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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07. 2022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가치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올바름과 약속 이행

정치적 목적과 국제규범의 차이



올바름과 약속 이행

지난 정권부터 최근까지 이어져 온 한‧일 갈등의 원인은 ‘올바름’과 ‘약속 이행’에 대한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탄핵으로 정권을 차지한 문재인 정부가 ‘일본 때리기’를 정권 지지에 활용한 측면이 있다. 그중 심에는, 한‧일간에 위안부 기금, 징용 배상 등 과거사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정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본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고, 배상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일괄타결되었으니 모든 문제는 그에 ‘정해진 기준’을 따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식민지배는 불법이고, 당시 결정이 ‘올바르지 않았으니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 간의 합일점은 없어 보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이 그냥 나왔을까? 한국인의 진실성은 ‘올바름’이다. 올바르지 않으면 배척한다.  그러나, 올바름은 정직과는 다르다. 다만, 도덕 지향적이다. 도덕은 현실보다 ‘이상적’이다. 때문에, 한국인의 올바름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조선의 유생들에게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일이었다. 때문에, ‘올바름’이라는 도덕적 명분은 늘 ‘권력다툼과 밥그릇’ 싸움의 빌미가 되었다.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에 비해, 일본인들은 ‘계약적’이다. 현실에는 늘 ‘정해진 룰(Rule, 규칙)’이 존재한다. 계약이라는 현실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명론자들에게는 상황과 시간이 바뀌더라도 이 룰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가치였다. 마치, 스포츠 게임의 룰처럼... 계약서에 서명했으면 그걸로 끝난 것이다. 

이처럼, 도덕과 현실 간에는 간격이 있다. 즉, 한‧일은 서로 간의 ‘가치’가 다르다. 다른 가치로 ‘징용 문제’라는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는 두 나라 간의 불협화음은 시작되었다. 일본은 자신들의 백서에서 이전과 달리, 더 이상 가치를 공유할 수 없다며 한국의 존재를 폄훼하며 전선을 확대하였다.


이 일이 이슈화되자마자 일본은, 지금까지 미국, 한국의 순서로 해왔던 안보마저 그 우선순위에서 가장 아래로 하향조정하였다. 2019년 판 ‘방위대강(防衛大綱)’에서는, 안보 우선순위로 미국-호주-인디아-동남아 다음에 한국을 두었다. 일본은, 이제 한국을 더 이상 어깨를 나란히 할 동맹이 아니라, ‘약속(계약)’을 지키지 않으니 국가로서 인정하거나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못 믿을 나라’이니 당연히 수출 규제 같은 조치가 따랐다. 한국경제에 치명상을 주겠다는 의도였다.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로, 국가 간의 약속 따위를 내팽개치는 ‘정직하지 않은 나라’로 부각해 국제적으로 이슈화하겠다는 속내도 드러내며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한국도, “못 믿겠다는 나라와 안보를 나눌 용의가 없다며, 2019년 판 한국 ‘국방백서’에도 ‘일본과 기본가치 공유…’라는 부분을 지우고, 주변국 군사 협력 순서에서도 한‧일, 한‧중에서 한‧중, 한‧일 순으로 우선 순서를 바꾸었다. 또, 수출규제에 ‘국산화’로 맞섰고, 자해적(?)인 조치로 일본과의 ‘군사정보 보호 협정 (지소미아, GSOMIA)’마저 폐기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서로가 앙금을 갖고 있으니 대북 공조에 균열이 생긴다. 결국, 동북아 안보협력을 우려하는 미국의 개입으로 일단 양측이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으나, 다른 관점으로는 해법을 찾지 못하는 과거사 문제가 도처에 널려있어 갈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이 주장하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으로는, 일본의 보복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가 자칫 중국, 동남아(일부 국가는 세계 제2차 대전 간 서구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낸 일본에 오히려 우호적인 시각도 있다) 등지로 확산하는 걸 막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겠지만, 일본 정권이 본질적으로 국가 간의 약속을 지켜라!”라는 요구에 대해, 한국만의 잣대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국가 간 협정 위반에 대한 국제사회의 판단은 객관적이고 냉혹하다. 국가 간 ‘협정’은 이미 국제적인 규범으로서 자리 잡았다. 따라서, 한국의 가치나 내부 사정 따위 보다, 현실적으로 약속과 ‘룰’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비판과 후유증이 클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대응이 너무 ‘나’ 중심적이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갈등과 분열, ‘편 가르기’적 관점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 한‧일 양국은 이런 걸 서로 ‘국내 정치용’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최근 들어, 정권이 바뀌자 다시금 양국 정상 간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접촉이 벌어지고 있다. '약속은 지켜주되 과거는 잊지 말되, 이제부터는 미래를 준비하자'는 정책을 펴나가는 그룹과, 이런 정책이 '일본에 대한 굴종'이라거나 '침략 행위를 합법화 해주는'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그룹 간의 첨예한 대립은 여전하다. 하지만, 무슨 문제든 ‘나 위주’로만 생각하면 해답은 없다. 


필자로서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언제까지나 이런 일에 얼마나 더 많은 국민적,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되는지...? 걱정하는 입장이다. '이미 끝난 일이니 사죄를 못하겠다'는 저들의 버팅김에도 불구하고, ‘국제 협력’이나 '동반자' 관계는 항상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관점이다. 행여라도,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응할 거'라고 일본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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