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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생각과 셈법의 차이, 서로 다른 경제

빚과 이자, 신용 - 다른 경제

‘이자’ 없는 세상, 집세 못 올리는 세상

우리와 다른 무슬림의 셈법

서로 다른 무슬림의 상술

또 다른 상술 



빚과 이자, 신용이 다른 경제

서양 경제학은 생산의 3대 요소로 자본, 노동(기술), 토지를 꼽는다. 동양에서도 일찌감치 ‘자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임차물에 대한 일정률의 이익 보장인 ‘이자’를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상인 간 거래는, 거래처와 인간관계가 비즈니스의 기본으로 장부도 없이 외상거래를 하였다. 여기에는 유교가 말하는 인간의 도리로 오상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 신(信)의 개념이 깔려있다. ‘신(信)’은 믿음이다.


그런데, 한자어 ‘신(信)’은 믿음에 이어 ‘중심’의 뜻도 있다. 종로에는 ‘보신각(普信閣)’이라는 종루가 있다.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중심거리로, ‘중심’은 중국의 것이라, 중국에 굴종하던 조선은, 비록 ‘중심’이라도 ‘중심’을 의미하는 신(信)을 쓰지 못했다.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독립된 1895년에 비로소 종각에 ‘중심’을 의미하는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내려 주었다. 그만큼 ‘신’은 인간 도리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일제 치하에서 서울 종로에 '화신(和信)' 백화점이 있었다. 일본(和)식 도리의 중심이었을까?


어쨌든, 인간의 도리인 신용은 장사치에게는 생명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조선 시대에 ‘빚’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또, 굳이 ‘고리대’를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 옛말에 ‘해묵은 빚’이라는 표현도 있다. 영농 사회인 조선에선 가을에 수확이 되면 원금과 이자를 갚아 ‘빚 갈음’을 해야 한다. 그러니, ‘해를 넘기는 빚은 없다’. 이는 년 말까지 갚지 못하면 채권 시효가 소멸된다는 뜻이다. 


'채권 시효'가 소멸된다고...? 그러면, “어떻게든 연말이 지날 때까지 버티면빚이 없어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남의 돈을 떼어먹고 어떻게 장사치 노릇을 할 수 있을까? ‘해묵은 빚’은 자식에게 대물림되었다. 그러다 보니, 해를 넘기기 전에 빚을 갚지 못하면 “자식에게 빚을 물리지 말라”라고 호소하며 채권자 집 앞에서 자결하는 이도 있었다 한다. 오늘날 법에도 부모가 여전히 못다 갚은 채무를 자식은 물론, 심지어 조카, 사촌에게까지 물린다 하니… 시간이 흘러도 빚이 갖는 무서움은 진행형이다. 다수의 유명 연예인이 부모의 빚에 연루되어 ‘빚투’라는 말도 생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용불량자에게 빚 탕감을 해 주는 국가다. 하지만, 탕감받는 많은 이들이 도덕적 해이를 떠나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가. 우리나라는 빚 관련 사기꾼이 참 많다. 이에 반해, 신용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는 금융 부정행위자는 “Dishonorable(신용불량자)”로 낙인찍어, 정신병자인 ‘금치산자(禁治産者)’나 ‘한정치산자’와 동급으로 취급한다. 신용사회에서는 재기불능의 사형선고다. 금융이 발달할수록 신용을 잃은 인간에게 남는 게 없게 만든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인구 2,000만이 넘는 대도시이다. 이집트에서 외교관 신분의 필자가 미국계 은행을 찾아 신용카드를 발급하려는데, 직원은 카드발급을 고마워하기는 커녕, 쓸데없이 수수료만 나간다며 오히려, 발급을 만류하였다. 실제, 금융이 낙후된 아랍권은, 카드는 발급도 어렵지만, 발급 후 수수료도 높은 데다, 물가와 환율이 수시로 변하여 외국인 상대 가게도 현금을 선호하여 신용카드 사용이 매우 불편하다. 신용카드는 일부 고급호텔만 받아주는 무용지물이었다.  아랍권에서 신용카드가 환영을 받지 못하고, 은행도 신용카드 발급에 제한을 두는 것은, 인간의 도리인 ‘신(信)’이 약했다기보다, 신용제도에 대한 관점이 다른 탓이다. 대부분 가게가, 현금이나 외상거래로 잘되니 굳이 신용카드를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신용카드 천국인 한국에서도 일부 상점은 카드를 내면 할인은커녕, 은근슬쩍 부가세 10% 핑계를 대며 현금 결제를 유도한다. 저렴한 상술이다. 예전에 현금으로 거래할 때는 가격표에 관계없이, 주인 마음대로 결정되는 ‘에누리’가 있어서, 카드가 갖지 못하는 현금 거래의 정겨움과 훈훈함이 '임자 마음대로'였다.    

  

‘이자’ 없는 세상, 집세 못 올리는 세상

중세 유럽은, 기독교 교회가 인간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신성이 우위에 있었기에 사회적으로도 모든 재화는 ‘신의 소유’여서 16세기까지는 모든 금전 거래에는 ‘이자의 개념’이 없었다. 구약성경(시편 15: 5)에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많이 받지 않고라는 구절이 있고, 신약성경(누가복음 6: 35)에도 “…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꾸어주어라(…Lend to them without expecting to get anything back.)는 구절을 보듯, 기독교도 처음부터 이자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세 도시국가의 하나인 부유한 '메디치' 가문에서 태어나 가문의 덕으로 교황이 되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교황 레오 10세(재위 1513-1521)’가, 다분히 가문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한 ‘이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칙령을 내림으로써 비로소 서구에서 ‘이자의 개념’이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이자가 정당화되자, 서구는 산업화와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라, 어떻게든 영리를 추구하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으려는 경제학으로, ‘물질적인 풍요’에 가치를 두었다. 이들이 돈에 민감한 이유다. 이처럼, 비용과 효용의 중심에는 금리가 있다. 그리고, 서구에서는 무형 재산인 금리가 파생상품이라는 괴물을 만들었고, '고리 대부업'은 물질문명의 아킬레스 근이 되었다. 2022년, 전 세계는 인플레 우려로 금리가 급하게 올라 많은 신흥국이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였고, 국내도 연일 오르는 금리로 수많은 기업과 가정을 파산과 도탄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금리 공격은 너무 가혹하다. 


반면에, 이자로 인하여 금전거래의 개념이 바뀐 서구와 달리, 신성을 중시하는 이슬람은 경전 ‘꾸란’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 받는 것을 죄악시하고, ‘이자(리바)’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꾸란 2:275-278, 3:130, 4: 161). ‘‘이자’를 취하는 자는 불지옥에 떨어진다’(꾸란 2:275)고 강력히 경고하고 이자를 부정한다. 소유욕을 추구하는 자본 증식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리대금업이 존재할 수 없는 여건이다. 


꾸란이 이토록 ‘이자’를 혐오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신의 소유’인데도, 모함마드 당시의 ‘메디나’ 유태인들이 고리대금으로 부를 축적한 데 대한 적개심 때문이다(꾸란 4: 161). 이 때문에 무슬림은 서구가 ‘물질 지상’ 중심의 천박한 가치관으로 금리에 따라 사회가 우왕죄왕하는 모습을 보며, 돈에 목숨을 거는 사회를 경멸한다. 튀르키예의 수상 ‘에르도안’은 물가가 폭등해도 금리를 오히려 더 내렸다. 서구의 경제원칙 따위는 뒷전이다.


아랍권 은행은 이자가 없으니 금융이 낙후될 거라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다르다. 이들 은행이 ‘이자’는커녕 오히려 ‘보관료’를 요구하는데도 웬만한 상점들은 모두 현금거래로 돈을 버니, 안전하게 돈을 보관할 곳을 찾아 은행에 돈을 맡기려 돈이 한가득 담긴 커다란 포대를 들고 40~50분씩 줄을 서서 입금을 기다린다. 영업이 끝나면, 그날 매출액을 은행에 보관하려는 거다. 그런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주로 대리인들이라, 혹, 외국인 고객이 나타나면 별도의 서비스 라인을 내어준다.


1988년, 이집트 이슬람 원리주의자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의 ‘국부금융’인 ‘샤리아 금융’을 고안하였다. 이는 이슬람 율법과 경제에 정통한 이집트 ‘알 아자르’ 대학 출신 주요 위원들로 구성된 ‘샤리아 위원회’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 금융이었다. 이슬람 각국은 각자 법체제가 있지만, ‘샤리아’ 율법과 세속법 조문 간 충돌이 생기면, 이 같은 ‘샤리아 위원회’가 율법을 해석한다. ‘샤리아’ 금융의 내용은 ‘이자’의 개념을 ‘수수료’로 변형하는 것이다. 즉, '샤리아' 금융은 채권을 발행하여 그 돈으로 부동산 등 자산에 투자하고, ‘이자’ 대신 수익금을 배당금으로 주는, 일종의 ‘담보부 증권’이었다. 


과거,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은, 유동성 확보차 이슬람의 자금 유치를 위해 이러한 ‘수쿠크(시장)’ 채권에 면세 혜택을 주려고 한 적이 있었다. 금융조건은 좋았지만, 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에 가까운 ‘무슬림 형제단’ 소속이라, 자칫 ‘샤리아 위원회’에 의한 금융 ‘지하드’ 가능성을 고려하여 포기하였다. '샤리아' 율법에 충실하였던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은, ‘아랍의 봄’으로 잠시 득세를 하였다가, 군부 쿠데타로 몰락하였다.


또한, 이슬람권에서는 집세도, ‘이자’의 연장 선상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올리지 못한다. 따라서, 수십여 년이 지나도 한 가족이 세대를 이어 살기만 하면 집주인이 집세를 못 올린다. 그런 경우, 집주인은 집수리에 당연히 소홀해진다. 이게 수십 년간 누적되면 도시 전체가 슬럼화된다.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종교 논리에 따른 탓이다. 한국도 과거 정부의 전세금 인상 억제 등 여러 가지 강력한 부동산 억제책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종교나 정책보다 시장원리가 답이다. 


'카이로'에 있는 폴란드 무관 숙소 만찬에 초청되어 갔었다. 숙소는 꽤 큰 저택으로, 월세가 상당할 것 같은데, 월 집세로 불과 몇백 달러 지불한단다. 이유를 물었더니, ‘1930년대 초에 폴란드 정부가 현지인과 맺은 임대차 계약이 유지되고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 현지화의 인플레로 달러 대비 가치가 엄청나게 하락한 탓이다’라고 한다. 이제는 집이 많이 낡았지만, 집주인이 관리에 무심하니 그 값에도 계속 살려는 입주자가 어쩔 수 없이 많은 수리비를 들여 자기 집처럼 고쳐서 살고 있다.    


우리와 다른 무슬림의 셈법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가는 이집트 인

이집트나 요르단, 파키스탄이나 인디아 등에서 필자가 만난 대부분 무슬림 서민은 순수하고 착하였다. 이들은, 비록 현실이 어려워도 정치나 빈부 차이에 대한 불만보다, 내세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아간다. 아마, 현세에 받을 만큼 받지 못한 것을, 알라()께서 내세에 채워 주시리라” 생각하는 '정명' 신앙 탓일 것이다. 꾸란도 '알라()께서는 계산에 확실한 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슬림의 셈법은 서구나 우리와는 상식적인 궤(?)를 달리한다. 어느 모임에서, 한 서구인이 웃자고 들려준 이야기지만 낙타와 이집트인을 비유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던 주인이 밤이 되자, 천막을 치고 잠을 자려고 하였다. 이때, 낙타가 천막 속으로 코를 들이밀며, 주인님너무 추우니 코만 천막 속에 두도록 허락해 주세요.”라고 간청했다. 마음 약한 주인이 이를 허락하자. 얼마 후에 다시 낙타가, “이제 코는 괜찮은데 머리가 너무 추워요머리만 좀 넣을게요.” 주인이 마지못해 허락하자, 얼마 뒤에는, “몸 전체가 너무 추워요 하고 아예 천막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주인이 천막 밖으로 쫓겨났다.


이 이야기는 일견, 일부 이집트인의 행동거지를 연상하게 한다. 언젠가, 대사관 행사준비에 열심히 일한 비서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약간의 위로금을 주었다. 그런데, 그는 '한 번 급여를 더 주었으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준다'는 뜻으로 이해하였고, 또, 운전기사는 무슨 장거리 행사에 참석한 뒤, 수고했다며 점심을 사주었더니, 그다음부터 행사 성격에 무관하게 의례히 점심을 기대하였다. (식사비는 급여에 포함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지 공무원이나 사업가는 자신이 ‘문서로 약속한 사항’조차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면서도, 우리가 ‘구두로 말한 내용’까지 잘 기억하여 약속을 지켜라”라고 요구한다. 때문에, 이들과의 협상 시는 꼭 필요한 말만 해야지, 괜스레 호기롭게 던진 말은 부메랑이 된다. 대충 넘어가려 하다가는 큰코다친다. 이들은, 너희가 우리보다 잘 살지 않니그러니부자로서 할 바를 다하라며 윽박지른다. 이런 나라의 지식인과 정부 인사, 가진 자들은 영악(?)스러울 정도로 기억력이 총명하고, 재빨라서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무슬림의 상술

그리고, 같은 무슬림이라도 ‘카슈미르’ 지역 파키스탄이나 인디아인과 이집트인의 상술도, 서로가 달랐다. 유엔평화유지군 인디아-파키스탄 정전감시 임무단에 파견되었을 때, 파키스탄의 ‘라발핀디’시 시장의 과일가게에 들러 사과 한두 개를 고르는데, 느닷없이 안 사도 좋으니고르지 말라!”며 주인이 짜증스레 말한다. 별로 상태도 좋지 않아 그나마 고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하지만, 물건 한두 개 팔려다가 혹시라도 옆의 물건이 손상될까 봐 지레 겁을 먹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과일이나 옷 등 물건을 수북이 쌓아놓은 가운데 골라 사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대부분 나라에서는 물건을 뒤적거리며 골라 담는 이런 구매 관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가게나 상점에서 "내놓은 대로 사라!"는 식인데, 어찌 보면 상점의 ‘갑질’이다. 또, 이들에게 환불의 개념은 없다. 일단, 상인의 손에 돈이 들어가면 끝이다. 그래서인지, 거래에서 현금지불에는 매우 신중한 편이다. 사실, 이런 가게는 단골의 개념이 없다.


(좌, 중앙) 파키스칸(라왈핀디) 야채가게, (우) 인디아(스리나가르) 아몬드 장사

그리고, 인디아 쪽 ‘카슈미르’에 근무할 때, 필자는 그곳에서 호두와 ‘아몬드’를 가끔 사서 먹었다. 문제는 늘 같은 가게에 가니 필자의 얼굴을 아는 상인이 필자가 갈 때마다 값을 올려 받는 것이었다. , 값이 매번 오르냐?”라고 묻자, 당신이 자주 오는 걸 보니내가 너무 싸게 판 듯하여 값을 올린다”라고 한다. 우리는 단골이면 자주 오라고 값을 낮추어 주는데, 이들은 물건 값이 싸서 고객이 자주 오니값을 올려야겠다는 거다.


이런 식의 파키스탄이나 인디아 상인과 달리, 이집트 상인은 먼저 터무니없이 값을 올려 부른 뒤 차츰차츰 깎아 주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고 하였다. 상인은가진 게 시간이 전부이니, 외지인 관광객에게는 시간이 아까우면 돈으로 때우라는 식으로… 깎아 달라고 매달리기(?) 싫거나, 시간이 촉박한 관광객들은 돈으로 때워야 한다. 가격흥정은 ‘말이 많은’ 이들 문화의 또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은 물건을 파는 것보다, 고객이 깎아 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을 더 좋아한다고 하니… 부자들이 목메어 사정하는 모습에 환희를 느끼는 것인지!?


실제로, 정찰제에 익숙한 한국인은 10% 정도만 에누리해 주어도 감지덕지하니, 30~40% 깎아 주면 바로 구매한다. 그러나, 카이로 ‘칸 카릴리’ 시장에서는 시간 투자와 약간의 아랍어로도 첫 가격의 10~20%대의 현지인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인내는 쓰다그러나그 열매는 달다는 훌륭한 표현이 이럴 때 적용되려나…? 


또 다른 상술 

오래전 미국 유학시절, 물건을 샀다가 ’환불(Refunds)‘할 때 가슴을 졸인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 현금을 주로 사용하여 반품이나 환불이 정말 어려운 사회였다. 미국에서도 그럴까 봐 염려하였는데 정작 ‘마트’ 직원은 친절하게 환불해 주었다. 대형마트는 ‘클레임(Claim)’ 비용까지 포함시켜, 반품해도 잃을 게 없으니 제품을 구매해 준 것을 고마워하였다. 하지만, 미국 마트의 환불은 얼떨떨한 유학생에게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미국 상점들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돈이 되면 뭐든지 다 한다. 자본주의이니까. 매장에 없는 물건도 구해다 주는 ‘Rain check’부터 ‘연중 세일’, 각종 쿠폰 할인, 보증 제도 등 마케팅 기법이 뛰어나다. 고객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 이런 제도를 십분 활용한다. 무슨 물건을 사면 제품안내서나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약간의 할인을 받기 위해, 할인쿠폰을 들고 줄 서서 기다렸다. 부자나라 미국의 ‘짠테크’ 모습은 참 낯설었다.


오스트리아는 EU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사회주의 국가였다. 필자는 오스트리아에 부임할 때, 금요일 저녁 늦게 도착하였다. 다음 날, 호텔에 머물 동안 쓸 물품을 사러 갔더니, 토, 일요일에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평일 날도 업무 후 오후 6시 즈음에 가게에 들어가니, 종업원은 자신의 퇴근 준비 때문에 아예 "물건 안 판다"고 손사래를 쳤었다. 가게의 수입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휴일이든, 야간이든 밤늦게라도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는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지금은 다르지만...)


그런데, 종업원이 가게에서 물건 안 판다 “라고 하는 모습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흔한 모습이다. 몇 년 전, 아르헨티나에 이민 가셔서 의류공장을 하시는 형님댁에서 두어 달 머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형님과 함께 종업원들을 위한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갔더니... 수십 명분이 마실 우유를 사려해도 1인당 5인분 구매로 제한하여 파는 거였다. 이해가 안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인구 1인당 소 사육 비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로… 우유는 차고 넘치는데 수요-공급의 원칙보다 1인당 지정된 할당량만 팔았다. 국가사회주의 탓이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고 하며, 수익은 관심 밖이었다. 최근, 사회주의 중국도 '공동 부유'라며 돈을 내세운다. 좋은 정치든, 나쁜 정치든 어쨌든 돈이 기준이다. 이제, 나라마다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찾아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인다. 


'카이로'에 있을 때, ‘맥도널드 햄버거’를 배달하는 서비스를 보고, “이집트인이란… 인건비가 아무리 싸도 그렇지, ‘패스트푸드’는 즉석에서 따뜻하게 먹어야지 무슨 배달인가?”라며 흉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한국에서 배달 ‘앱’이 판을 치며 치킨이나 피자 등 ‘패스트푸드’ 배달은 상식이 되어 머쓱해졌다.


한국은 외식 천국이다. 꽤 괜찮은 식당에서도 식사비에 봉사료 포함은 물론, 물과 반찬도 달라는 대로 준다. 영국의  외식비는 가정에서 그 정도를 차릴 때 드는 비용과 비슷하지만, 여타 서구의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주식 이외의 반찬을 따로 주문하여야 하고, 무료로 제공하는 밑반찬 추가 요구는 언감생심 말도 못 꺼낸다. 그런데, 여행하다 반가운 마음에 들린 영국 (에든버러) 내 한인 식당도 그 인심이 현지인 식당 못지않았다. 

미국에서도 간단한 식사 말고, 가족이 함께하는 그럴싸한 외식은 정말 어렵다. 식당 음식값도 비싸지만 덩달아 붙는 팁 탓이다. 아시아나 중동은 일류 호텔이 아니면 팁 문화가 아예 없고, 유럽도 탁자 위에 몇 유로 정도 놓고 가지만, 미국 식당 팁은, 10~15%로 하다가, 최근에 거의 20~25%대로 올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나친 팁 요구는 소비 자체를 위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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