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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21. 2023

계급보다 직책이 앞서는 군대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13화)

동일 계급 장성이 많은 이유- 이집트의 뼈아픈 과거 전쟁 

오늘날 이집트 군의 특징

청년 장교들의 청렴과 고위 관료들의 부패



오늘날 이집트 군의 특징

필자가 경험한 이집트군은 여러 가지 특징이 있으나, 그중 흥미로운 것은 한 직위에 오래 보직되고 있으며, 계급보다 보직이 우선한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북한도 유사) 나세르 - 사다트 - 무바라크 대통령으로 군부가 집권을 이어가는 동안 국방장관 및 통합군 총참모장(중장) 등 주요 간부는 그 직책을 10년 이상 이어가면서 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고위 군간부들 간의 결속력을 과시하였다. 그 결과, 현재 50여 만의 군 병력에 비해 매우 많은 수의 장성(약 700여 명)이 있으며, 이들 중 1, 3군 사령관과 해, 공군사령관, 부사령관, 군단장, 부군단장, 참모장, 사단장이 모두 소장이라는 동일계급이다. 계급이 있지만 보직으로서 위계질서를 정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이집트가 처절한 패배를 당했던 제3차 중동전인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기습적인 '다표적 동시 타격 공습'으로 전쟁 발발과 동시에 각급 부대의 지휘관과 고위 참모들이 한꺼번에 전사한 탓으로 지휘체계가 와해되어 부대가 큰 혼란을 겪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전쟁 이후, 지휘관과 동일한 계급을 부지휘관으로 두어 비상사태에 대비하였다. 결과적으로, 같은 부대 내에서 동일 계급자가 상, 하 지휘관계이니 이집트 군은 계급보다 직책에 대한 존경도가 훨씬 강한 군대가 되었다. 


이런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공산당이 아예 계급 없이 직책만으로 군을 통솔하였던 상황과도 유사하다. 혁명으로 ‘짜르’ 제국을 무너뜨린 레닌의 ‘적군(Red Army)’은 모두 계급이 없는 평등한 ‘동무’로써, 직책만 있었다. 신해(辛亥)혁명으로 청조를 무너뜨린 ‘쑨원(孫文)’은 1924년, ‘황푸군관학교’ 설립 등 국민당 군 건설과정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덕분에 ‘쑨원’을 계승한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는 계급이 없었고(몇 년 후 계급제도 도입), 당연히 ‘모택동’의 중국 홍군(紅軍)에도 계급도 없었다. 홍군은 심지어 훈장조차 없었다. 


이집트 군이 군인을 한 직위에 오래 보직하는 것은 독일, 러시아 등 유럽식 제도를 따른 것이지만, 지난 수 십 년간 지속되어 온 국가비상사태와 군 고위층 신진대사의 한계, 그리고 장기 충성 복무자에 대한 배려 등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은 우리처럼 사관학교 졸업 기수나 출신 안배, 나이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걸 내미는 문화가 아니니까... 


이집트 군 기념행사

'나세르'나 '사다트' 대통령은 모두 군 출신 정치가여서 이집트는 창군이래 지속적으로 육군, 해군, 공군, 기술군, 경찰 등 5개의 사관학교에 대한 서민들의 관심이 대단하였다. 하지만 제3차 중동전 당시, 부유층 자제로 구성된 대부분 장교들은 '말로만 지휘하고, 위급 시 먼저 도주'하는 행태를 반복하여 부사관이나 사병들에게 큰 불신을 주었다. 이 때문에, 제3차 중동전 패전 이후 집권한 사다트 대통령의 군 개혁은 부패 무능한 군 정보조직을 숙청하고, 귀족이나 부유층 자제의 장교직 독점을 철폐하였다. 그리고, 서민도 장교가 될 수 있도록 전국 각지에서 빈부차이에 무관하게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였다. 


이집트 사관학교 졸업식 행사(모하메드 나지브 기지) 

매년, 6월 중  5개 사관학교는 순차적으로 졸업식 행사를 진행한다. 이집트 각 군 사관생도는, 마치  이스라엘 군인이 '마사다' 요새에서 “마사다의 비극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리라.”라고 다짐하듯이, TV가 중계하는 가운데, 대통령과 전 국민 앞에서 엄숙하게 장교 임관 선서를 한다. 매년 이들 5개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보면 각 학교별 특성은 약간씩 다르지만 생도들의 절도 있는 동작과 일사 분란함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이다. 이 때문에 이집트를 군사 선진국으로 인식하는 아랍, 아프리카 지역의 약 40여 개 국가에서 군 유학생을 파견하고 있다. (22개 아랍 연맹국가 포함) 

이집트-요르단 군사훈련



이처럼, 장교의 질적인 수준이 높아서인지, 문맹률도 높고 사기도 형편없는 이집트 병사들도 초급 지휘자에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만큼은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집트의 병역제도는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의무 병역기간이 짧다. 이는, 독재체제 옹호 세력과 가진 자를 위한 병역제도라는 평가도 있으나, 산업발전을 위해 제한된 고학력 인재들에게 특혜를 주어 신속하게 산업 현장으로 투입하려는 고육지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게다가, 비록 빈부의 차가 격심하지만, 국립대학의 학비는 매우 저렴한 편이다. 또한, 각 대학은 입학은 쉬우나 졸업이 어려운 유럽식 대학제도를 택하고 있어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출세 길도 보장되는 구조이다. 그러니, 학력 수준이 낮으면 어쩔 수 없이 오래 동안 군에 복무해야 한다.


청년 장교의 청렴과 고위 관료의 부패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집트 군의 특징은, 청년 장교들의 청렴과 고위 관료들의 부패라는 아이러니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렇게 패기 발랄한 젊은 장교들이 약 10여 년 정도 군 복무를 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게 되는데, 이때 정부는 이들에게 아파트를 하사한다. 하지만, 이 순간부터 많은 장교들이 현실적인 생활고와 가난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돈의 문제다. 그리고, 일부는 부정부패의 길로 들어선다고 한다. 


이집트 군 장교들은 종교적 교리로 술과 여자 문제는 엄격하나, 돈에 대해서는 자유(?) 로운 것일까? 그런데, 군인에 비해 공무원의 부패는 더 심한 편이다. 재정이 빈약한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공무원을 너무 많이 고용하여 과잉상태이니, 이들의 급여 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들은 조그마한 권한이라도 가지면 여지없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 같다. 문화유적 등 사진 촬영 금지구역을 담당하는 경비원이라도 약간의 돈만 주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며, 차량 출입금지 구역도 출입할 수 있다. 이런 권한마저 없는 대부분 공무원, 학교 선생도 별도의 일이나, 학생을 상대로 한 과외, 야간 택시기사 등 2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대다수 이집트 국민이 처한 가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부분 일반인도 투잡을 하지 않으면 살기가 어렵다. 군인인들 무슨 수로 이를 헤쳐나가겠나? 온갖 정보가 유출되어 이스라엘 군대에게 호되게 당한 이유였다. 


부정부패의 무서운 점은, 군인을 군복만 입었지 싸울 줄 모르는 무식한 군인으로 만든다. 자연스레, 껍데기만의 군대, 거짓 군대가 된다. 군인은, ‘싸울 의지를 갖고 싸울 줄 아는’ 집단으로써, 군복을 입지 않은 어린아이라도 적개심을 가지고 상대를 쏘면 군인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이집트는 오랜 시간 평화를 가졌다. 그런데, 내면에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외형적인 군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군인은 군인을 알아본다. 이런 모습은 과거 우리에게도 있었다. 예컨대, 임진왜란 전, 일본 사절단이 조선을 방문하자, 군사력이 허약한 조선은 군세를 과시하려고 젊은 농군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창을 쥐게 하여 그들을 맞았다. 그런데, 사절단 중 하나가 창을 쥔 농민의 손바닥에 박힌 군살을 만지면서, 이건 창을 다룬 손이 아니다이러다가 다 죽는다라고, 조선 측에 말해 주었다. 아무리 허우대가 멀쩡해도 훈련을 받지 않았으니 군인다움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군인다움도 없고 군인으로 훈련으로 단련되지 않은 군인을 데리고 전장에 나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굳이,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백전백패하였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임진왜란 초, 조선군 ‘신립’ 도원수는, 적은 병력으로도 적을 물리치기 용이한 ‘조령’에서 왜군을 격퇴하기보다, 남한강을 등진 드넓은 ‘충주 탄금대’에서 도망칠 길이 없는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마주 싸우다 전멸했다. 왜, 배수의 진이었을까? 그는 비록 졌지만, 왜군만 보면 도망치는 훈련이 부족한’ 군대를 데리고 죽기 살기로’ 악착같이 싸우려던 지휘관의 고뇌에 찬 결단이었을 것이다. 6.25 전쟁 초기 한국군도 훈련 부족으로 한동안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런 걸 의미하는 것이리라.


직업군인은 '언제, 어디서든 전투에 임한다'는 사생관을 가져야 하는데…, 이런 마음가짐은 ‘믿을 수 있는’ 전우애와 함께 있을 때 가능한다. 2021년 중반, 우리 공군과 해군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여 전 국민이 크게 우려하였다. 군의 동료는 ‘전우’로서 일반적인 직장동료라는 개념과 판이하다. 남자든 여자든 군복을 입은 전우는 목숨을 국가에 맡기는 군인들끼리 서로의 등을 지키는 든든한 동료이다. 그런데, 아무리 상급자라지만 하급자인 전우를 여자라며 성추행을 하다니…, 어느 군대에서도 그런 일은 용납되기 어렵다. 그 정도의 인격이라면 애당초 국가나 군에 헌신하기는 어렵다. 직업 군인에게 여자술은 삼금(三禁)’이다.   


자꾸만, 이집트와 이스라엘 그리고 조선을 엮은 것은 전쟁의 본질이 유사하니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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