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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13. 2023

서구의 상술, 무슬림의 상술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인디아-파키스탄 유엔 평화유지군, 제12화)

서구의 상술

서구사회는 기본적으로 ‘가격정찰제’다.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상점은, 전통시장처럼 주인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에누리’는 없지만, 환불, 교환 보증 서비스는 철저하다. 오래전 미국 유학시절, 마트마다 무엇이든지 ‘환불 (Refunds)’이 잘되어 놀란 적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반품이나 환불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물건을 샀다가 환불할 때는 마치 죄를 지은 양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마트 종업원은 웃는 얼굴로 쉽게 환불해 주었다. 후에 알았지만, 대형마트는 물건 구입 시, 납품 측에 ‘클레임 (Claim)’ 비용까지 미리 포함시킨다. 잃을 게 없는 그들로서는 자신의 가게에서 제품을 구매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였다. 


마케팅이 뛰어난 미국은 매출을 위해, 매장에 없는 물건도 구해다 주는 ‘Rain check’ 제도부터 ‘연중 세일’, 각종 쿠폰 할인, 보증 제도 등 돈이 되는 건 뭐든지 다 한다. 자본주의이니까. 당연히, 구매자들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 이런 각종제도를 십분 활용한다. 사실, 모두가 너나없이 손에 쿠폰을 들고 줄을 서서 약간의 할인이라도 받으려 하고, 무슨 물건을 사려면 우직할 정도로 제품안내서나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모습은 좀 낯설었다.


오스트리아는 2000년에야 EU에 가입하였다. 이전까지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사회주의 국가였다. 필자가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금요일 저녁 늦게 도착하였다. 다음 날, 호텔에 체류하는 주말 동안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갔더니,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이 나라는 토, 일요일에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뿐만 아니라, 평일 날도 오후 6시 즈음에 가게에 가면 종업원은 퇴근시간이라며 아예 물건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휴일이나, 야간에도 어떻게 해서라도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한국과 너무 달랐다. 하지만, EU 가입 이후는 확 달라졌다. 


몇 년 전, 오래전 아르헨티나에 이민 가서 의류공장을 하는 형님 댁에서 두어 달 머물렀다. 어느 날, 형님과 함께 공장 종업원을 위한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갔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수 십 명분이 마실 우유를 사려해도 1인당 5인분만 한정하여 판다는 거였다. 아르헨티나는 인구 1인당 소 사육 비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로… 우유는 넘치나는데도 수요-공급의 원칙보다 '1인당 지정'된 할당량만 팔았다. 국가사회주의였을까…? 마트 직원은 '어기면 처벌받는다'라며 수익은 관심밖이었다. 


이처럼, 국가별로, 사회별로 서비스의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서비스의 향상 속도는 놀랍다. 카이로에 있을 때, ‘맥도널드 햄버거’를 배달하는 서비스를 보고,  ‘원, 이집트인이란… 인건비가 아무리 싸다고 해도 그렇지, ‘패스트푸드’는 즉석에서 따뜻하게 먹어야지 무슨 배달인가?’라고 생각하며, 내심 흉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배달 관련 ‘앱’이 판을 치며 치킨이나 피자 등 ‘패스트푸드’ 배달은 상식이 되었다. 당시로서는, 가난하기만 한 무슬림 나라라는 선입관에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가는 '서비스'의 진화를 생각하지 못했다.


서비스의 요금제도 진화의 한 부분일까? 외식의 경우,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간단하게 먹는 식사를 제외하고는, 전 가족이 함께 하는 외식을 그렇게 자주 하지 않는다. 음식 값도 비싸지만 덩달아 붙는 팁도 오른 탓이다. 미국 식당의 팁은 과거의 10%대 어간에서 15%로 올랐다가 지금은 거의 20%대에 육박한다. 유럽에서 식사 후에 탁자 위에 몇 유로 정도 놓고 가는데 비해, 미국은 '서비스'의 질에 비하면 정말 비싸다. 중동에서도 우리처럼 일류 호텔이 아니면 팁 문화가 없다. 한국에서는, 식사비에 봉사료가 모두 포함되고 물과 반찬은 달라는 대로 준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돈 없는 추가는 생각지도 못한다. 


무슬림의 서로 다른 상술

이처럼, 국가별로, 사회별로 서로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듯이, 같은 무슬림이라 하더라도 카슈미르 지역의 파키스탄이나 인디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의 상술 또한, 서로가 매우 달랐다.


‘라발핀디(파키스탄)’의 사과 장수

유엔 PKO 임무로 파키스탄에 파견된, 한국군 장교 (가족동반) 가족이, 파키스탄의 ‘라왈핀디’ 시 시장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고르는데, 느닷없이 “안 사도 좋으니, 고르지 말라!”며 주인이 무섭게 굴었다는 것이다. 별로 상태도 좋지 않은 물건들이라 그나마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데… 하지만, 물건 한, 두 개 팔려다가 혹여라도 옆 물건이 손상될까 봐 지레 겁을 지어먹는 상인이었다. 우리 한국인은 과일이나 옷 등 각종 물건을 수북이 쌓아놓은 가운데 골라서 사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물건을 “뒤젂거리다가 골라 담는” 이런 구매 관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가게나 상점에서 내놓은 대로 사라고 강요하는 식이다. 어찌 보면 상점의 ‘갑질‘이기도 하다.


‘스리나가르(인디아)’의 아몬드 장사

게다가, 이들에게 단골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인디아 쪽 ‘카슈미르’에서 근무할 때, 필자는 그 지방의 호두와 ‘아몬드’를 가끔씩 사서 먹었다. 문제는 늘 같은 가게에 가니 필자의 얼굴을 아는 상인이 필자가 갈 때마다 값을 올려 받는 것이었다. “왜, 값이 매번 오르냐?”라는 질문에, “당신이 자주 오는 걸 보니 아마도 내가 너무 싸게 판 듯하여 값을 올린다.”라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단골이면 "자주 오라"라고 값을 낮추어 주는데, 이들은 '값을 싸게 주니 자주 온다'라고 생각하였다. 


카이로 '칸 엘카힐리' 시장에서 흥정하는 모습

이런 인디아 상인과 달리, 이집트 상인은 일반적으로 먼저 터무니없이 값을 올려 부르고는 차츰, 차츰 내려 주는데서 희열을 느낀다고 하였다. 상인 자신은 가진 게 시간이 전부이니, 관광객에게 ‘시간이 아까우면 돈으로 때우라’는 식으로. 덕분에, 깎아달라고 매달리기(?) 싫으면 시간이 촉박한 관광객들은 돈으로 때워야 한다. 하지만, 흥정은 ‘말이 많은’ 이들 문화의 또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은 물건을 파는 것보다, 고객이 깎아 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을 더 좋아한다고 하니… 부자들의 목메는 모습에 환희를 느끼는 것인지!? 


협상하는 모습은 하나님께도 적용되는 걸까? 구약성경 (창세기 18:20~ 33)에 따르면, 유일신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 할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상대로, 의인을 찾는데 한 번도 아니고 여섯 번에 걸쳐 끈질기고도 대단한 협상술을 발휘하였다. 하나님께 계속 조른 이런 끈기를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이어받은 걸까? 이들은 유별나게 흥정을 '즐겨'하니, 우리도 '끈질기게' 흥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정찰제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10% 정도만 에누리해 주어도 감지덕지한지라, 30~40% 깎아 주면 바로 구매에 들어간다. 상담에서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카이로의 ‘칸 엘카힐리’ 시장에서는, 약간의 시간 투자와 약간의 아랍어만 구사하면 첫 가격의 10~20% 대의 현지인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다만, 이들에게 환불의 개념은 없다. 일단, 상인의 손에 돈이 들어가면 그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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