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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31. 2023

'튜니지아' 이야기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23화)

무관의 역할을 기대하였던 겸임국 튜니지아 대사관

튜니지아 국방부 문화소개 여행



무관의 역할을 기대하였던 겸임국 튜니지아 대사관

튜니지아는 다른 겸임국 요르단과 달리 카이로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튜니지아의 첫인상은 중동 아랍이나, 아프리카 국가답지 않은(?) 서구 국가 중 좀 경제력이 처지는 국가 정도로 느껴졌다. 튜니지아는 프랑스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오랜 프랑스의 식민지여서인지 프랑스 풍이 곳곳에 묻어 있다. 아랍인이라지만 인종적으로 유럽인처럼 거의가 백인종이다. 사실, 아랍인의 정의는 언어와 관습, 종교를 통해 그 정체성을 정의한다. 같은 아랍인이라 해도 이집트의 아랍인과 튜니지아의 아랍인은 외모적으로 공통점을 별로 찾을 수 없다. 튜니지아는 오스만 제국시절 황실 근위대로 각광을 받았던 '예니체리'라는 군인들이 은퇴 이후에 실버타운으로 자리 잡은 마을들이 많았다. 당연히 금발 벽안에 가까운 아랍인들이 많다. 거기다가 오랜 프랑스 식민지배까지... 튜니지아는 여전히 불어가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이다. 다만, 오랜 이슬람의 영향으로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무관의 겸임국으로서 튜니지아 대사님 두 분과 근무하였는데, 한분은 막 퇴임을 앞둔 분이었지만 최초 부임 시부터 무관을 가까이 대해 주셨고, 갈 때마다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정리를 잘해 주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다음에 오신 분은 여자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사가 되신 분이라 적극적이고 매사에 열심히 임하시며 무관의 역할 확대를 위해 애써주시고 자주 방문해 주도록 요청하셨던 분이었다.


혹자는, 아랍 국가에 여성 대사라니...? 하고 의아해할지 모르나, 세속적이고 사회주의자였던 '부르기바' 전 튜니지아 대통령은 전통적인 아랍의 여성관에 일대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다. 여성의 머리를 감싸던 베일을 벗게 하고, 일부다처제, 이혼을 불법화와 가문끼리 정한 혼인도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등 다른 이슬람 국가와 다른 정책을 취한 덕분에 아랍권 중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고대의 전통이 남아 여성 외국인은 소매나 어깨를 가리고 긴치마나 바지를 입는 편이 안전하다.   


당시, 한국은 정부의 긴축 예산 방침으로 국방부는 예산절감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당연히, 해외출장은 어려웠다. 심지어, 대사 취임식날 겸임국 방문을 승인해 달라는 무관의 건의를 특별한 국방현안이 없다며 불허했고, 신임 대사가 정식 공문으로 요청한 대사 신임장 제정 시 무관 동반 건의 사항마저 반려해 버렸다. 신임장 제정 시 군복을 입은 무관을 대동하는 것은 대부분 선진국들이 의례히 하는 관습이었는데.. 돈 몇 푼에 대사의 위상을 제고시킬 기회를 날린 것은 데스크 담당자의 실책으로 보인다.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정황을 대사님께 계속 보고하고 알려드렸더니 "영, 이해가 안 간다"며 불만스러워했다. 


실제로 당시, 한국-튜니지아 간에 방산협력 등 몇 가지 현안이 걸려있어, 여러모로 무관의 역할이 필요하였다. 급기야 "외교부에서 모든 자금을 책임질 터이니 당장 오라!"라고 공문을 보내왔다. 국방부는 그제야 방문을 허락을 해서 겸임국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거의 반년만이었다. 이쯤 되면, 겸임국 업무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지만, 새로 부임하신 대사님은 놀랍게도 주재국 국방부 인사 방문 주선, 현안과제 선정 등 모든 것을 전임 대사님 못지않게 잘 준비해 주셨다. 필자의 업무 공백을 필자가 체류하는 동안 채울 수 있도록 대사관저에서 만찬행사, 현안과 밀접한 국방부 인사 공식 방문 일정 등등.. , 무관 방문 일정에 맞추어 요직에 있는 군인들을 미리 초청해 놓고, 국방현안 토의내용 건정까지... 군인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을 정도로 섬세하였다. 더불어, 대사관저 만찬 시에도 대사님이 주인으로, 무관을 그 상대역으로 하여 손님을 치렀는데, 만찬에 참석하였던 국방성 인사들의 자리배치나 대화내용 등 오랜 외교생활 경륜과 여성다운 깔끔함도 묻어 있었다. 덕분에, 그들과 많이 가까워졌고..., 이를 계기로 그 이후에도 방문 시마다 그들을 자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카이로 공관장 회의' 때문에 요르단 대사님과 함께 '카이로'로 오는 그날, 튜니지아 대사님도 오셨는데... 카이로 일정은 대사관에서 단체로 계획하여 진행하니, 필자가 달리 준비할 사항이 없었지만, 농담 삼아 "무관의 영접을 기대하였다"라며 내심 서운해하는 걸 보며, 그래도 자신의 무관이라고 생각해 주시는 두 겸임국 대사님들의  배려와 관심에는 정말 감사하였다. 사실, 정부 내 부서가 다르면 챙겨주고 협조하는 마음은 흔치 않은데... 차가운 공직 사회이지만 훈훈한 정을 느꼈다. 또, 카이로에서 떠날 때도 얼마나 아쉬워하시던지... 아프리카라는 근무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쨌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분들이다.


당시, 튜니지아는 한국과의 방산협력에 진심이었다. 예컨대, 튜니지아 국방부도 필자를 매년 무관단 여행에 초청하였는데, 두어 번은 여행은 뒷 전이고 한국과의 방산협력 이슈로 일정을 잡아, 하루, 이틀 먼저 도착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그만큼 여러 건의 국방 협력 건도 있어서 정말 자주 방문하여 함께 뭔가 성과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 늘 죄송했다. 튜니지아가 적극적이었음에도.. 우리 측 방산회사가 수주 물량이 적다거나, 현금이 없지 않으냐? 하는 식으로 꼬투리를 잡으며, 성사직전까지 갔던 몇 건이 우리 측의 애매한 태도로 무산되곤 했다. 작은 나라도 한 개의 국가인데... 방산업자들이야 아무래도 상업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튜니지아 국방부 문화소개 여행

아마도,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는 프랑스풍 인프라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튜니지아가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지중해에 면한 아름다운 해변과 이국적인 사막 문화를 가진 아랍국가이다. 출장 때마다 느낀 건데, 수도 '튜니스'에는 유독 흰 건물이 눈에 많이 뜨인다. 건물 색갈이 하얀 것은 하얀 '재스민' 꽃을 따른 거라고 한다. 


튜니지아 '시디 부 사이드' 마을 건물의 파란 창문

이처럼, 흰색의 집 중에서도 오스만 제국의 귀족층 별장지로서, 수도 튜니스 북쪽에 있는 '시디 부 사이드'라는 자그마한 항구도시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지중해의 맑은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재스민 꽃과, 흰색 벽과 파란색(튀니지안 블루) 창을 가진 야트막한 언덕 위의 전통 가옥들 때문이다. '튜니지안 블루'로 알려진 파란 창문에서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맞는 기분은 어떨까? 프랑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도 이 도시에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튜니지아 카르타고 유적지(카르티지)

튜니지아 생활의 초점은 모든 마을마다 있는 '함맘'(공중목욕탕)인데 여기는 단순히 몸을 씻는 장소가 아니라 사교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남, 녀는 전혀 다른 건물로 구분되며, 남자는 아무것도 가져갈 필요가 없는데, 여자는 자신의 타월을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남녀 모두 목욕 중에 반드시 속옷을 입어야 한다. 여기에도 때밀이 직업이 있어 아예 요금에 포함된다. 


역사적으로도, 튜니지아 하면 로마를 멸망의 위기까지 몰아넣었던 '한니발'의 '카르타고'가 건설되었던 지역을 빼놓을 수 없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의 심장부로 향하던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에 맞선 로마군은 '칸네의 회전'에서 궤멸당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니발'은 패배하여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파괴된 도시에는 식물조차 못 자라도록 소금을 몇 겹이나 뿌렸다 한다. 

지금도 '카르타고' 유적지에는, 무수히 많은 돌기둥과 흙벽만 남아 있다. 유적지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하였는지, 메디나라는 튜니스 구시가지에 7세기경 지어진 '지투나' 모스크의 중앙회당을 지을 때 카르타고 유적지에서 가져온 돌기둥 200여 개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튜니지아 '엘젬' 로마식 원형경기장 

이 외에도, 튜니스 남쪽 200여 Km 내려가면 '엘 젬'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여기에는 로마식 '원형 경기장'이 있는데, 이곳이 로마시대 검투사 이야기를 담은 '글래디에터'의 촬영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근 해안 도시 '수스'도 '엘젬'처럼 마치, 이태리의 어느 곳을 보는 듯 착각할 정도로 많은 로마시대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수스는 카이사르와 로마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폼페이우스'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해적들을 제압하기 위해 '폼페이우스'에게 로마가 모든 지중해 관리권을 부여했었다. 


튜니지아는 또 '잉글리쉬 페이션트'라는 영화와 '스타워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둘 다 사하라 사막에 가까운 남쪽이라 가보지 못했다. 일부 무관들이 그곳 방문을 희망하였으나, 문화소개에도 맞지 않고 무더운 기상과 안전을 이유로 거부되었다 한다. 우리 무관단의 여행 경로는 튜니스-시디 부 사이드-카르티지-수스-엘젬-카이르완 등 기후가 좋은 중, 북부지역이었다.


튜니지아는 무관단 규모도 작은 나라라 비록 겸임국 무관이었지만 타국의 상주 무관들은 필자내외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특히 중국 무관 내외는 불어와 아랍어는 하였지만 영어는 더듬거리는 수준이었는데도, 필자 부부에게 매번 가까이에서 뭔가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고 성심껏 도와주었다. 아마도 다른 아시아 국가 무관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한국에 우호적이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부부의 따뜻한  태도는 서구인들의 친절과는 다른 진정성 면에서 느껴져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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