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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09. 2023

'카슈미르' 산악지대(2) - '시아첸' 고원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인디아-파키스탄 유엔 평화유지군, 제8화)

험준한 파키스탄의 고산지대 순찰과 난감한 숙소문제

뜻밖에 누렸던 호강(?)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포병부대



파키스탄의 고산지대 순찰과 난감한 숙소 문제

히말라야 산맥 지대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산은 더 아름다워지는데, 인프라는 점점 더 열악해진다. '낭가파르밧'(해발 8125m, 세계 9위) 지역을 통과하여 '시아첸' 고원지대 등 ‘카슈미르’ 산악지대를 순찰하는 동안 해발 수천 미터의 자연이 주는 장엄한 전경과 평생 본 적 없는 고지대 야생지를 경험하는 기쁨은 컸다. 하지만, 외진 만큼 물 문제와 숙소 등 인프라는 또 다른 큰 도전이었다. 특히, 깊은 산 속이라, 마땅한 숙소가 없었다. 


그렇지만, 파키스탄 부대의 지휘관들은 우리에게 군 장교용 숙소나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자신의 지휘소를 숙소로 제공하기도 하고 당번병을 대기시켜 주는 등, 최선을 다해 정성껏 환대하는 모습이었다. 때로는 이도 저도 없는 경우에는 임시 막사에서 샤워 없이 하룻밤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약 2주간 파키스탄 군이 제공한 숙소는 그야말로 그 상태가 극과 극이었다. 


뜻밖에 누렸던 호강(?)


파키스탄군 지휘관(좌) 뒤로 '시아첸' 고원지대와 인더스 강이 보인다. (우)는 필자를 수행한 유엔군 참모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여행 기간이 2주 정도이면 처음 며칠간은 설렘과 호기심으로 그럭저럭 지나지만, 며칠 후부터는 산은 지겨워지고 따뜻한 숙소와 뜨거운 음식이 그리워진다... 그 와중에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지쳐가던 필자가 방문한 부대 중에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에서 수학하였다는, 파키스탄 군 보병 여단장이 있었다. 그는 필자와 비슷한 시기, 같은 장소에 있었다며 매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수상을 역임한 '무샤라프' 육군참모총장이 지었다는 별장

그의 후의는 두터웠다. 부여된 순찰 임무를 하면서 그가 담당하는 지역을 통과하는데 3일이나 걸렸다. 하지만, 그가 내어준 숙소는 호숫가에 위치한 아담한 영국식 목조주택이었다. 주변에 커다란 폭포가 있어 카슈미르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곳이었는데, 1999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이던 ‘무샤라프’ 장군이 과거, 이 부대 '여단장'으로 있었던 인연으로 참모총장 재직 시 건축하여 휴가때 사용하던 곳이지만, 이후, 민선 수상들은 이곳을 찾지 않아 군이 별도로 관리하고 있었으며, 군 고위직만 간간이 사용하는 곳이었다. 


별장 인근의 '무샤라프' 폭포(높이가 거의 100m정도다)

하지만, 야전에서는 매번 숙소가 그곳처럼 좋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들린, 어떤 곳은 전입 가는 부대원들이 거쳐가는 '사단 보충대' 숙소였는데, 그 환경이 열악하기가 짝이 없었다. 해 질 무렵에 도착하니 전기도 없었다. 그나마, 책임자인듯한 선임 부사관이 철제 침대만 덜렁 놓여있는 방에 '카바이드' 가스등을 켜주며, 생색을 내었다. 몇 십 년 전 한국의 길거리 상인들이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하였던 '카바이드' 가스등조차 귀한 산속이라니... 동행한 스웨덴 의무참모는 배정된 숙소가 마치 '헛간 같아서' 그냥 차 안에서 앉은 채로 잤다고 한다. 운전한 파키스탄 부사관은 사병 숙소에서 잤고... 그런 상황이니, 샤워는 며칠에 한 번 하는 걸로 양보해야 했다.


절벽 벼랑을 깎아 만든 길(길깃-스카르두 구간)과 다리 같지 않은 다리를 건너야 하는 엄청난 산악지역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포병부대

그곳을 지나 우리 차량은 어느덧, ‘시아첸’ 고원을 가로 질러 그 지역에 주둔하던 파키스탄 포병부대를 방문

하였다. 1999년 5월의 '카길' 전쟁은 1971년 제3차 인-파 전쟁 이후, 고지대의 ‘시아첸’ 고원에 위치한 파키스탄 포병부대와 저지대에 위치한 인디아 군 포병부대 간의 대포병전의 전례로서 포병 장교에게는 유명하다. 

 

'시아첸' 고원지대를 담당하는 파키스탄 여단본부에서

'카길'은 인디아령 '잠무 카슈미르' 지역으로 '통제선'을 사이로 '150여 Km 떨어진 파키스탄 '카슈미르' 지역인 '스카르두'와 접경하고 있다. '카길' 전쟁은 파키스탄의 기습으로 시작되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으나, 파키스탄 정부의 오판으로 전쟁을 끝내자, 이를 비판한 '무샤라프' 육군총장이 군부쿠데타를 일으켜 정권마저 실각하고 말았다. 


정치를 떠나, 포병 장교인 필자는, 표고 4,100m 정도에 위치한 파키스탄 포병이 표고 2,500m 정도에 있는 '카길' 일대 인디아 군 표적을 제압하려면, 고지대의 강풍과 강추위, 높은 탄도고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대포별로 적용되는 사표(射表)가 실제로 잘 적용되었는지, 탄약에 미친 영향은 없는지 등이 매우 궁금하였다.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지역이라 이번 순찰 시 반드시 현지답사를 해보려 마음먹고 방문한 곳이었다. 


인-파 전쟁에서 사격하는 인디아 포병

파키스탄 군 지휘관은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하고 식사까지 대접하였지만, 그런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염화시중의 미소랄까? 고원지대 포병 전술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연스레 준비해 간 여러 의문은 해소되었다. 혹자는, 아무리 필자가 포병장교라고 하지만, 4000m 이상의 고지가 한국에 없는데, 그런 지역의 전쟁 환경에 대한 이해가 왜 필요한지? 또, 한국에는 사막도 없는데 사막전쟁에 대한 정보가 왜 필요한지? 괜한 생각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고하는 가운데 아이디어는 나온다. 


국방무관이든 평화유지군이든 군인은 외교관이지만, 군인이다. 군인은 지형, 기상 등 군사 정보에 관련되는 각종 데이터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주재국을 최대한 많이 여행하며, 군사적 관점에서 사물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유엔 평화유지군이나 무관 주재국에서는 우리와 전쟁할 일이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뭐든, 단정은 금물이다. 이집트에서는 무관이라서 자료를 수집했던 것이고, 그런 자료가 사용되지 않거나, 사용될 일이 없으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한국군이 이라크에 파병 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니, 현장을 직접 보고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으니, 개인적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필자의 생각에 다양한 상황하에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는 일은, 자신에게 더 큰 믿음과 확신을 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대비하려던 일은 필자의 평생에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면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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