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7화: 미 해군대학원 - 5)
여행으로 미국 문화와 군사력 체험
세계화와 한국군 선배, 후배 문화
여행으로 미국 문화와 군사력 체험
미 해대원은 학생장교들에게는 공부와 학점으로 인해 비록 지옥 같은 곳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천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답고, 기후가 좋으며 쾌적한 환경이었다. 다만, 정부에서 주는 생활비가 늘 빠듯하여 한국의 급여를 가져다 써야 했지만... 그리고, 학교나 지자체가 주관하는 다양한 가족용 프로그램이 있어 가족의 영어실력 향상은 물론, 어린 자녀교육에도 좋은 여건이었다. 대부분 우리 학생장교들은 고된 가운데서도 늘 멋진 방학을 꿈꿨다. 비록, 많은 캘리포니아 학교의 학제가 학기제 (Semester)가 아니고 분기제 (Quarter)여서 방학기간이 2주 정도로 매우 짧긴 했지만, 그래도, 방학만 되면 가족과 함께 미국 서부의 유명한 관광지를 여행하겠다며 벼르는 이들이 많았다.
필자는, 첫 분기가 끝나자 뜻을 같이하는 친한 친구 3-4 가족과 함께, 당시 미국에서도 꽤 비쌌던 R/V 를 빌려, 분기와 분기 사이의 휴가를 이용하여 요세미티, 레이크 타호, 그랜드 캐년 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명소를 여행하였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미 해대원에서 약 2년 6개월을 보내는 동안 10개 분기의 중간, 중간 2주간씩 방학기간에 5번 동안 미국 서부지역의 십여 개의 주(state)를 더 여행하였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여기에다가 6년 후에 다시 미국 육군 지휘 및 참모대학교에서 교환교관/연락장교로 근무할 때도 휴가 등 틈만 나면 근무지 캔자스는 물론, '나이아가라'로부터 '키 웨스트'까지 종단하며 미국 동부와 남부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으니, 남부의 텍사스 등을 모두 합치면 대략 36개 주를 둘러본 것 같다. 필자가 미국 배우기에 한창 열중하던 시절이라 여행으로 미국 사회와 미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외국군 학생들의 이런 바람을 이해하고 있어서였을까? 미 해군은 우리 외국군 장교들에게 해군대학원 졸업 기념으로, 해군이 보유한 군 여객기를 제공하여 서부에서 동부로 날라주었다. 군 여객기는 C-130 등 무슨 수송기가 아니라, 민항 여객기와 똑같은 보잉 747기로 사병(수병)인 스튜워디스(여군)와 스튜워드(남군)가 여행 내내 서빙을 해주었다. 뉴욕에 도착한 이후에도 역시 군용 관광 차량을 이용하여, 동부 ‘애나 폴리스’에 위치한 미 해군사관학교와 미국 독립의 중심지였던 ‘월리암스 버그 (미국 최초 수도로 우리의 민속촌)’ 그리고 ‘워싱턴 DC’의 주요 견학지와 북 대서양함대 사령부가 있는 ‘노포크’ 해군기지를 보여 주었다.
특색 있는 각 여행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답게 잘 가꾸어져 있었고, 군사 기지 또한 볼거리가 많았다. 조금 과장하면, '노포크' 기지에 정박 중인 항공모함 등은 화력과 첨단 시설 등으로 그 위세가 대단하여 마치, “미국에 대들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나중에 미국 지휘참모대 연락장교로 재직 시 텍사스 주 ‘포트 후드’ 육군 기지를 방문하였을 때도, 도로 연변에 출동준비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무수한 전차, 장갑차 등 중장비들을 보면서 받은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미국 군은 IMET(무상 군사원조) 든 FMS(유상 군사원조) 든 많은 돈을 들여 수많은 유학생들을 교육시켰다 하지만, 이들에게 미국의 힘을 알리고, 미국을 이해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숨은 의도가 성공하였는지는 평가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다만, 어떤 이들은, “자신이 배웠거나 자신이 운용하면서 좋게 생각하였다면, 그게 장비든 제도든 나중에 정책입안자가 되면 그런 것들을 찾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투자대 효과이다.” 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교육을 통해 사고방식 자체를 미국화 시키면 나중에 그들이 고위직으로 진출했을 때,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필자는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을 이해하기에 이러한 판단에 긍정하는 면도 있다. 사실,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정책 결정을 위한 참고 자료로 외국의 사례를 많이들 인용한다. 예컨대, 노동문제라면, 독일의 정책을, 지방행정이라면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는 식인데... 방산이나 군사 정책에는 무엇보다 미국의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세계화'와 한국군 선배, 후배 문화
이처럼, 미국이라는 나라가 계속 세계를 주도하고 가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을 발 붙이지 못하도록하는 강력한 감시체제가 작동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미 해대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만났던 일부 선배에게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당시, 미 해대원에는 우리들 석사 과정 이외에 3개월 과정으로 미국 해대원 부설 국방관리 과정이 있어, 가끔씩 한국에서 중, 대령급 장교들이 이 과정에 연수차 입교를 하였다. 소령급인 우리 학생 장교들은 힘겨운 공부 중에도 한국에서 선배들이 오면, 이국 땅에서 만나는 거라 남다른 마음으로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우리 학생 장교는 당번제로 돌아가면서 이들의 정착과 활동을 지원해 주었는데, 이러면서 서로 얼굴을 익히고 고국과 군에 대한 여러 가지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의 언행이나, 영어 하는 것이나, 학습내용, 가치관 등을 통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대부분 선배들은 여러 가지 군 소식과 함께 많은 격려 말씀을 주시고, 선배로써 모범을 보여 주신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런데, 아주 일부지만 어떤 분은 그곳까지 와서도 소위 선배 행세(?)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공부에 힘든 유학생을 수시로 불러내어 부리며, "자신에게 잘 못하면 별로 안 좋을 것"이라는 위협성(?)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니까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대접을 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잘못된 교육의 희생양으로 보여서 참 안타까웠다. 그래서, 필자도 후배들에게 그런 부류 중의 하나로 비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문득 든다. 한때, “세계화(Globalization)”가 우리 모두의 화두였고, 선진국 진입이 모두의 염원이지만, 팀플레이로 일심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나이, 고향, 계급, 학교 선, 후배를 따지고 앉아있다면, 아무리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루어도 우리는 결코 국제 기준에 부합되는 사회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미국 군에서는 그런 것을 찾는다는 것이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