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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24. 2022

오스트리아인의 와인 사랑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오스트리아, 제6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 와인

호이리게(와인 가든-일종의 선술집)

만찬 식탁 세팅과 와인


유별난 와인 사랑

오스트리아 국방부는 합참의장이나 각급 부대 및 훈련장 방문, 고위 장성 주관 각종 공, 사석 만찬 초청활동, 무도회나 음악회 외에 다양한 파티, 무관단 초청 스키 행사, 오스트리아 최고봉 등반 등 주재 무관단을 위해 참으로 많은 행사를 주관하여 주었다. 이를 통해 주재국 장교들의 예의와 태도, 의존적인 절차는 물론, 와인 등 식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이해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식사량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일반 식당에 외식하러 나가서 주문할 때도 음식량을 감안하여 우리 가족은 2인 분 정도 주문하면 4명이 거뜬히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국방성이 주관하는 반일 행사, 혹은 종일 행사에 가면 거의 반드시, 행사 도중에  휴식시간 (커피타임: Jause)을 비교적 길게 잡고 참석자들과 커피와 다과를 마시고 먹는 것을 즐긴다. 여기에, 놀랍게도 와인도 내놓는다. 근무시간인데... 이는 무도회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밤 9시에 시작해서 새벽 세, 네 시까지 하는 동안 뷔페라인은 계속 채워준다. 당연히 와인은 식탁의 주빈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다른 유럽인처럼 와인을 매우 즐긴다.  비엔나만 하더라도 다뉴브 강변의 포도 농원들은 풍부한 일조량으로 품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고 이로 인해 좋은 포도주가 많이 있다. 이들에게 와인은 오찬이나, 만찬 시마다 거의 매번 곁들일 정도로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포도주를 곁들여 식사하는 노인들 모습을 보면 얼굴 혈색이 좋고 건장해 보인다.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와인은 100% 천연 과일즙에서 발효하는데, 숙성된 레드 와인 속에 황산화를 방지하는 '탄닌'이라는 성분이 풍부하며, 이게 노인들에게 생기는 검버섯 등을 없애준다고 한다. 


와인을 즐기는 오스트리아가 대외적으로, 프랑스와 달리 와인이 유명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가 많은 양을 생산하여 잉여분을 수출하였는데 비해, 오스트리아는 대부분의 포도주를 자급자족 하는데서 생긴 차이라며, 와인은 가족들의 음식인데 "누가 좋은 와인을 내다 팔고 싶겠는가?"라고 현지인들은 반문한다. 진위를 떠나, 오스트리아에는 많은 와이너리가 있고, 켈러라는 지하 저장고도 거의 모든 와이너리마다, 음식점마다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지하 저장소에 내려가면 '와인 테스팅' 행사가 수시로 벌어진다. 


호이리게 식당 내부

그래서일까? 이들은 외국인 방문객이 오스트리아의 밤 문화나 지역별 즐기기를 추천하라 하면, 열에 아홉이 "호이리게(Wine garden, 일종의 선술집)에 가봤니?"라고 반문한다. 실제, 호이리게에 가보면 흥겨운 음악과 어우러진 평화롭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마음이 절로 뜨거워진다. 


이처럼 와인은 이들 생활의 한 부분이어서, 오스트리아에서 살다 보니 술을 거의 못하는 필자도 와인만큼은 좋아하게 되고, 어설프게 '소믈리에' 흉내를 내기도 한다. 사실, 필자의 주로 해외에서 군생활을 하게 된 것은 '술을 잘 못하는 것'도 일부 기인한다. 직업 군인이 술을 못하면 많은 행사에서 심적 부담을 느끼게 된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데, 혼자만 온 정신이 멀뚱멀뚱한 상태라면... 누가 좋아하겠나? 하지만, 필자가 오스트리아에 다녀온 후 와인 예찬론자로 바뀌어, 지휘관으로 근무할 때, 부대 간부 회식에서는 굳이 소주를 달라고 하는 간부들은 어쩔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포도주를 사용하였다. 그들의 건강에 소주 등 합성주보다 다소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포도주가 훨씬 좋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참고로, 군 PX에서 판매하는 포도주의 질은 상당히 가성비가 높았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좋은 술이 있으니 한 잔 하자'는 식으로 마시고, 식탁에서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취하기 위해 마신다고나 할까? 그러나, 서구인들은 요리를 맛있게 먹기 위해 술을 마시자는 것이므로 여러 종류의 술을 즐기며 마신다. 따라서, 식전에 마시는 술, 식사 중에 마시는 술과 식후에 마시는 술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신사라면 식탁에서 반주로 마시는 천차만별의 술 (와인)중에서 자신이 준비한 요리의 참 맛에 맞는 술로 어떤 것이 좋은지? 어떤 술잔이 어떤 술을 맞는지? 에 대한 조예도 필요하다. 때문에, 장차 군사외교관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술이나 춤 등 이런 낯선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숙소 초청 만찬시 참고하면 좋을 음주 문화 ***

식전주(Drink before Meal, Ape'ritif 혹은 Cocktail)는 통상 만찬 초청행사에 가면, 식탁에 앉기 전 응접실에서 식욕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이다. 통상, 양주에 감미료나 방향제를 첨가한 칵테일 이외에 Sherry(스페인 백포도주의 일종), 위스키, 베르무트 등을 거실 한편에 진열해 둔다. 주인과 인사를 나눈 후 외투를 벗은 뒤 손님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 가져가서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면 된다. 식전주는 안 마시고 있는 것은 멋쩍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좋지 않으니,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진저앨(gingerale)'이나 'Cola'라도 마시도록 하자. 칵테일은 어디까지나 식전주로 식사 준비를 알리기 전까지만 마시는 거니, 1-2잔 정도 마시되 곁들인 과일을 많이 먹고, 여러 가지를 섞어 마시기보다 한 종류를 마시는 것이 좋다. 마시다 남은 잔은 그대로 두고 식탁으로 옮겨가면 된다.


만찬 테이블 기본 세팅

식탁주(Wine)는 그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일반적으로 안주인(호스티스)이 식사 준비를 알리면, 주인(호스트)의 안내에 따라 식탁의 각자의 자리에 착석한다. 유럽 식탁은 주로 12인용이며, Seating Table을 보고 알아서 앉아도 되지만, Protocol에 따라 주인이 안내하는 자리로 가면 된다. 이때 여성에 대한 배려는 기본이다. 그리고 나면, 요리와 더불어 식탁주 와인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흰색 고기류인 생선과 닭요리에는 ‘화이트’ 와인이, 붉은 고기류인 육류와 소스가 강한 요리에는 ‘레드’ 와인이 어울리는데, 메뉴를 보면 만찬에 나오는 요리의 종류도 대충 이런 순서에 맞추어, ‘화이트’ 와인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레드’ 와인이 나온다.


특별히, 와인은 ‘신사가 여성을 만날 때’처럼 세련된 매너와 세심한 주의로 다루고 마셔야 한다. 때문에, ‘와인 맛보기와 따르기, 서빙 방법’에 유념해야 한다. 와인은 주인 남성인 ‘호스트’나 상석의 주빈이 먼저 맛을 보는데, 이들은 웨이터가 와인 잔 밑에 깔릴 정도로 조금 따라주면, 와인 잔을 이리저리 흔들며 와인의 향기를 맡고, 입안에서 혀끝으로 굴리며 맛을 본다. 다만, 어느 드라마에서의 묘사하는 것처럼, 기도를 살짝 막으면서 흡입하듯 마셔보는 등등 요란스레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와인 맛의 변화 여부와, 온도가 맞는지, 코르크 마개 부스러기가 들어가지는 않았나 등을 확인한 뒤, 맛이 좋다고 생각되면 웨이터에게 최상석의 여자 손님에게 먼저 따르게 하면, 그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여성들에게 서브한다. 남자 손님도 이 순서로 하며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서브하고 ‘(안) 주인의 술 들기를 권하는 신호’(건배사?)와 함께 와인을 마신다. 숙소에 초청하는 만찬이 아니라, 일반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주빈이 주문한 와인을 맛보기 할 때, 주의할 점은 혹시라도 ‘맛이 없다(?)’고 다른 와인으로 바뀌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와인 맛보기는 ‘맛이 아니라 변질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간혹, 우리는 주인이나 주빈이 잔을 따라주면, 한국식으로 잔을 들고 술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좀 어색하다. 사실, 잔에 손을 댈 필요도 없고 따르는 모습을 지켜볼 필요도 없다. 다만, 한국에서는 상급자가 잔에 와인을 채워주려 하면, 가만히 잔 밑부분을 두 손으로 살짝 잡아주는 정도로 예의를 표하자. 또, 와인을 '원 샷'으로 한 번에 들이켜면 민망스럽다. 호스트나 웨이터가 항상 식사 도중에 손님의 잔이 조금이라도 비게 되면 얼른 잔을 채워주니, 옆 사람에게 잔을 따라 줄 필요도 없다. (잔에 따를 경우, 잔의 60% 정도만 채운다)


식후주(After Dinner Drink)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커피 등과 함께 드는 디저트의 일종이다. 식탁을 떠나 편안한 의자에 앉아 환담하는 동안, 소화를 돕기 위해서는 도수가 높은, 브랜디, 코냑(주로 선호) 등을 마시고, 여성은 달고 진한 ‘아이스 와인(Ice wine)’ 등을 마시며 헤어질 때까지 대화를 이어간다. 만약, 술이 과했다면 차나 커피도 후식의 좋은 대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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