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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28. 2023

내편이냐? 아니냐? (장군의 결기, 장관의 노련함)

어느 군사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19화)

내 편이냐?’ vs ‘아니냐?’

합참의장의 결기, 외교 장관의 노련함



내 편이냐?’ vs ‘아니냐?’

‘할 바(할랄)’와 ‘안 할 바(할렘)’를 가리는 무슬림은, 누군가를 대할 때는 반드시, 내 편이냐? 아니냐? 는 ‘편 가르기’를 한다. 이는 같은 신을 믿는 이슬람 종교의 영향도 있지만, 유목민의 전통이기도 하다.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를 통합하여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교도)’와 ‘다르 알 하르브(이교도)’의 구분 선을 날카롭게 긋는다. 그래서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 적응하는데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런대로 어울려 살아가지만, 이슬람교도는 타 종교를 믿는 집단과의 화합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느낀다. 이는 이슬람의 전투성, 화합 불능성과 비 이슬람교도와의 물리적 근접성 등의 지속적인 특성 때문이다.」 (‘문명의 충돌, 샤무엘 헌팅톤, pp359 - 360)


이처럼, 처음부터 낯선 이들을 ‘같은 편’이나 ‘다른 편’으로 갈라놓다 보니, 저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평소의 이미지 관리는 물론, 중간에 있는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비즈니스에서는 이들과 얼굴을 터는 것이 어렵지, 한번 트고 나면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때문에, 만약, 먼저 선물을 요구하면 일단은 ‘같은 편’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선물을 요구하는 이의 신뢰성 문제는 별개지만…


사실, 많은 중동 아랍국 지도자는, 한국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다. 역사상 한 번도 저들의 정치에 간섭하거나, 그들과 이해관계를 놓고 다툰 적이 없으며, 종교에도 관대하고,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한류나 경제성장 등 좋은 이미지를 준 탓이다. 한국인에 대한 일반 무슬림의 생각도, ‘같은 편’에 가깝다. 


그런데, 외교에서는 대통령이나 장관부터 아랫사람들까지, 무슨 일을 하려면 인맥과 선물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인맥은 별개이고, 선물은 저들이 우리를 ‘같은 편’으로 여길 때 요구해 온다. 우리가 준 선물로 부하의 충성 유도에 사용하겠지만, 저들이 선물을 요구하면,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특히, 이집트 같은 군부독재 후진국 관료는 자국의 지리적, 정치적 중요성을 큰 흥정거리로 여겨 국제 관행이나 규범보다, 개인이나 패거리 이익 추구에 집착하는 편이다. 그러니, 저들의 정서를 이해하여 얼마만큼의 선물을 주고라도 적극적으로 만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 분위기를 파악이 중요하다. 


합참의장의 결기, 외교 장관의 노련함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아랍권은 벌집을 쑤신 듯 격렬하게 반발하였고, 각종 테러 단체는 '미국 주도 다국적군'에 참가하는 국가에 대해 테러 위협을 쏟아내었다. 이 와중에 한국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였다. 석유 수입으로 아랍권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동맹국인 미국의 파병요청에 응해야 했다. 

자이툰 부대 파병 신고

정부는 한국군 파병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려 외교, 국방, 산자부 장관으로 아랍권 15개국 순방을 계획하였다. 국방부도 K 합참의장이 사우디, 이집트, 터키를 방문하는 것으로 정해져, 필자는 이집트 국방부와 방문 일정을 협의하였는데, 뜻밖에 선물 교환문제가 불거졌다. 


이집트는 자기네 장관이 한국 합참의장에게 이러, 이러한 선물할 예정이니, 우리 측 선물내역을 알려 달란다. 국방부에 확인하여, 이러이러한 선물을 준비한다”라고 했더니, 담당실장은, “그런 것보다 S전자 휴대폰 000대를 주면우리 국방장관이 매우 유용하게 쓸 것 같다”라고 노골적으로 자기네 바람을 드러내었다. 당시, 아랍어판 S전자 휴대폰은 대당 $6~700의 고가품이나,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은 제품이었다.


필자가 난감해하자, 보고를 받은 C 대사는 마침, 이집트를 방문 중인 S전자 Y 부회장과의 공관 만찬행사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이라는 서두를 꺼낸 Y 부회장은, “자신들이 국가를 위해 기여할 좋은 기회인 동시에자신의 회사를 홍보하는 좋은 기회로 여겨 기꺼이 그 물량을 제공하겠다”라고 무관에게 약속하였다. 


그 약속을 듣고 내심 다행이라 생각한 필자가 우리 국방부에, 이집트가 선물을 요구하는 건 “같은 편으로 인식(?)하기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아랍의 정서를 설명하면서, 필요한 선물은 S사가 지원한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합참의장은 S 전자의 제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몰상식한 아랍 X으로 노발대발하며 당장 이집트 방문을 취소하라고 지시하였다. 아마, 이집트 정도의 후진국은 합참의장 관심 밖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편이 되겠다”는데 박차 버렸다. 결국, 국방부는 일체의 외부 도움없이 주어진 출장비 내에서 선물하겠다며, 합참의장의 이집트 방문을 곧바로 철회하여 버렸다.


그러자, 중동에서 이집트의 비중을 잘 아는 외교부는 B 외교부 장관이, 이집트 대통령을 예방하도록 협의하였다. 이집트 대통령실도 자국 외교부를 통해 국방부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난민 지원용으로한국 자동차 000여 대를 제공해 달라는 제의를 우리 장관 방문 전에 제시하였다. 이번에는 자동차였다. 고위층으로 갈수록 명분도 거창하고 단위도 커진다. 그리고, 교묘하게 얽어맨다. 필자는 아마도, ‘휴대폰’으로 막을 일을 ‘자동차’로 막는 상황이 아닌지? 걱정했다.


얼마 후, B 외교장관은 이집트 대통령을 예방하였다. 우리 정부가 이집트와 어떻게 조율하였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은 이집트가 요구한 자동차나 휴대폰을 보내지 않았고, 이집트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별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외교장관으로서 오래 다져온 국제외교 경험과 리더십으로 국가 간 외교적 맥락을 잘 짚고 성과를 낸 것 같다. 


반면, 합참의장은 군인으로서 '강직한 결기(?)'는 대단했으나, 공인으로서 국익을 위해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유연성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결과적으로, 순방은 잘 끝났지만, 이집트의 떼쓰기(?) 외교에도 국제적 배경이 ‘있는 분’과 ‘없는 분’ 간의 외교적 대응에는 차이가 많았다. 


그런데, 서구인은 무슬림과 달리, 누군가가 접근해 오면 처음부터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구분하기보다, 상대의 반응이나 행동을 지켜보며 '유익'에 따라서 ‘같은 편’을 정하는 편이다. 그리고, 같은 편이라고 무슨 대단한 편애를 하기보다도, 지킬 것은 최대한 지켜주며 이익을 나누는 정도라 할까? 이런 모습은 서구의 ‘나’ 중심 사회에서는 개개인 모두가 독립적인 인격을 가지고 ‘합리성’을 추구하며 서로서로의 관계에 따라 접촉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유익’이 중요한 잣대이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은 50여 년 간 비즈니스맨으로서, 무슬림처럼 적과 아군을 미리 판단하여 '좋은 고객'과 '나쁜 고객'으로 상대를 나누어 대했다고 한다. 선입견이나 편견이 갖는 위험성을 몰랐을까? 다만, 둘 간의 차이점은 무슬림은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절대로 바꾸려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당연한 것’에 대해서 항상 “Why (왜)?”라는 질문으로 당연한 ‘가정 (Assumption)’을 파괴하고, 모두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데... 어쨌든, 피아로 나눈 것은 나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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