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걱정거리가 된 생활 속의 '안전'

주거와 일상의 '안전' 

한국의 '안전' (Safety) 불감증

열악한 서구의 개인 '안전' (Security)과 철저한 '안전거리'

관점이 다른 노인'안전 (Security & Safety)'과 가족 공동체 

주거와 일상의 '안전'

비엔나 시내의 '바로크' 양식 건물들

세상에서, 살기 좋은 도시의 하나라는 '비엔나'는 '도나우' 강과 숲이 울창하고 ‘바로크’ 양식의 중세풍 건물이 줄지어 서있는 전형적인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이다. 다만, 워낙 고풍스럽고 오래된 데다,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집이 많아, 층계 계단이 오르내릴 때마다 삐꺽 대고, 낡은 목재 창틀로 겨울철 한파에 보온이 어려운 빌딩도 많다. 필자가 살았던 집은 18구('비엔나'는 1구부터 19구까지 행정구역이 있다)의 ‘터키 요새’ 공원 가까이 있는 숲 속의 빌라로 수영장, 사우나도 있어, 그런대로 비교적 쾌적하였다.

하지만, ‘비엔나’와 달리, 이집트 수도 '카이로'는 사막 기후로 오래된 도시답게 도심의 건물은 낡고, 대부분 건물의 시멘트 외벽에 페인트 칠을 하지 않아, 희끄무레한 색깔로 다소 칙칙한 느낌으로 도시 미관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또한, 엄청난 인파와 온갖 종류의 소음과 차량 매연 등 스모그로 항상 하늘이 희뿌였다. 필자의 집은 '카이로' 시내 ‘마디’라는 지역에 있는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였는데, 더운 날씨와 소음과 그리고 심한 스모그 탓인지 이 아파트는 서늘함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온통 대리석으로 넓게 지었지만, 대낮의 열기를 피한다며 창문마다 커튼을 몇 겹으로 둘러 늘 깜깜하였다.  

카이로의 아파트 (출처: SBS뉴스)

그런데, 도시의 이런 외형처럼 거주자가 느끼는 범죄로부터 '안전 (Security)'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도시의 분위기 차이는 확연하다. 사실, 대부분 중동지역은 여느 서구와 달리 여전히 테러 위협이 상존하는 여건이라, 아파트든 은행이든 웬만한 건물 외부에는 곳곳에 사설 무장 경비요원이 출입 인원을 체크하고 있다. 주변이 안전해야 마음이 편안한데,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항상 긴장스럽다. ‘멍 때리기’를 할만한 여건이 못된다. 서구나, 미국에서 여러 번 살아 보았지만, 도심이나 야외에서 이런 류의 불편함은 느껴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카이로’에서 근무하는 동안, 휴가 때마다 비교적 한적한 지역인 ‘시나이’ 반도, 홍해바다, 혹은 지중해 연안 도시를 찾았는데, 이런 조그마한 도시에서도 어딜 가든 필자의 차만 나타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무장한 이집트 경찰차가 따라온다. 아마도 필자가 이집트 국방부의 요청대로 방문 지역을 미리 알려주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구역에 불쑥 들어온 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경찰차가 계속 따라다닌다.

외국인 내방객을 보호하려는 경찰의 서비스지만, 더운 날씨에 무장 지프차를 달고 다니니 가족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어서, 그냥 “돌아가라”라고 해도, 악의 없이 웃고는 계속 따라온다. 서너 번씩이나 “괜찮으니 돌아가라”라고 하면, 여행객이 비교적 많은 ‘시나이’ 반도나 홍해 쪽 경찰은 지역 내 초소에 연락하고 그냥 돌아가는데, 테러위험으로 여행객이 별로 없는 리비아 접경 지역의 경찰은 우리가 호텔에 들어갈 때까지 고집스럽게 보호해 주었다. 먼 이국땅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호젓하게 즐기려는 의도에 비해 다소 귀찮기는 하지만, 외진 곳일수록 불순분자에 의한 테러 위험이 높으므로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려는 저들의 노력과 호의가 고마웠다. 

이슬라마바드 시내 건물을 지키는 사설 무장요원

그런데, 이집트나 '카이로'보다, 이슬람 과격 테러분자가 극성을 떠는 파키스탄에서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조차 외국인이 마음 편하게 살기 어렵다. 외국인으로서 익숙지 않은 현지식 대신, 그나마 양식 음식을 즐겨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고급 호텔뿐인데... 그런 곳이 바로 테러의 대상이다. 외국인 혐오주의 탓이다. 국가나 기업이 아무리 엄중한 경비를 해도 은밀히 들어와서 자폭하는 데는 대책이 없다. 필자가 그곳에 살 때 불과 며칠 전 다녀왔던 외국계 호텔에서 폭탄 테러가 터져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최고의 주거지는 그저, 사고 없이 비바람 피하고 맑은 물 마시고 마음이 편안한 환경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한국의 '안전' (Safety) 불감증

그런 면에서, 한국은 살기 좋은 선진국이다. 밤늦게까지 젊은 여성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며, 끔찍한 범죄가 거의 없는 안전지역이다. 게다가, 사회적 인프라도 잘되어 있다. 대부분, 후진국은 물론, 일부 선진국에서도 공중교통이나 자동차는 물론, 집에도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한 낮 무더위에도 대중버스, 전철, 개인 자동차는 물론, 웬만한 건물에 모두 에어컨이 있고 각 가정에도 보급률이 80%를 넘는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여름철 각 가정에 에어컨을 많이 쓰게 하려고 안달이고, 미세먼지 대책이라며 각급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달아주겠다고 긴급예산을 편성할 정도로 개인 건강을 공공이 염려해 주는 국가이다. 

이처럼, 사회적 안전망은 촘촘한 편이지만, 일상의 사건, 사고로부터 '안전 (Safety) 의식'은 여전히 미흡하다.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희생자의 소식을 전하는 언론은 연일 ‘안전 불감증’을 질타한다. 

일상에서 서구인의 안전에 대한 관심은 우리보다 높다. 예컨대, 영국인은 한국인이 식당에서 '가스용 불판'으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신기해한다. 이들은 안전을 고려하여 실내에서는 식탁 위에 불을 피우지 않는다. 불을 피워 요리하는 것은 주방의 영역이다. 그리고, 영국 호텔은 각 방마다 벽에 있는 전기 콘센트는 우리와 달라 어댑터가 없으면 사용 못한다. 특이한 모양의 콘센트에 달린 '안전 퓨즈' 때문이다. 우리는 방이 여러 개 있더라도 집 전체에 누전차단기가 하나뿐이지만, 이들은 방마다 콘센트마다 누전차단기가 달려있다. 

자동차 안전을 규제하는 많은 나라에서 안전을 이유로 자동차 유리 '선팅'을 규제하지만, 특이하게, 한국은 오히려 더욱 짙게 선팅 한다. 군부 집권 시절, 검게 선팅 한 차량은 높으신 분이나 권력기관 요원들이 타고 다니던 이른바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이었다. 일반 서민들이 그런 선입견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차 안의 사생활을 엿보이기 싫어서인지? 한국의 선팅은 유별나게도 '안전'(Safety)과는 거리가 먼, '취향'이 되어버렸다. 

열악한 서구의 개인 '안전' (Security)과 철저한 '안전거리'

옛날 같지 않은 영국 경찰

그런데 요즘, 서구는 대량의 난민 유입과 방랑자 때문인지 도난, 강도 등 개인 안전 (Security)이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로마의 관광 명소에서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접근하여 사진기를 들고 줄행랑을 치는 식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파리에서는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의 뒷 유리창을 깨고 차내 물건을 훔치거나, 호텔 방에 귀중품을 두었다가 도난당했다는 신고도 심심치 않다. 

또한, 런던 등지에서도 카페에서 식탁 위에 놔둔 휴대폰과 컴퓨터가 사라진다든지 심지어, 배낭마저 없어지는 경우가 너무 비일비재하지만, 곤경에 처한 관광객의 신고를 받은 경찰조차 '하도 신고가 많아' 이제는 시큰둥하기조차 하다 하니... 영국도 옛날의 영국이 아니다. (해결이 안 된다) 그러니, 아무 데나 휴대폰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런 일이 없는 한국에서 생활한 우리들은 해외에 나가서 우리 식으로 하다간 큰코다친다.

 

서구에서는 이런 류의 개인적 사생활 안전에 주의해야 하지만, 복잡한 공간에서 남과 부딪히는 일을 극히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 많이 붐비는 장소에서 마주 오던 사람이 어깨를 툭 치고 가도 별로 개의치 않지만, 무슬림이나 서구인은 자신의 신체적 안전에 매우 민감하다. 때문에, 남이 자신의 몸과 부딪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여 한 팔 길이 정도의 자신만의 개인 공간 확보에 부심한다. 심지어, 연인 사이라도 평소에는 '개인적 안전거리(Security)' 등 자신의 '영역(Boundary)' 유지에 철저하다.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남과 마주치면 과도할 정도로 자신의 몸을 벽 쪽으로 최대한 붙여 남을 지나가게 한다. 좁은 공간이니까 남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면서도 어떻게든 한 팔 정도의 자신만의 '안전거리(Security Zone)'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또한,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운전할 때, 누가 끼어들면 웬만하면 양보하고 비껴준다. 우리는 이를 '배려심'이라고 고맙게 여기겠지만, 그들이라고 양보가 쉽겠는가? 어찌 보면, 자신에게 혹 미칠지 모를 안전 문제로 미리 양보한다고 보는 측면도 있을 거다. 굳이 서두르면서 양보하지 않고 남과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옛 어른들은 귀여운 꼬마 아이를 보면 “아이가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나 등을 토닥거리기'도 하였다. 사실, 이런 스킨십은 이웃의 따뜻한 관심의 표시였다. 그런데, 서구화 탓도 있고, 일부 못된 사람 때문일까? 노인이 나름 '친밀감'을 표시한 이런 일로, 아이 엄마가 '성추행'으로 고발하는 일도 생겼다. 이제는 낭패를 피하려면 아예 외면하거나 보더라도 만지지 말거나, 서구처럼, 가볍게 웃어주고 손을 흔드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또, 일부 남녀 대학생들은 '어깨동무'나 '손잡고 걷기' 등 다정하게 걷지만, '남자애들의 어깨동무'나, '여자애들의 팔짱 끼기'는 외국인에게는 자칫, 동성애로 보일 수 있다. 문화권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다. 

관점이 다른 노인'안전 (Security & Safety)'과 가족 공동체 

짓다만 집이라도 거주 가능한 카이로

'카이로' 시내 도심 고가도로를 달리면, 건축 중인 건물이 유별나게 많다. 돈이 모자라 짓다가 중단했는지 녹슨 철근만 위로 삐죽 올라와 있는데... 짓다만, 철근 노출이 많은 이유는, 건축 중인 주택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으니, 매년 '지금도 건축 중'이라며 세금 면제를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건물에 대부분 3대가 기거한다. 주로, 1층에는 조부모가, 2층에는 부모가, 3층에는 아들이 산다. 이들에게 부모 봉양은 하나의 '불문율'로 아름다운 전통이다. 자식은 조기에 사회에 진출하려는데, 돈을 벌어 독립하겠다기보다, 부모의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이집트 등 이슬람권의 가족 문화는 철저하게 집안 중심적이라, 아들과 부모가 한집에서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결혼은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특히, 결혼을 양 가문의 결합으로 여기는 이슬람권은, 혼인관계를 가문의 명예로 보기에, 연애보다 중매로 결혼하며, 부모의 허락은 '절대적'이다. 특히, 남자는 짓다 만 집이라도 있어야 '결혼지참금'이 충족되어 여자에게 구애할 수 있으니, 집을 소유하는 게 결혼의 첫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카이로' 교민과 주재원은 골프를 많이 치는데, 평일 낮 한국인 부인들은 골프장에 가서 캐디를 구한다. 그런데, 어떤 캐디가 어느 부인에게 ‘자기에게 집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노골적으로 구애하였다. 비교적 나이가 있는 부인에게 현지의 젊은이가 그랬다니, 당혹스러웠겠지만, 그 '캐디'가 진지했던 이유는 얼굴을 가린 여인의 눈을 보고 미를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교포 부인들은 골프를 칠 때, 강한 햇살과 자외선에 얼굴이 탈까 봐 얼굴을 꽁꽁 싸매어 아랍 여성처럼 거의 눈만 보일 정도였으니까...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들

그런데, ‘카이로’는 대도시지만 그 흔한 원룸 등 1인용 숙소는 별로 없다. 지방에서 홀로 올라와 학업이나 경제활동에 나서는 이도 있지만, 가족과 분리되어 독립세대로 홀로 사는 개인이 거의 없는 탓이다. 도심의 이런 모습은, 자타가 공인하는 아파트 공화국인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가족과 함께’ 사는 저들과 달리, 우리의 아파트는 분리된 공간으로 '나'를 위한 곳이다. 6.25 전쟁으로 ‘마을’이 폐허가 되자, 피난민이나 무작정 상경한 인파들은 도시의 좁은 공간이나, 슬럼화된 판자촌 등에서 부둥켜안고 살았다. 그러다가, 경제 성장으로 ‘우리’ 공동체는, 새 장소의 새로운 아파트를 찾아 거듭났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촌도 잃고, 형제와 부모 등 가족조차 잃어버렸다. 경제력은 커졌으나 애정은 결핍되었다. 

한국은 이미 고령 사회로 진입하였고, 나날이 늘어가는 많은 노인들의 삶은 고통스럽다. 노후 준비가 덜 된 일부 노인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인데... 은퇴한 많은 노인이 경제력이 약하지자, 가정마다 일부 젊은이는 ‘편안하게’ 사시라며, ‘나이 든 부모에게 용돈 드리기’를 내세운다. 노인을 존경하는 우리의 좋은 관습이다. 그 가운데는, 손주를 돌보는 부모에게 매월 일정 금액을 드린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돈을 받는 부모는 “돈 안 받고 아이 돌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고, “무슨 용돈에 조건이 붙나?” 서운해한다. 또, 최근 정부가, 손자 돌봄 하는 조부모에게 일정액을 지급하겠다고 하였지만, 실제로, 나이 든 조부모는 아이를 돌보고 싶어도 ‘육신이 힘들어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 몸만 성하면, 용돈이나 장려금을 주든 말든 "손주 사랑에 돈이 무슨 상관이랴!" 조부모의 손자 사랑은 정량화하지 못하며, ‘사랑의 척도’는 돈이 아니다. 

그런데, 튀르키예의 무슬림이나 동남아인 앞에서는 이런 ‘용돈 드리기 자랑’은 금물이다. 예전의 우리처럼, 저들에게 부모 봉양은 당연한 일이었고, 부모도 자식에게 무한 봉사를 한다. 사실, 튀르키예에는 ‘노후대책’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한다. 설령, 자식이 없어도 마을 공동체가 거두어 준다 하니... 이웃사촌이 따로 있을까? 과거 우리 조상처럼, 무슬림이나 동남아 공동체가 혼자 사는 노인을 보살펴 주니, 우리보다 이들에게 ‘이웃사촌’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참고로, 튀르키예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꼴찌이다. 반면, 한국은 2003년이래 2 개 연도만 빼고 세계 자살률 1위 (OECD기준)이고, 매년 수많은 '고독사'가 발생한다.  

경제성장과, 도시화로 우리의 가치관은 ‘금전 지상주의’로 바뀌었다. 사회가 점차 팍팍해지자, 가족마저 외면하는 ‘우리’ 공동체는 너무 뻔뻔하고 얄팍해졌다. 우리에게는 가족이나 이웃이 보살피는 모습은 없고, 정부가 공무원이 예산으로 지원해 준다. 이게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의 모습일까? 진정한 선진국은, 노추(老醜)에 찌든 노인을 보다 ‘편안하게’ 남은 여생을 지내도록 하는 것을 성숙한 사회 지표로 인식하고, 이를 '복지의 기준'으로 삼는다. 북유럽 복지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만 하더라도 수많은 호스피스 병동에 자원봉사자가 줄을 잇는다. 나이 들어 점점 쇠약해져 가는 노인은 돈보다 따뜻한 애정을 원한다. 그게, 노인을 위한 '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