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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26. 2022

신년 음악회와 오페라, 그리고 사물놀이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오스트리아, 제9화)

신년 음악회와 빈필하모닉

접근하기 어려운 오페라 공연

한국에서 온 사물놀이 공연



신년 음악회

오스트리아는 기독교(구교) 국가로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였다. '비엔나'는 ‘중세 암흑기'를 거치며 발전된 '종교 음악'의 중심지로서 고전음악의 3대 거장인 '하이든', 베토벤’, ‘모차르트’ 등을 비롯하여 음악사의 주요 인물들이 활동하였던 무대였다. 그래서일까? 오스트리아의 어느 산중 마을에서 우리가 잘 아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크리스마스 캐럴이 작곡되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들의 일상과 더불어, ‘비너 왈츠’라는 섹시한 춤도 발전하여 이들은 어두운 겨울밤을 활기차게 보내므로, 오스트리아는 어느덧 춤과 음악의 나라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오스트리아에 10월 경에 부임한 필자는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거대한 춤과 음악의 문화에 뛰어들었는데... 춤 이야기는 다음 편에 다루기로 하고, 제일 먼저 접한 음악회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이야르 콘체르트(New Year’s Concert: 신년음악회)'였다. '신년음악회'는 오스트리아 제국 멸망 이후 중지되었다가, 독일이 급팽창하던, 1939년부터 매년 이어온 행사로, '비엔나'의 유명한 음악전당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에서 1800년대 모든 유럽 왕가의 춤의 양식인 '왈츠' 춤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 '궁정 오케스트라'의 전통을 이어받은 ‘빈 필(Wien Phil)’ 하모닉이,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등 세계 유수의 거장 지휘자를 초청하여 매년 신년맞이로 개최하는데, 그 행사 수준이나 화려함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입장권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상,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참석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통에 따라 국방성이 매년 1월 1일 행사에 주재 무관들을 부부 함께 초청해 주어, 대사 등 다른 외교관도 필자를 부러워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새해 첫날, 일부 TV에서 방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유행가도 별로 잘 알지 못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음치(?)여서, 막상 초청장을 받는 순간 어떤 설렘이나 기대도 없었지만, 서너 시간 연주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와,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 거장들의 곡을 감상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낮아서인지 매우 지루해서 혼이 났다. 약간 위안이 되는 것은 그나마, 나중에는 의외로 경쾌한 '폴카'나 느린 '왈츠', 행진곡 등등이 연주되는 동안 뭐가 뭔지 잘 모르는 가운데서도 옆 사람들 따라 박수도 치고 하면서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다.  

    

뮤직페어라인에서 연주 중인 빈필  

그런대로(?), 첫 해 행사를 넘겼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는 정말안 되겠다” 싶어, 부담이 많았다. 다행히, 현지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왔다가 필자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비서로부터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왈츠의 왕'이라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요한 스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등 세계인의 갈채를 받는 곡에 대한 설명과 그들 부자지간에 얽힌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몇 작품을 중심으로 설명을 듣고 감상법(?)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오스트리아 인사와 대화나 모임에서 소외될까 염려되어 더 좀 알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알면 알수록 재미를 느껴 이제는 그런 곡들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당시, 비엔나에는 약 800여 명의 유학생들이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다. 우리 대사관에서는 현지 문화 이해증진 차원에서 음악 전공 유학생의 음악회를 대사관 강당에서 하도록 해주고, 오페라 공연에 대한 한국어 안내 책자를 만들어 유학생을 초청하여 설명회를 듣는 등 유학생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유학생 강사로부터, 괜찮은 연주회나 오페라를 소개받아 찾아가기도 했지만, 비용 문제로 '빈('비엔나') 필' 연주회는 접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빈('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연주회는, 7, 8월을 제외하고는 ‘호프부루크’ 궁전의 일요일 오전 9시 미사에 참여하면 그 합창곡을 들을 수 있었고, 또, 많은 유학생이 소규모 연주회를 거져서 자주 참석하였다. 그리고, 연주회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음악이 조금씩 다가왔다. 


접근하기 어려운 오페라 


하지만, 오페라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였다. 공연 전에 소책자를 얻어 미리 읽어보고 배경 스토리도 알고 가보았지만 음악회와는 달리, 언어가 어려워서인지 단시간에 이해하기에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오페라하우스 공연은 필자 같은 막귀에도 훨씬 음향이 좋고 생동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만 느꼈다고나 할까... 그런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으니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마음이 좀 더 풍성해진 것 같다.


비엔나 오페라하우스 외관

'비엔나'의 중심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었던 '호프부르크'에서 가까운데, 7-8월을 제하고는 연중 거의 매일 오페라나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가격은 1인당 20만 원대 전후로 만만치 않다. 학생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좌석을 저렴하게 팔기도 한다. 그런데, 비엔나 '오페라하우스'에는 좀 특이한 관중석이 있다. 이는 칼을 찬 군인을 위해 만든 장교용 관중석이다. 군인의 위상이 높았던 만큼, 당시에 칼을 찬 군인이 앉지 않고 기대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가 여전히 남아있어 과거의 영광을 되새길 수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세계적인 군사 대국이었다. (요즘은 이 장교용 관중석을 운용하지 않는다). 오페라하우스는 무도회로도 유명한데 다음 편에 소개한다. 만약, 7-8월에 오페라를 즐기고 싶으면, 알프스 끝자락의 '보덴 제' 호수가의 독일 도시 '콘스탄츠'나, 오스트리아 도시 '브레겐츠'에 가면 아름다운 호숫가의 전경도 즐기고, '요술피리' 등 유명한 오페라를 예술적으로 장식된 호수위 무대에서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사물놀이 공연


서양 음악 못지않게 우리의 전통음악도 매우 훌륭하다. 비록 5 음계로 서양의 8 음계와는 다소 다르긴 하지만 음악을 애호하는 오스트리아 인사들이 동양 음악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해서, 대사관에서는 마침 문화체육부의 지원으로 유럽지역을 순회공연 중인 ‘김덕수 사물놀이 팀’ 이 방문하여 공연을 하게 되었다. 무관도 오스트리아 인사와 주재 무관단 부부 등 많은 인원을 초청하였는데, 대사관 문화담당 서기관이 앞 좌석의 좋은 좌석들을 배정하여 주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한바탕 신명 나게 사물놀이가 진행되는데, 갑자기 앞줄에 앉은 국방성인사의 부인 1명과 타국 무관 부인 1명이 졸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공연은 진행되었지만 필자 내외와 대사관 직원이 부인들을 황급히 공연장 밖의 대기실로 옮기고 구급차를 부르는 소동을 벌였다. 알고 보니 사물놀이는 원래 야외에서 마음껏 북과 장고, 징 및 꽹과리를 쳐대며 흥을 돋우는 음악인데, 이런 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실내 공간에서, 그것도 맨 앞줄에서 감상하다 보니 큰 소리의 데시벨(db)을 견디기 힘들었던 탓으로 보였다. 꽹과리나 북 등의 소리는 서양 음악 악기의 데시벨 보다 훨씬 높다. 얼마 간의 휴식 후 다행히 회복하였지만, 모두가 너무 놀랐다. 그리고, 이들은 두 번 다시 필자가 초청하는 어떠한 한국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이후 서먹하였다.


우리가 좋아하고 잘하는  음악이라 해서 그들도 좋아해 준다는 법은 없다. 익숙지 않은 그들에게 우리 음악이 소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필자가 신년음악회에서 아름다운 곡을 듣고도 지루한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날 행사에서 무대 배경에 김덕수 팀이 ‘주체 000년’ 000년’이라는 북측용어를  사용한 플래카드를 내걸어, 그걸 인지한 누군가가 항의를 제기해서 공연 중간에 제거되긴 하였다. 하지만, 정작 사물놀이 팀은 누가 그런 걸 내걸었는지 몰랐다고 해서 교포 사회가 잠시 시끄러웠다. 정부의 공식 지원 문예 공연행사에는 그런 것들이 등장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사물놀이 팀이 다녀간 후, 우리 대사관은 정부 지원 행사로 또 다른 순회공연팀을 맞이하였다. 이번에는 ‘씻김 굿’이라는 한풀이 굿이었다. 빈에서도 수준 높은 극장에서 그 분야의 수준 높은 공연자들이 서너 시간 동안 잔잔하면서도 은은하게 전개되었다. 우리말로 하니 필자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였지만, 오스트리아 사람이나 기타 외국인을 위해 다국적 설명 팸플릿 등 사전에 준비된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비슷한 시기, 중국의 경극 공연에 피초청되었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공연에서 영어 외에 수 개국 언어들이 벽면의 자막을 통해 나오기도 한다지만 한국어는 거의 없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일이나, 남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많은 노력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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