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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29. 2023

선물과 뇌물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20화)

선물과 뇌물

선물에 대한 미국 군인의 관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선물과 뇌물

2019년, 농협, 수협, 산림조합 1,300여 곳에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치러졌다. 3,500여 명 입후보자 중 선거 후, 선거사범으로 800여 명이 기소되어 100여 곳 이상에서 보궐선거를 치렀다. 기소된 자들의 2/3가 금품수수라 고하니 “돈이 곧 표”가 되는 형국이다. 선진국이 되길 바라지만, 정작 전 세계 청렴도 지수 면에서 한국의 점수는 55/100로서, OECD 국가 중 ‘촌지’로 악명 높은 부패국가 ‘그리스’의 43/100보다는 약간 높지만, 여전히 80/100 정도를 오가는 서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치이다. 이와 별도로, OECD 34개국 중에서도 한국의 청렴도는 27위권으로 매우 부패한 나라에 속한다. 정말로, 우리의 국격에 맞지 않는다.


2019년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 포스터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대가성이나 순수성 여부일 것이다. 국익을 위해 외국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때로는 그 경계를 구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때문에,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선물을 줄 경우 그 의미를 곰곰 되씹어 봐야 한다. 필자는 이해관계와 목적이 분명한 선물도, 받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건네면 그 진심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


해외 근무 시, 숙소 만찬에 초청된 손님들은 감사 표시로 조그마한 선물을 가져왔다. 선물이라야, 서구인들은, 꽃 (여자 주인에게)과 함께 포도주 (남자 주인에게) 정도였고, 아프리카, 아시아인도 자국의 토속 기념품이나 자기류, 기념 문진 등 주고받는 모두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범위였다. 그렇지만, 이들 중 일본, 중국 무관의 선물 패턴은 다른 사람들과 좀 달랐던 것 같다.


일본 무관은 ‘작지만 센스 있는 좀 괜찮은 선물’을 ‘자주’ 준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한 때, 우리 사회에 뇌물을 의미하는 말로 '사바사바'와 ‘와이로’라는 일본 말이 통용되었다. '사바사바'는 표준 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데, 고등어라는 일본어 '사바'가 두 개가 겹친 말로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고등어 2마리면 관공서에서도 웬만한 일이 해결된다는 의미였다. ‘와이로’는 ‘요로 (要路)’의 일본어이다. ‘중요한 길목’이라는 뜻인데 새겨보니 의미가 깊다. ‘와이로’는 힘 있는 사람이 가는 길목, 길목마다 선물을 뿌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와이로’는 소위 ‘투자형’이다. 그래서, 명절이고 무슨 명분이 있으면 그저 선물을 주는 거다. 현찰이 아니라 도자기 등 상대의 취향을 고려한 물건들로서… 자꾸 받다 보면 나중에는 꼼짝없이 얽매인다. 


중국 무관은 ‘거저 받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선물을 주었다. 자기 과시용인가? 생각하다가, 공산체제 성격상 '개인 부담이 아니라 국가가 준 것'인데… 뭔가를 염두에 두고 던지는 일종의 ‘거래형’ 선물이었을까? 천박한 표현이지만, “받았으니 뭐라도 요구하면 거절하기 어렵다.” 사실, 뇌물은 일종의 ‘특권’을 주고받는 꼴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 간에는 중국처럼 ‘거래형’ 뇌물이 많다고 한다. 명절날, 국회의사당 의원실 앞에는 선물이 즐비하다. 명절을 빌미로 대가를 염두에 두고 던지는 거고, 그걸 알면서도 공개적(?)으로 받는 거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집트와 같은 후진국, 특히 아랍권 독재국 관리들은 자국의 지리적, 종교적, 정치적 입장을 흥정거리로 여겨 국제적 관행이나 규범보다, 개인이나 패거리 이익에 집착한다. 국가원수나 장관, 아랫사람들까지, 무슨 일을 하려면 인맥과 선물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저들이 우리를 ‘같은 편’으로 여기면서 선물을 요구해 온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저들의 정서를 이해하여 적극적으로 만나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근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선물에 대한 미국 군인의 관점 

서구인의 관점은 이들과 다르다. 개인에게 감사하거나 환심용 선물이 아니라면, 미국 공무원에게는 정부 규정에 맞게 $20 정도에서 구입한 물건을 주든지, 아예 줄 필요가 없다. 그게 맞다. 이는 유럽에서도 일반적이다. 설령, 약간 친한 사이라도, 불쑥 들이미는 큰 선물에는, “아니, 이걸 왜 나에게…?” 혹은, “너, 그럴 필요 없어” 라며 대부분 당황해하며 받을 이유(?)를 모르는 선물은 거부한다. 선물로 환심을 사는 것을 막는 것이다. 


한국에 온 미국군 지휘관들은 한국의 관습을 미리 브리핑받는다. 관습을 소개하는 사람은 우리의 선물 문화에 대해 세세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한국 장교나 민간인에게서 선물을 받으면, 바로 그 선물을 옆에 있는 주임원사에게 주어 '부대에 맡기라'라고 충고한다. ‘자신의 직책에 준 선물이라 받은 것이지, 개인으로 받은 것이 아니므로 부대의 것이다’라고 첨언한다. 그 말에는 ‘지휘관 직책’이, ‘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있는 직책’ 일뿐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논리로 근무하면 개인은 부담에서 자유롭고 부대는 풍성해진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과거, 한미연합사령관 미군 R 대장은 지휘계선상에 있는 예하 한국군 군단, 사단급 부대 방문을 즐겨하였다. 화려한 성격의 그가 한국군 부대를 방문하면 부대 지휘관은 예하 전 지휘관, 참모들을 도열시키고 군악대를 동원하여 환대하였다. 이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미군 내부에서도 빈축을 샀다. 


한편, 후임자인 W 대장은 자신에게 아주 엄격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한국 대전 육군본부에서 ‘특강’ 명분으로 그를 초청하였다. 그는 법무참모에게 한국 측의 '오후 강연, 저녁 만찬' 계획을 건네며, “공인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공인, 개인 반반으로 가야 할지?”를 물었다. 그리고, 참모 건의대로 자신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군용 헬기 대신, 개인 비용의 ‘새마을’ 열차로 대전으로 가서 육본을 방문하였다. ‘과공비례 (過恭非禮)’라지만, 애매할 때는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이 백번 옳은 일이다. 


미국 육군 지휘 및 참모대학의 상징인 '알라딘' 요술 램프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미국 육군지휘참모대학 학교 본관 건물은 타원형의 3층 건물이다. 약 1,200여 명의 학생들이 교육받는 교실과, 학교본부 및 연구실, 각종 부속실 및 편의시설이 함께 들어서 있는 꽤 큰 건물이다. 그런데, 이 학교의 기다란 복도 구석구석에는 많은 물건이 설명과 함께 장식용으로 진열되어 있다. 대부분은, 매년 수백 명의 외국군 장교들이 학교에 입교할 때, 가져온 선물이고 일부는 방문객이 기증한 것인데 이를 번갈아 진열한다. 


그런데, 이 중에는 한국 군인으로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분이 기증한 물건도 있어서 반갑기도(?) 하지만, 일부는 낯 뜨거운 것도 있었다. 혹시라도, 자기 과시나 ‘거래형’으로 학교 간부에게 준 것이었을까? 그런 물건을 학교 교장에게 선물로 준 사람이 후에 그곳을 방문하여 진열 장면을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입교 당시 소령급에 불과하던 자신이 학교 교장에게 줄려고 어렵사리 구해온 물건이 그 학교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남아 잘 진열되어 있다면… 글쎄, 자랑스러울까?


과거의 한국군은, 누가 부대 지휘관에게 선물을 주면, 모두가 지휘관의 개인 소장품이 되었으나, 이제는 지휘관이 받아도 주임원사에게 주어 부대 자산으로 관리한다. 차제에, 미국 지휘참모대학처럼 우리도 각급 부대에 보관 중인 이런 선물을, 누가 보냈는지, 어떤 물건인지를 설명서와 함께 각 부대 건물 구석구석에 진열하면 어떨까? 부대로서는 좋은 장식거리가 될 것이고, 보는 자들에게도 “사람에게 선물해 봤자, 결국은 부대에 남아 있네…” 라며 경종 (警鐘)이 될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야 누군들 없겠는가? 하지만, 공무원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였다면, 자신의 몸가짐부터 청렴해야 한다. 부패한 사회나, 재물을 탐하는 군대가 어떤 꼴로 멸망하였는지 역사에서 숱하게 보았다. ‘군인들의 칼에 보석을 박기 시작하면’ 그 군대는 망한다. 오죽하면, 고려시대 장군 최영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고 했을까? 군인이든, 공무원이든 뇌물, 선물 ‘받는 것’ 좋아하면 큰 일 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의 말이다. 공짜는 '독'이다. 먹는 순간 목이 꿰인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개인의 판단으로 내렸던 각종 지시들이, 세월이 지나 그 합법성 여부에 법리적인 판단을 다시 청구하여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는 사태가 생기고 있다. 눈먼 돈 정보활동비의 달콤한 유혹을 향유하였던 대가는 억세다. 이제는 높은 양반들은 왜, 자신에게 법률고문이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항상, 공사의 구분과, 각종 지시나 명령이 합법적인지? 자신의 권한이나 책임 범위 내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직책은 '일 잘하라'라고 맡기는 것이지, '즐겨라'라고 부여하는 게 아니다.


더불어, 윗사람에게 “선물을 안 주면 무슨 불이익을 당할까?” 노심초사하지 말자. ‘안 주고, 안 받기’가 답이다.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받는 이도 돈 몇 푼에 평생 쌓아 올린 자부심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이다. 가진 자가 베푸는 게 맞다. 비록, 김영란 법 등이 있다지만, 공직자의 경조사 부조금 규모도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한국인은 성장하는 동안 그저 좋은 대학에 가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꿈이었다. 성숙한 “인성”보다 “물질”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하지만, 욕심이 가득한 사회는 반드시 그 부메랑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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