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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Aug 06. 2024

한국전은 미‧중전쟁 (제17화)-다시 빼앗긴 서울

중공군 제3차 공세(1950년 12월 31일~1951년 1월 8일)

중조(中朝) 연합사 창설과 다시 빼앗긴 서울 (1‧4후퇴)    


중공군은 제2차 공세에서 30개 사단 30여만 명과 북한군 12개 사단 등 47만여 명으로 공세작전을 성공적으로 전개하여 전세를 바꾸었다. 하지만,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에 섬멸적 타격을 가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엔군의 화력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중공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전열을 재정비한 뒤다시 공격하겠다”라고 ‘마오쩌둥’에게 보고했으나, ‘마오’는 “38도선을 넘어선 후에 휴식하라며 계속적인 공격작전을 원하며, 계속적인 공격은 유엔군의 패전 분위기 고조에 기여할 것이며, ‘국군만을 골라 두들기면 미군이 고립될 것이고이럴 때 다시 미군 몇 개 사단을 섬멸시키면 유엔군은 장기간 한반도에 주둔할 수 없고조선 문제는 매우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다며, 계속해서 방어선 균형을 허물기 위해 먼저 국군을 섬멸하도록 지시했다.


'마오'의 지시에 따라, 12월 상순, ‘펑더화이’는 김일성에게, 차후 작전의 성공 보장을 위해통일된 지휘체계를 확립하도록중공군이 지휘권을 갖도록 해 달라”라고 북한군을 통합지휘할 연합사령부 설립을 요청하였다. 소위, 중조연합사령부’였다. 마치, 한국전 초기에 국군이 미군에게 작전통제권을 이양처럼... 그런데, 이미 38도 선까지 진출하여 ‘항미원조’나 ‘순망치한’,‘보가위국’의 목표를 달성한 중공군이, 연합사를 창설한 걸 보면 중공의 목표가 한반도 적화로  바뀐 걸까? 어쨌든, 궤멸 직전까지 몰렸다가, 불과 2개월 만에 급조된 북한군도 중공군 지휘 아래 ‘전술적 분할 포위와 기습에 중점’을 두고 연합작전을 준비하였다.


청천강에서부터 패퇴한 유엔군은 1950년 12월 23일, 미약하나마 38선 일대에서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방어선의 조정으로 국군을 지원하던 미군 포병, 전차 부대들이 원래 부대로 복귀하여, 전선의 국군사단들은 더욱더 기동력과 화력이 부족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엔군이 제2차 공세에서 패퇴하여 염전사상이 퍙배한데다가, 미 8군 사령관의 사망까지 겹쳐 그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고, ‘리지웨이’ 신임 사령관도 이제 막 부임하는 등, 충분한 방어 대비태세를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한 중공군 지휘부는, '국군 방어진지를 돌파한 후, 유엔군 주력부대 퇴로를 차단한다'는 작전으로 유엔군의 허점을 찔렀다. 1950년 12월 31일, 모든 준비를 마친 중공군은 이른바, “신정 공세”로 불리는 제3차 공세를 개시하였다.  


중공군 제3차 공세 요도(1950.12.31.- 1951.1.8, 육군대학 전쟁사연구실)

중공군의 공세로부터 불과 4일 전인 12월 27일에, ‘워커’의 사망으로 미 합참으로부터 급히 임명된 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일본으로 철수한다’는 루머 등으로 극도로 저하된 미 8군과 유엔군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취임사에서 철수하지 않고싸울 것”을 강조하며, 침체된 사기 회복과 분위기 쇄신에 지휘력을 집중하였다. 그리고, ‘일본으로 철수'를 기정사실로 알고 공격작전계획조차 세우지 않은 작전참모를 본보기로 해임하고 적의 위치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예하 지휘관 보고서를 불신하며, 모든 지휘관의 전방 위치후방 근무시간 최소화를 강하게 지시하였다. 특히, 국면전환을 위한 위력수색 등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부하들의 전투의지를 고양시키도록 노력하였다. 하지만, 미 8군의 전투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제3차 공세 직전 미 8군의 작전 을 보고받은 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분노를 금치 못하였으며 그의 ‘회고록’에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내가 야전 지휘관들에게 해준 말을 간단히 요약하면이놈의 군대가 얼마나 큰 길로만 다니려 드는지얼마나 행군로 상의 고지들을 점령하는 것을 잊어버리는지얼마나 전방부대와의 연결을 모색하고 유지하는 걸 못 해내는지얼마나 지형에 대해 무지하고 이용할 줄 모르는지얼마나 피를 보는 것을 꺼리는지얼마나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주저하는지!그들의 보병 선배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무덤 속에서도 돌아누우실 것이다그리고 통신에 대해서도 여건이 안 된다고 불평하기보다필요하다면 연기를 피우는’ 등 할아버지 시대에 하던 방식으로라도 서로 통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리지웨이'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부임 신고를 할 때, 전투복 상의에 수류탄 2개를 달고 강한 전투 의지를 보여, 이에 고무된 이 대통령은 국군도 항상 수류탄 2개를 좌우 가슴에 달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임 후 4일 만에, 중공군 6개 군, 북한군 3개 군단 규모의 제3차 공세를 맞이한 '리지웨이'는 한국 정부와 ‘서울 포기’를 협의하였다. '리지웨이'가, 서울 수복 불과 3개월 만인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다시 중공군에게 내어주고, ‘대전’까지 철수하며, 다시 부산으로 옮겨야 한다고 보고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불과 며칠 전 리지웨이의 전투의지를 확인하였는데또다시서울을 떠나야 하는가우리는 왜 이렇게 당하여야 하는가우리 국민이 불쌍하구나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리지웨이'는 군인으로서 서울방어는 작전상의 목표가 아니었다.  

  

1‧4후퇴로 서울을 떠나는 피난민 행렬, 1월 4일 중앙청을 점령 후 환호하는 중공군

한편, 한국정부와 협의를 마친 ‘리지웨이’는, ‘적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하되, 병력과 장비를 최대한 보존하여, 한강 이남으로 철수시켜 차후 반격에 대비’한다며, 후퇴가 성공적 방어를 위한 공세준비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먼저, 서울 외곽에 주둔한 미 1군단과 9군단을 즉각 후퇴시키고, 38선에서 부산까지 6개의 방어선을 설정한 뒤, 이 6개의 방어선은 사수해야 할 저지선이 아니라 ‘중공군에게 최대한 출혈을 강요한 뒤, 공세로 전환하기 위한 선’으로 명시하였다. 이른바, 축차적 지연전을 지시하며, 육참골단(肉塹骨端)’의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축차적 지연전은 부대 간 진지 교대가 필수적인데, 이런 개념에 익숙지 못한 동부전선 국군 사단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경되는 전투편성에 혼란을 겪으며, 체력 소모도 극심하였다. 이에, 한 때 북한군 2군단이 이 틈을 노려 충북 단양까지 내려왔으나, 국군의 역습으로 소탕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비록, '리지에이'가 신임 사령관 부임 며칠 만에 1‧4 후퇴로 서울을 다시 내어주는 등 뼈아픈 대가를 치렀지만, ‘리지웨이’의 지시로, 축차적인 지연전을 전개하던 미군은, 중공군이 전진을 멈추자, 차후 작전을 위한 전력을 보존하되 제한된 ‘위력 정찰’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전장의 주도권을 차츰 확보하면서 공세로 전환하였다. 미군은 위력 정찰로 접적 유지, 경계 강화, 사주 방어 체제를 구축하였고, 국군 등 인접부대와 ‘어깨 대 어깨’를 닿는 촘촘한 선형 방어로 전투지경선 공간을 통제하였고, 비로소 적의 침투를 저지할 수 있었다.


한편, ‘마오’의 지시로 3차 공세에 나선 중공군은 서울을 확보하자, 한강 선에서 전진을 멈추었다. ‘김일성’은 ‘펑더화이’에게 미군을 계속 추격하자”라고 독촉했지만, 이번 공세에서 우리가 비록승리를 거두었다지만 미군의 매서운 화력으로 엄청난 병력손실을 입었다전쟁은 보급이 중요하다며 ‘펑더화이’는 김일성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실제로, 3차 공세 시 중공군의 주력인 제13병단은 유엔군의 지상, 해상, 공중 화력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제9병단도 유엔군의 화력 공세, 극심한 추위, 보급 곤란으로 장기간에 걸친 전열의 재정비가 불가피한 실정에 놓여 있어, ‘펑더화이’가 1951년 2, 3월 경에나 3차 공세를 하자고 건의할 정도였다.


중공군의 ‘조선 전쟁사’는, “… 공세를 멈춘 것은전선이 남쪽으로 내려가 보급선이 500~700km로 연장되고동계 기간이라 현지 보급조달도 한계가 있고제공권을 장악한 유엔 공군의 후방차단 폭격으로 중공군의 보급상태가 극히 악화되었다”라고 기술하였다. 이처럼, 막심한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중공군은 3차 공세에서 연합군 1.9만여 명을 살상하였는데 비해, 중공군은 5800여 명만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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