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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말 맛과 소통, 그리고 무소불위의 '인샤 알라"

말 맛과 소통

‘귀납적’인 동양인과 ‘연역적’인 서구인

너무나 다른 관점 - 약속 시간과 ‘인샤 알라’

‘초청행사 노 쇼우’와 '인샤 알라'

진실성과 정직의 무게


말 맛과 소통  

문화권역별 차이에 있어 언어의 다름은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서구를 대변하는 유럽연합(EU)은 28개 회원국에 영어, 독어, 불어 등을 포함하여 24개의 공용어가 있다. 공용어가 많으니 통, 번역 소요가 막대하겠지만, 소통이 되는 만큼 일체감도 클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언어 다양성 존중이 각국의 문화 정체성 존중으로 이어져 그야말로 유럽통합의 핵심적 요소로 작동한다. 소통이 갖는 힘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소통’은 기본이다.    

개인 간 소통에는 대화가 중요하다. 대화는 감정을 나누는 말로써, 그 어순은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로, '나는 너를 사랑해' (I love you)하면, 우리는 '너'라는 관계가 먼저이지만, 영어에서는 'love'라는 감정이 우선이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와의 '관계'에 목을 매지만, 합리적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서구인은 '개인'의 생각 표현과 감정표시에 적극적이다. 때문에, 영어 등 ‘인도-유러피언’ 언어는 파도를 타듯 말의 '억양 (인토네이션, Intonation)과 강세 (스트레스, Stress)'까지 다양하게 구사하여 감정 변화를 잘 묘사하는 듯하다.


이에 비해, '관계'가 중요한 우리에게는 존칭어와 비하어 등으로 서열의식을 내재시키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만큼 '공손'에 집착하고, 시비조의 '반말'에 분개한다. 우리말은 감정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가 바뀔 뿐 평탄하므로, 오히려, '말투'에 시비를 건다. '투박하고 억센 말씨냐..?', '부드럽고 차분한 말씨냐..?' 어감에 따라 ‘말 맛(뉘앙스)’을 매우 다르게 느낀다. 감정이 앞서서 시작된 싸움이니, 말다툼의 결과는 거의 폭력으로 이어진다. 


소통을 위해서는 '주고받는 빌미’를 제공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우리는 반상제도, 식민지배, 전쟁과 군부 집권을 경험한 탓인지, 심지어 연애할 때도 첫 대화부터, '뭘 자꾸 물어보는 식'의 ‘심문식 (fact finding)’ 단답형 대화가 습성화되어있다. 대화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미 건조하고 뻣뻣한 사람보다, 말할 때마다 상대를 배려하고 '유머와 윗트'가 넘치는 사람과 대화하면 얼마나 좋을까? '유머러스'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직설 화법이나, ‘돌직구’를 날리기보다, 배려와 존중하여 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 하원의장 '펠로시'-한국 국회의장 대담(2019, 중앙일보) 

2019년 2월, 한국 국회의장이 미국 하원의장을 방문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 면담에서, ‘펠로시’ 의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다는) 여러분 희망대로 되면 너무 좋겠다”라고 했다. 이 말에 한 측 대표단은 “(우리의 설득에) 충분히 ‘이해’ 한 것으로 해석됐다”라고 했다. 하지만, “당신 희망대로 되면 좋겠다”는 말은 상대와 도무지 말이 안 통할 때.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서 점잖게 쓰는 말인데, 그걸 상대가 이해했다고 받아들인 것은 난센스다. 


더구나, ‘Understand (이해)’는 “당신 입장에 동의한다”라기보다, “당신 주장이 뭔지는 알겠다”라는 정도이다. 이런 류의 의사소통 부재가 최고위급의 여러 민감한 현안에서 나온다니 염려스럽다. 필자의 생각에, 그런 걸 몰랐다기보다는 아마도, 회담 성과를 올리기 위해 누군가의 말대로 소위, '잔 기술'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사실, 완벽치 못한 외국어로 외국인과 대화하다 보면 소통이 참 어렵다. 때문에 외교관들은 상대의 제의가 싫더라도, "No"라고 하기보다 "Maybe"라고 하니, 상대가 "Maybe"라면 '좀 어렵다'는 뜻이고, "Yes"라면 그저 '내용을 안다'는 정도이고, “정말로 그렇다”면 확실하게 "Absolutely", "Definitely", 혹은 "Of Course"로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무슨 말을 점잖게 하면 ‘외교적’이라 하는데, 외교에서는 주재국이 '갑'이라면 항상 ‘을’의 입장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비록, 외교관이 아니라도 강한 말보다 부드러운 표현을 쓰면 관계에 도움 된다. 


‘귀납적’인 동양인과 ‘연역적’인 서구인

우리말과 영어는 가뜩이나 말의 어순이 다른 데다가, 우리의 부정문은 긍정과 부정의 표현 방식도 서구와는 반대여서 말과 제스처가 불일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표현상 행간의 이해와 사용되는 단어의 함축된 의미를 잘 새겨 읽어야 하고, 우리와 서구인 사이의 대화 전개 방식에 유의해야 한다. ‘귀납적’인 동양적 사고자와 ‘연역적’인 서구적 사고자의 전달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귀납적 사고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미괄식 방식인데 비해, 연역적 사고는 반대로 결론을 먼저 말한 뒤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을 보충하는 두괄식 방식이다. 영어를 배우다 보면 느끼듯이, 서구인의 말은 ‘두괄식’ 어법이다.


필자가 주한 미군 사령부에서 근무할 때, 한/미 간 어떤 사안에 대한 회의를 하다 보면, 회의 도중에 전술한 바와 같이 말하는 방법의 절차적 차이 때문에 가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곤 한다. 예컨대, 미국인이, "Did you~? (너 ~했니?)"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 (Yes, I did.)" 혹은, "아니다 (No, I didn't.)"라고 대답하면 되는데, 대부분 한국인은 그냥 처음부터 “사실관계가 어떻고… 어떻게 되어 어떠, 어떠하다"라고 전후 상황설명을 길게 말한 뒤, 한참만에 "그 결과로 뭐가 어쨌다”라고 응답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마찬가지로, "Who did~? (누가~했니?)"라고 물으면, 그냥 "Mr. A"하면 되는데, “사실은 이렇고 저리 해서, 그러다 보니 Mr. A가 ~하였다.”라고 한다. 연역적인 미국인의 기대에 비해 귀납적인 한국인 답변은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 한국인이 미국인의 질문을 모른다기보다, 그냥 우리 식으로 답변하기 때문이다. 결론이 뭔지를 알려는 미국인은, 장황한 이유를 설명하고 난 뒤, 답변하는 한국인의 방식을 곤혹스럽게 생각한다. 외국인과 대화 시, 질문이 나오면 먼저, 결과부터 짧게 말하고, 그다음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서구인의 어법은 배려형이다. 항상 인사나 “Hi (안녕)!” 등 인사말이 앞서고, 매번 행동마다 "Thanks (고맙습니다)", "Excuse me (실례합니다)", "That’s all right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너무나 다른 관점 - 약속 시간과 ‘인샤 알라’

서구인의 시간 개념은 정확하게 ‘정각(punctuality)’을 지키는 것이다. 오래전, ‘코리안 타임’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당시, 한국인의 시간은 ‘대충 그 시간대 어간’이었다. 12 지간에 따른 조선의 시간은 자, 축, 인, 묘시 등 하루를 12 시진 즉, 1 시진은 '2시간' 단위였다. 그러니 약속을 하더라도 대충 그 시간대에 나가면 되는 건데,.. 정시를 지키는 외국인은 약속 시간에 지독히도 무심한 한국인을 ‘코리언 타임’으로 비아냥거렸다. 


요즘에는 ‘퀵 서비스’에 ‘로켓배송’, ‘총알택시’까지 있다. 굳이 일일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고속 성장을 향한 전 국민적 대열은 빨리빨리!’ 문화를 극대화하였다. 개발 독재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뭔가가 늦어지면 공연히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 ‘빨리! 빨리!’는 긍정적이기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부실공사’나 ‘안전불감증’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럼에도, 세계인은 한국이 매우 ‘역동적인 나라‘라고 평가한다.


무슬림은 ‘코리언 타임’ 당시의 우리보다 한술 더 뜬다. 이들은 시간 약속을 하면서 반드시 ‘인샤 알라’를 내민다. 약속 이외에도 무슨 일을 하든 어김없이 뱉는 말이 “인샤 알라(Insha Ala)”지만... ‘인샤 알라’는 ‘알라(신)의 뜻’이라는 의미이니, 이 말의 본래 의미는 매우 좋은 뜻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분위기가 성숙될 때까지 ‘기다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고, 문제가 있더라도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알라(신)’의 뜻이라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어떤 이는 ‘인샤 알라'로 무슬림 특유의 느긋한 문화적 배경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빨리! 빨리!’지만 저들은 '슈와이와 슈와이와'(천천히)이다. '인샤 알라'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염두에 둔 배려로서, 상대방을 믿을 수 있고 신뢰가 쌓일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뜻이다. 이처럼, 느긋함의 의미를 지닌 ‘인샤 알라(Insha Ala)’는 모든 게 ‘신(알라)의 뚯’이니,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미리 해두는 '핑계'가 된다. 이쯤 되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제멋대로' 해도 되는 게 신의 뜻이라니…. 


그러다 보니, 일부 현지인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계약서에 서명을 꺼리고, 설령 서명을 했더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인샤알라’로 얼버무린다. 계약불이행이나, 약속을 안 지키는 건 모두 자신의 책임인데도, 별 죄의식 없이 ‘인샤알라’라는 말 한마디로 그만이다. 그러니, 외국인에게 이 말처럼 허망한 말은 없다. 가정에서는 ‘샤리아 율법’이나 규범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사회에서는 지켜야 할 일조차 하지 않고 신의 뜻이라며 ‘인샤 알라’를 내미니까. 이들은 자신의 의식과 행동마저 ‘알라(신)의 의지’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듯하다...? 


‘초청행사 노 쇼우’와 '인샤 알라'

이집트 무관으로 부임한 뒤, 업무와 관련되는 이집트 장군을 만찬에 초청하였다. 그는 필자 비서의 거듭된 확인에 꼭 가겠다는 확언(물론, 대답 말미에, 또 인샤 알라라고 덧붙이긴 했지만)을 주었다. 하지만, 정작 행사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로 다시 확인하니, “그냥 집에 일이 있어서인샤 알라” 그뿐이었다. 초청된 인원이 행사 직전에 취소하거나 갑자기 참석하지 않는 경우를 이집트에 오기 전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미국 유학까지 한 국제업무 담당관이지만, ‘인샤 알라’로 모든 것을 해결하였다. 세속적인 인사가 자기 편의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여 ‘알라(신)의 뜻’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씁쓸하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정작, 자기 상급자의 '방한 초청'이라는 이해관계가 걸리자, 필자에게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접근해 왔다. 우리 국방부는 매년 말, 다음 연도에 한국에 초청할 대상자를 추천받는다. 필자도 이집트에 같은 질의를 하였으나, 이 친구가 한국에 '고위급 인사를 보낼 계획이 없다'라고 회신하여, 국방부에 종결 보고를 하였다. 그런데, 이듬해 1월 하순, 이 친구가, 전화로 전에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좀 보자”라고 한다. 


이집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겨울연가' 한 장면

그를 찾아갔더니, 이집트가 그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어 오던 양국 간 ‘정보교류회의’를, 조만간 한국에서 개최하자고 정중히 요청하며 ‘군사 정보국장’의 한국 방문을 초청해 달란다. 군부 집권국가이니 군사정보국장은 우리의 국정원장 격이다. 그리고, 방문단에는 이례적으로 “국장 부인도 공식으로 동행하고 싶다”라고 요청하였다. 무슬림이 부인을..? 동반한다고... 알고 보니, 그 부인은 드라마 ‘겨울 연가’ 등 한류 팬이었다. 남편은 때때로 부인의 성화에 견디지 못한다. 그해 여름, 이집트 대표단은 한국을 방문하였고, 몇 가지 협약을 잘 체결하였다.


그런데, ‘인샤 알라’ 외에도 유사한 개념의 말로써, ‘부크라(Bukra)’, ‘말리사(Malesha)’라는 표현도 즐겨 쓴다. ‘부크라’(내일을 의미)는, 내일 해도 되는 일이면 내일 하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릴 적부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을 무수히 듣고 살아왔으니, 이들이 무작정 ‘부크라’라고 말하면 우리로서는 견디기 힘든 노릇일 것이다.  말리사는 영어식으로 시큰둥 하게 "Whatever"라는 "상관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이집트에 체류하는 많은 외국인은 ‘인샤 알라(Insha Ala)’, ‘부크라(Bukra)’, ‘말리사(Malesha)’의 영문 첫 자를 딴 IBM에 일종의 공포증(?)을 갖고 있다. 무슨 협력관계나 협상안이 잘 나가다가도 이 말들이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그 일의 운명이 갈리니까 그럴 만도 하다. 그게 문화충격이고 외부인이 어렵게 느끼는 일들이다. 하지만, ‘인샤알라’라는 말에 많이 당했다면, 알라()께 맹세코?”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 보라. 갑자기 진중해지고, 감히 어쩌지 못한다. 알라(신)를 속이지는 못하니까.    

  

진실성과 정직의 무게

경건하게 살아가는 무슬림이, 신의 뜻에 모든 걸 의지한다며 자신의 의지를 슬쩍 끼워 넣는 것과 달리, 합리적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서구는 개인의 심성과 인성과 관련되는 ‘Integrity(진실성)’를 최우선 자질로 고려한다. 

integrity를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등 서방 승전국이 창립한 유엔은 합리적인 '개인주의'가 바탕인 서구적 가치관을 따랐다. 유엔이 모든 직원에게 요구하는 ‘핵심적 가치(Core Values)’에 ‘Integrity(진실성)’이 제일 먼저 나온다.

'진실성(Integrity)'의, 사전적 의미는, ‘소명의식과, 신실한 마음가짐’으로 누가 보든 않든 도덕적, 법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도덕성(Accountability)’등 개개인의 정직, 청렴, 성실, 명예 등 여러 인성이 함축되어 있어 그 성숙도에 따라 개인주의적 합리성이 좌우되는 듯하다. '바른 가치'가 존중받고, 상호신뢰의 ‘건전한 사회’는 '진실한' 마음이 바탕이다. 이른바,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직’을 포함한 ‘Integrity(진실성)’는 합리적이고 건전한 '개인주의'의 기본이다. 도덕성과 ‘진실성’은 신사도(紳士道) 최고의 가치로서, 이는 이미 ‘국제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직이 최선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밴자민 플랭클린’의 말처럼, 미국에서 ‘정직’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굳이, '닉슨 게이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든 누구든, ‘부정직’하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는다. 


때문에, ‘정직’에 대한 서구의 평가는 매우 무겁다. 한국은 부정직해도 우물쭈물 숨 죽이고 지내도 되지만, 국제사회는 정직이 체질화되어야 산다. 한 때,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과, BMW의 화재사건으로 ‘기술과 신뢰’라는 독일 회사들이 곤욕을 치렀다. 작은 불신이 쌓이면 여지없이 '양치기 소년'의 효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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