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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해외근무 기피와 국제감각

'해외 근무 기피' 풍조 

"한국이 좋은데 뭣하러 해외로 나가?"

국제 감각 - 세계화, 국제화

낯설은 '세계화, 국제화' - 익숙지 못한 경험들


'해외 근무 기피' 풍조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 어느 조간신문에 “주재원 다녀오면 아파트 한 채?... 아토피만 생겼다” (중앙일보, 2020년 2월 18일 B2)라는 제하에 “엘리트 코스 해외 주재원 위상 반전”이라는 글이 실렸다.


내용을 보니, 한때 승진의 지름길이었던 해외 주재원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거다. 어떤 기업의 중국 주재원은 나쁜 공기질로 아이가 “아토피”로 고생하였다는 이야기고, '상하이'로 갈 어떤 주재원은 주재원에 대한 경제적 혜택이 옛말이라며  물가가 너무 올라 주재원 수당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했고, 어떤 이는 ‘브라질’ 주재원으로 선발 됐지만 치안과 자녀교육 문제로 포기했고, 또, 어떤 이는 나갔다 오면 승진 보장은 옛말이고, 4~5년 자리를 비운 바람에 경쟁에 뒤져 임원의 꿈을 접고 현지 채용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봤다는 거다. 


누구는 “승진도 확실치 않고, 수입도 별로 득이 없는데 우리가 왜 고생하느냐?”는 말도 전했다. 그러면서, “국내에 있으면, 주 40시간 근무에 휴가 때 해외여행도 자주 가는데... 이제, 주재원의 매력이 크지 않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졌지만 배우자의 휴직으로 인한 경력 인정도 안 되고, 결혼 연령이 늦어지니, ‘그나마 큰 혜택’이라는 자녀의 대입 특별 전형도 제한적이다. 이처럼, 최근 해외 근무에 나가는 주재원은, 일부 근무지의 나쁜 환경조건이나 기업의 지원 축소, 그리고 당사자들의 가치관 변화라는 여러 요인들로 사기가 많이 저하되고 있다 한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앞섰던 일본은 이미 한 세대 전 이런 현상을 경험했다.


필자는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직업 군인은 다소 보수적, 획일적, 폐쇄적 집단의 이미지여서, ‘해외근무’를 말하는 게 엉뚱할 수도 있겠다. 계기는 초급 장교 때 미국 유학이었다. 그런데, “Out of Sight, Out of Mind (안 보이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란 말이 있다. 대인관계가 중요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겐 참 아픈 표현이다. 필자가 오랜 해외 근무로 국내 자리를 비운 동안 자연스레 야전에서 열심히 쌓았던 인간관계는 거의 소멸되었다. 군인에게는 좌우상하 인간관계가 능력의 한 부분이다. '군인'이라는 직장의 가치에 군사외교의 영역이 부합하지 못했기에.. 더 높은 계급으로 승진하기 어려웠다. 해, 공군은 육군과 다른 시각이었지만...


하지만, 특정 지역의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공무원이다 보니, 여러 나라, 여러 지역의 안보 관련 사항을 복합적으로 경험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딜 가든 언어는 물론, 현지인의 생활 패턴도 서로 달랐으니,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아내와 아이들 온 가족이 함께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았다. 특히, 아이들 교육이 쉽지 않았다. 아빠가 해외근무로 나가는 바람에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선 6살, 10살 배기 꼬마들에겐 말도 안 통하는 선생이나 또래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건 큰 ‘스트레스’ 였을 것이다. 거센 도전만큼, 그 과정도 혹독했다. 그리고, 문제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름, 극복한 보람도 있었을 것이다. 


2020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 준호’ 감독을 통역하다가 유명세를 탄 C 씨는, “… 마국인이 되기엔 너무 한국적이고,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기엔 너무 미국적인, 그러면서도 한국계 미국인도 아닌 존재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공감이 간다. 필자도 이전 글에서 이런 이를 '경계인'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초, 중, 고, 대학을 미국 학교에 다닌 둘째 아이는 한국 직장의 한국식 ‘눈치’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한국이 좋은데 뭣하러 해외로 나가?"

돌이켜보면, 1988년 올림픽이전까지는 정부의 ‘달러 절약’ 정책으로 해외 출국은 제한되었다. 당시에는, 필자처럼 미국 대학 석사 국비 유학생이 된 것은, 제한된 인원에게만 허용된 엄청난(?) 특혜였다. 갔다 오면 저절로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유학으로 시작된 외국 생활은 호기심과 설렘도 있었지만, 할수록 단조롭고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 필자만이 아니라 장기 해외 파견자였다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미국, 오스트리아 등 서구에서의 생활은 그래도 나은 편이나, 이집트, 인디아, 파키스탄 등지의 생활은 문화 차이와 인프라 제한으로 훨씬 단조로웠다. 이런 곳에 살면서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근무지마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내면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알게 되었다는 거다. 더불어, 한 국가, 한 지역에 대한 매력과 애착은 그저, 며칠간 훌쩍 여행으로 다녀가는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덕분에, 해외생활이, 더 이상 '꽃 길'이 아닌 '흙 길'이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해외근무를 묻는다면, 선험자로서 “특정 분야나, 지역 전문가가 되면 이런, 저런 어려움을 보상받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부분에서 얻은 것이 더 크다고 생각되면, 못 가진 부분에 대해 미련이나 아쉬움은 가질 필요가 없다. 제한된 삶에 모든 것을 다 갖고 누릴 수 없으니까... 그러니, 모험심 많은 젊은이라면, "한국이 좋은데, 뭐 하러 나가?"라고 반문하기보다, 남의 눈치나 어떤 겉치레를 보지 말고 그저 좋아하는 일이나 분야에, ‘비전’을 갖고 도전하는 일을 찾아다니길 권하고 싶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지 않는가?


국제 감각 - 세계화, 국제화

한국의 성장, 세계에 나가서 해야 할 일

오래전 별세한, 한때 한국 최대의 재벌 그룹 중 한 명이었던, 어떤 사업가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그의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 사업가로서 많은 나라를 두루 돌아보고, 다양한 사람과 접촉하였을 그의 말이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무겁게 느껴진다. 그는 이미 세계화, 국제화를 피부로 느꼈다.


자국 우선주의가 난무하는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한국 같은 약소국의 나날은 늘 예민하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는 약소국은 국제 흐름을 잘 알고 대처하는 '국제 감각'이 생존력이다. 그리고, 국제  감각은 ‘세계화, 국제화’를 통하여 형성된다. 처음 ‘세계화, 국제화’를 국가 시책으로 외쳤던 정부는 불과 30여 년 전, 김영삼 정권이었다. 우리의 국제적 역량에 비하면 한창 늦었지만, 그나마, 중국 대륙이 깨어나기 전이어서 다행이었다.


우리 정부가 강조하였던, '세계화'의 정의는 뭘까? ‘세계화 (Globalization)’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하여 개인과 사회 집단이 갈수록 ‘하나의 세계’ 안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비슷한 의미인 ‘국제화 (Internationalization)’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 준칙, 제도, 관행을 수용하려는 경향이며, 이중, 가장 중시되는 가치로서 ‘보편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견 거창해 보이는 두 단어의 뜻을 굳이 구분하면, ‘국제화’가 국민, 국가 간의 교류가 양적으로 증대되는 현상으로, 그 첫걸음은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양하게 살아온 외국인의 관점이나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세계화’는 양적 교류 확대를 넘어 세계인의 사회생활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근세들어, 서구가 '세계화, 국제화'의 선두에 서 있는 듯하다. 유럽 대륙은 반도인 한국과 달리, 지리적 특성이 보다 개방적이었다. 이 때문인지, 서구인의 지혜는 ‘나만의 방식에 집착하기보다 남과 함께 산다’는 개방적 자세이다. 그들은 오랜 투쟁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와 다른 상대 그리고, 다양한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각자가 처한 이질적인 환경에서도 서로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 비판적이기보다는 수용적 자세로 서로 간에 호감을 사는 법을 우리보다 빨리 체득하였다. 


그래서일까? 서구에서 사는 교포들은 ‘맘이 편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일부, 인종차별적 사건도 있지만, 다양한 인종이 섞여사는 곳은 타인종, 타 문화에 대해 비교적 포용적이다. 대부분 피해가 없으면,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편이니까... 이런 과정에서 정직과 성실을 기반으로 성장한 합리적 개인주의가 자리잡았다.


반면, 중동이나 서남아시아에 걸쳐있는 이슬람 문화권은 가문과 종교가 결합된 부족주의의 양상을 띠고 있다. "신적인 경건함"을 추구하는 그들의 종교중심주의는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와 개인 가치관의 중심이기에 나와 남과의 구분에 확실하다. 종교와 사회를 분리하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들의 의식구조가 다소 엉뚱하게 보이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이들의 종교를 알면 알수록 그들과 소통의 질이 좋아질 수도 있다. 


낯설은 '세계화, 국제화' - 익숙지 못한 경험들 

이처럼, '우리끼리'라는 '관계주의'에 익숙한 우리는 서구의 합리주의나 이슬람의 종교주의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언어, 문화, 제도와 도덕적 규범까지 공유하였다. 그러니 설령, 외국인을 만나더라도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행동하는지? 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 자신이나 내 이웃이 하듯이 나와 비슷하게 하겠거니…라고 생각하였다. 외인들이 전혀 다른 역사, 교육, 문화, 종교, 제도적 환경하에서 성장하며 전혀 다른 사고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이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우뚝 섰다. 이제는 ‘내 방식대로…’라는 생각으로 살기 어렵다. 한국에 온 외국인이 자기 방식만 고집할 수 없듯이, 외국에 나가서는 ‘우리 식’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서로가 다중으로 얽혀 있다. 나만이 독불이 될 수 없다. 남을 알고, 이해하고, 나의 관점, 나의 잣대와는 전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자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오해를 넘어 이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문화와 역사, 종교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 누구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에 따라야 한다’. 우리의 활동 범위가 커진 이제, 남과 편안하게 어울리는 '국제감각'은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이 되었다.


2019년 1월 초, 경북 어느 군(郡) 의회 의원들이 캐나다, 미국 등지에 외유성 해외 방문을 하는 도중, 벌어진 '현지 가이드 구타 사건'으로 전국이 시끌거렸다. 동행한 부의장이 가이드를 때리는 장면을 보고 현지인 버스기사가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 조사까지 받은 모양인데…  일단 가이드와 합의하고, 공개 사과하고, 의원직 사퇴를 표했다고 하지만, 국민 정서나 의식 수준을 감안하면 그 정도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같이 갔던 의원들 중에는 현지 여성 접대부까지 찾았다 하니…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어이가 없다. 조그마한 지위를 내밀며 허세와 만용을 부린 결과는 패가망신이다. 그 지위가 외국에서 통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현지 문화와 국제감각조차 모르고 행동하며, 엉뚱한 일에 공금을 썼다니 참담하다. 


비엔나 스테이크하우스 식당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필자가 오스트리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도 유사한 ‘해프닝’이 있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 몇 분이 유럽 공식 방문 행사차 왔었다. 공식일정이 끝나자 의원들은 수행한 대사관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꽤나 격조가 있는 잘 알려진 현지 식당으로 갔다. 다들 정해진 좌석에 앉고 각자의 메뉴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의원 한분이 느닷없이 박수를 ‘딱 딱’ 치더니 그쪽을 바라본 웨이터 한 사람에게 “어이!” 하면서 손짓으로 오라고 하였다. 옆에 있던 필자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따뜻한 물수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나이 지긋하지만 사람 좋게 생긴 웨이터가 조용히 다가와서 무슨 일인가를 묻고는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당시 식당에는 우리 일행 말고도 여러 손님들이 있었다. 뜬금없는 박수 소리에 이들은 모두 “무슨 일이지...?”라는 표정으로 우리 쪽으로 쳐다보았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식당에서 모두가 점잖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 분위기를 해친 것이다. 


얼굴 닦는데 익숙한(?) 물수건이 없으면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으면 그만이다. 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분이 지극히 한국식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상당히 민망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그런데…, 얼른 냅킨에 뜨거운 물을 적시어 가져온 현지 웨이터의 순발력과 정중한 대응으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선량'이라는 국회의원이 보인 행동과 식당 종업원의 대처는 한동안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후에 다시 만난 그 웨이터는, 일부 동양인 여행객들의 무례에 물론 화가 나지만, 자신들의 문화를 잘 모르는 탓’이라며 오히려 웃어 주었다. 권위주의나 서열의식에 집착하는 국회의원과, 모두가 평등하지만 자신은 봉사하는 직업일 뿐이라는 종업원의 태도..., ‘누가 더 성숙한 모습일까?’ ‘인격의 기준은 뭘까?’ 모두가, '돈이나 직책'은 일시적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걸로 인격을 포장하거나 방패로 삼는 모습을 보면 처연한 마음이다. 


얼마 전만 해도, 고위 공직자나 지도층 인사조차 해외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어떤 이들은 관광에는 열심이다가, 정작, 공식행사에서 졸거나, 설명을 거의 듣지 않는 경우도 있어, 비용 낭비는 차치하고, '알고 싶어 왔다니까' 열심히 설명해 주는 현지인에게 동행한 우리 대사관 직원들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단체 관광은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서 

2~30여 년 전에는 일반 여행객도 이런 현상이 더 했다. 여행객들은 조그마한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그룹으로 몰려다녀 모두가 한 묶음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일부 여행객은 현지 문화나 예법 등 대해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다. 어떤 여행객은, 식당에서 다른 곳에서 산 음식이나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 된장 등을 식탁 위에 늘어놓고, 먹거나, 소주를 마시기도 하고, 호텔에서 밤늦게까지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등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제재를 하지 않으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였다. 당연히, 신고도 뒤따랐다. 이 과정에서, 현지 종업원에게 팁 몇 푼으로 괜스레 군림하거나 으스대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최근에도 여전히,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관광성 해외 출장이 언론의 질타를 받는 모습이 종종 보도된다. 공직자라도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일이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기'보다 '남을 의식하는' 공인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사람을 해외에서 보면, 오히려, 나이 든 세대보다 훨씬 더 스마트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여, 모두 국제신사로 보인다. 영화, 인터넷 등으로부터 많은 간접경험을 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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