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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리 Oct 29. 2024

비둘기 자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발표지원 선정작

비둘기 자세


최규리 



악어가 들끓습니다 

척추로 이어진 깊은 골에서 야생을 지키려는 생존 게임이 난무합니다


허리를 펴는 순간 제멋대로 던져진 일상이 매트 아래에 수북이 쏟아집니다 식물과 새가 있는 사진을 걸어두었으나 어디선가 울음 떼가 몰려옵니다 


우리는 어떤 포즈로 하루를 버티어 왔을까요  


구름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다니다가

메아리 같은 표정으로 해부용 개구리를 바라보는 일

동굴에 거꾸로 매달린 박쥐 같은 자세로


몽타주처럼 조립된 신체를

삐딱해진 척주와 골반을 열어 


고단했다 잘 싸웠다 말해주고 싶습니다


뭉쳐진 근육은 우연으로 생겼다고 볼 수 없겠죠

풍랑에 요동치는 신념이 

결정적인 순간에 금붕어가 되고 


오늘 내게 누군가의 무례한 동작들이 있었나요?


무공해 비누로 거품을 호소하는 손바닥

예고도 없이 탁 마주친 이별처럼

오염되지 않은 손수건을 흔들 수 없는 것 


뒤로 뻗은 다리와 반으로 접은 다리는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허리를 곧게 고쳐 세우는 일이란 

나를 온전히 벌거숭이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펼치지 못한 힘을 조여주고

행운의 수레바퀴를 끌고 가는 사슴의 규칙적인 일과처럼


나는 얼마나 깊어졌을까요


나 이 자세로 한동안 행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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