 들어왔다. 750Km의 통제선을 감시하는 임무단에게 도로와 통신은 매우 중요하지만, 임무단 통신과장(유엔 정규직, P-3)은 거의 4주 동안 차일피일 복구를 미루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고산지대인 ‘카슈미르’의 기후나 도로가 열악하여, 현지인 정비인력을 안전 문제가 우려되는 현장에 파견하는 데 대해 부담을 느낀다는 이유였다.

                

(좌로부터)  호우로 무너져 내리고 강물에 잠긴 카슈미르' 산악도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많은 민간차량들

     

전체 참모 회의에서 상황보고를 받는 중, 감시초소 간의 통신단절 문제에, 부단장인 필자는 사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속한 조치를 지시하였다. 그런데, 그가 잠시 주저하자 재차 지시하는 필자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약간 크게 올라갔다. 통신과장은 자신의 ‘업무 소홀’보다 필자의 ‘권위적(?) 지시’에 ‘불편 보고서’를 제출하여, 이후 복귀한 단장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보다 직원 간의 화합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구두 ‘경고’를 받았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처럼, 유엔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비록 일이 늦게 추진되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었더라도 '인격적으로 상호 존중하고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였다면, 설령, 무슨 문제가 생겨도 크게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이 같은, 유엔의 '신종 관료주의(?)'는 미국도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국제기구에서는 효율성만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 '요란을 떨거나, 남을 닦달거리며' 일을 몰아쳐서 하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능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모습이 제삼자가 기대하는 유엔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비록, 수 차례 해외 근무로 국제환경을 안다고 생각하였지만, 유엔군으로 근무하는 동안, 한국군에서 익힌 ‘임무 우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전 상태에서 항상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한국군은 긴장 가운데 ‘전시 위주’로 사고하도록 교육되었다. 무엇보다, 임무 우선이며, ‘나’보다 ‘우리’가, '우리'보다 '부대'가 중요하고, '업무 효율성'을 이유로 수평적 관계보다 '일사불란'한 수직적 관계에 익숙하다. 하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유엔 등에서는 우리 군의 가치나 사명감을 내세우기보다 환경에 맞게 적응해 나가는 융통성이 필요할 것 같다. 


유엔군 에피소드 (2): “나에게 충성을..?”

'크로아티아'군 단장이 부임 후에, 전입 온 한국군 장교(소령) 3명과 전입자 면담을 하였다. 면담이 끝난 후, 단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단장인 필자에게, 한국 장교가 자기에게 'The Best Officer'가 되겠다고 맹세하는데..., 그러냐?”를 물었다. D는, 유엔평화유지 임무는 회원국의 자발적인 참여로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보다. 각자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면 그만인데...”. “자기에게 '최고의 장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충성심을 표시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필자는 신입 장교에게, 우리 군과 유엔군의 차이를 설명해 주며 던진 충고는, 향후 단장에게, 계급을 의식하여 한국군에서 소령이 소장에게 대하듯 하지 말고, 사관학교 시절, 동기생을 대하듯, 상대의 직책과 권한은 존중하되 각자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라는 것이었다. 한국군에게 계급은 모든 가치에 앞서지만, 서구인에게 계급과 직책은 잠시 맡아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권한과 책임일 뿐이다. 


우리 군의 장점으로서 충성심과 유사하게, 상하 간에 '전우'라는 동일체 의식을 갖는 것은 큰 덕목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너는 너, 나는 나’를 따지는 개인주의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렵다. 미 8군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한/미 연합부서에서 한국군 초급 장교의 실수로 어떤 문제가 생기자, 차상급자인 한국 장교가 미군 장교에게, 미안하다. 내가 잘못 지도한 탓이다.”라고 사과하고 초급 장교와 책임을 공유하려 하였다. 이게 우리의 정서이긴 하지만, 정작 미군 장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니잘못은 쟤가 했는데 왜당신이 책임을 진다고 해?”... 팀은 팀이고, 개인은 개인이라는 거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우리와 서구인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우리끼리 근무할 때 너는 너나는 나라면 곤란하다. 우리는 야전부대에서 근무할 때, 주어진 임무는 뭐든 잘해야 하고, 내가 밤늦게 일을 하면 남도 같이 해 주길 바라고, 내일까지 무엇을 끝내라면밤을 새워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우리가 남이가?”로 길들여진 우리들의 '동료의식'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방식은, 유엔의 가치와는 차이가 있다. 군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복종심과 충성심을 기본으로, 남아서 '밤을 새우는 동료를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동료의식은 유엔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감정’ 일뿐이다. 더욱이, 나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이를 강요하거나 기대해서는 안 된다.


유엔에 파견된 많은 한국군 장교가 다른 나라 군인과 같이 근무할 때, 우리가 우리에게 길들여진 이런 우리만의 방식만을 국제사회에서도 고집한다면, 개인적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국적, 다문화, 다인종 환경에서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할 수도 있고, 뭔가 어색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우리끼리 근무할 때와, 외국인과 같이 근무할 때 적절하게 대응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 이유이다.

     

유엔군 에피소드 (3): 거짓말과 고발정신

‘카슈미르’ 지역 통제선을 살피는 유엔군 감시초소는 장교 2명이 합동으로 근무한다. 어느 감시초소에서 한국군 장교가 스웨덴 여군 장교와 같이 근무하였는데, 교대할 후임자도 한국 장교여서, 전입 인사차 3명이 함께 지역 내 파키스탄군 부대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당시 C소령은 ‘얼룩무늬 위장복’을, 그리고 K소령은 ‘사막지역 파병용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카슈미르' 산악지대를 순찰하는 유엔군 순찰 차량

그래서, 그들을 안내하였던 파키스탄 군 장교가, 너희 둘 다 한국에서 왔나?”라고 묻자, "그렇다"는 답변에 "그런데왜 군복이 다르냐?"라고 묻자, 장난기가 발동한 C소령이 한국은 한국인데나는 한국에서 왔고저 친구는 북한에서 왔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은 파키스탄군 장교는 잠시 후 자신의 여단장에게 들은 그대로 소개하자, 깜짝 놀란 여단장은 "너희는 적대관계인데 함께 다니며 임무 수행이 가능하냐?”라고 되물었다. 사태가 커지자 C소령이 얼른 “농담이었다”라고 사과하며 사태는 일단 종결되었다.


하지만, 동행한 스웨덴 여군 장교가 한국군 장교가 유엔 임무 수행 간 타국의 국적을 사칭하여 주재국 군부 인사들을 놀렸다며 C소령의 태도에 대한 비판 보고서를 작성하여, 작전참모인 우루과이군 중령에게 제출하였고, 필자에게 보고되었다. 단장이 부재중이라 필자가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데, 본부 참모들도 '한국군 부단장이 한국 장교와 관련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었다. 


일단, 규정과 절차에 따라, C 소령에게 경고 및 근신을 조치하였지만, 징계가 미흡하다고 생각한 작전참모는 단장이 복귀하자, 거짓말은 장교의 명예심 문제로 국적을 사칭한 장교를 즉각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이의를 제기하며,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하지만, 단장은 부단장의 조치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는지, “이미 부단장이 조치했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라고 종결하였다.


이 문제를 통해서 C소령 자신은 물론, 많은 한국군 장교도 사소한(?) 농담으로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로 생각한 사안으로 인해 큰 교훈을 얻었다.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면 작은 '거짓말' 쯤은 별생각 없이 ‘농담’이라며 내뱉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良藥苦口)’라는 말처럼, 모두가 유엔은 다국적, 다문화 집단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였고, 호된 경험을 한 C 도 이후부터는, 'Integrity(진실성)'을 추구하는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어떤 경우든 거짓이나 ‘헛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모두에게 친절하고 사람 좋은 스웨덴 여군장교가 어떤 사안이 ‘문제’라고 생각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하게 고발하는 고발정신에도 놀랐다. 더불어, 우리가 경제적 후진국쯤으로 치부하는 '우루과이' 장교의 엄청난(?) 명예심에도 놀랐다. 합리적인 개인주의는 개인의 명예에 자부심을 갖는다. 개인의 명예심은 국가 경제력의 과다와는 무관하다.


이들처럼, 행동하는 소수의 신고정신이나, 명예심은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것은, '보신주의'적 사고로 동료에 대한 의리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군자로서는 괜스레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도 없고, 남에게 '뭔가를 일러바친다'는 게 양반의 도리도 아니며, 모른 척한다 해서 명예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남의 원성을 사거나 보복을 당할 일도 원하지 않으니, 가족이나 친구 등 친한 사람의 일이라면 더더욱 신고를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외면이 최선은 아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썩어 문드러진 병폐를 가만 두면 아물어질까? ‘행동하는 소수’가 잘못을 보는 '족족' 도려내야 사회와 나라도 건전해진다. 누구에게든 ‘신고정신’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개인주의

상기 사례처럼, 현실적으로 일이 늦게 추진되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인격적으로 상호 존중하고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일이 바빠지다 보면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미국 영화 등을 보면 전투라는 긴급한 상황이 전개되면 허둥대는 신참들에게 '욕설을 하며' 윽박지르는 부사관 등의 모습이 비친다. 그런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필자가 미 8군에서 근무하는 동안 보기에 미군은 주요 훈련 등 비교적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욕설하거나 고함을 치는 일을 매우 꺼려했다.   


왜 그럴까? 전투든 뭐든 그 임무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 항상, 다음이 있고, 또, 다른 임무가 있는데 서로 간에 감정 대립이 생기면, 가면 갈수록 조직의 역동성은 저하될 것을 오랜 참전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고 아랫사람을 핍박하거나, 위협해서 일을 처리하였다면, 그 결과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나중에라도 그 과정 상에서 발생하였던 '인간 무시'의 문제점을 더 크게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자기도취에 빠진 감정 표현을 감히 하기 어렵다. 


크리스마스 파티

이제, 시대가 바꿔었고, 가치관이 변화하였다. 어린아이도 존중받는 세상이다. 미군 사령부나 각 기지에서는 한국군에서 미군에 파견된 KATUSA (카투사) 병사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일상화되어 있다. 미군은 어찌 보면 가장 계급이 낮은 카투사 병사의 전입, 표창, 전역행사 주관은 물론, 생일잔치나, 한국의 명절 등 각종 행사에도 부서 전원이 참석하여 함께 축하하고, 선물도 주면서 격려해 준다. 뿐만 아니라,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파티 때는 사무실, 복도, 화장실 등을 관리하는 미화원 아주머니에게도 행사를 같이하자고 권하고 선물을 나눈다. 우리 사회도 이처럼, ‘임무보다는 인간 존중’이 우선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선진 사회로 도약해야 한다.


조직 구성원 간의 관계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다. 때문에 리더도 그 과정에 신경을 써야 하고, 인화와 팀워크를 이루는  기본으로 ‘인간 존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요즘 사회적 시스템은,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구성원이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떤 방향으로 그들의 에너지를 유도하는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사회의 변화에 맞게 자신을 돌아보고 남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합리적인 개인주의가 환영받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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