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의 인생에 오지랖 금지

소소한 일상

by 앤노트

대학생 시절 중국 교환학생으로 가서 나의 첫 기숙사방은

큰방 1개, 작은방 1개에 거실이 있는 투룸이었다.

새로 간 나와 또 다른 친구가 큰방을 함께 쓰고 작은 방에는 이미 와 있던 고등학생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는 얼굴도 귀여웠고 아주 싹싹했다.


그러던 중 그 아이가 어느 날 우리에게 자기가 사실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고백해 왔다.

그 아이와 10살 정도? 차이가 나는 한국오빠였다.

중국어도 현지인처럼 뛰어났고 젠틀했고 학교와 사람들에게도 모두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냥 짝사랑이겠거니 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그 오빠가 자기가 힘들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자기를 찾아와서 관계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깊은 사이임에도 오빠가 아무에게도 자기와 사귄다는 말을 안 한다는 게, 그래서 본인도 주변에 티를 낼 수가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차분하게 듣던 나는 급발진하고 말았다.

아니 이런 ㄱㅅ끼가???????

당장 헤어지라고 했지만 그 아이에겐 들릴 리 없었고,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음날 그 오빠를 찾아갔다.

애기 데리고 뭐 하는 거냐고. 좋아하는 거 아니면 꺼지라고.

전투심에 불타오른 그때 내 나이 역시 그 고등학생과 별반 차이 나지 않았던 22살이었다. ㅎㅎ

그리고 그날 저녁 그 여자아이가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향해 울며 소리 질렀다.

언니 때문에 오빠가 자기랑 헤어지자고 했다고.

언니가 다 망쳐놨다고. 짜증 난다고.


아.... 이런....

나는 그 아이의 엄마도 친언니도 선생님도 보호자도 아니었다.

그저 룸메이트일 뿐

그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녀의 인생에 들어가 그녀의 인생을 내 멋대로 조율할 권리는 없었던 거다.

그때 분노에 차서 오열하는 그녀를 보며 멍하게 있다가 결심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남의 인생에 오지랖을 부리지 않겠다고.


그때 그 아이는 미성년자였으니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고는 물론 1도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나는 여전히 그때 그 결심을 이어가며 남의 인생에 오지랖 부리지 않고 내 걱정만 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 걱정만 하며 살기에도 벅찬 현실 세상이기에...)

그 아이 지금쯤 결혼했으려나.

결혼했다면, 혹시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그때 내 마음 이해하고 고마울 텐데.

나쁜 놈에게서 구출시켜준 은인이라고.

아니면 의외로 여전히 첫사랑의 파탄자..로 남아있을지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또 늦게 오고 싶은 유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