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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소소한 일상
by
앤노트
Oct 17. 2024
2015. 8. 1. 2:19 ・ 비공개
소파는 나에게 특별한 가구다.
어릴
적 우리 집 거실에는 검은색 가죽 소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인테리어적으로는 그다지 훌륭하지는 못한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아주 크고 푹신했다.
우리 가족은 그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고 잠을 자고 놀고 때로는 밥도 먹었다.
우리 집
에 나이 많던 개는 늘 그 소파 위에 늘어져 잠을 잤다. 소파는 우리 집 그 자리에 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중학생이었던 그때 갑자기 집이 어려워졌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급하게 집을 좁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좁아진 집으로 가면서 가장 먼저 버림받은 것은 다름 아닌 소파였다.
그때 나는 처음 소파가
사치스러운 가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파는 냉장고, 옷장, 침대처럼 꼭 필요한 가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 집은 소파를 사지 못했다.
집이 조금씩 넓어졌지만 소파를 둘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나는 소파가 없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졌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나는 결혼을 했다.
신혼집을 꾸미며 가장 욕심이
났던 것은 소파였다.
그리 큰 집이 아니라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꼭 소파를 사고 싶었다. 어릴 때 갑작스럽게 우리 가족 곁을 떠나버린 소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나는
어릴 때의 새까만 소파와는 전혀 다른 하얀색의 패브릭 소파를 샀다.
소파는 푹신했고 아늑했다.
나의 삶이 다시 평화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시 찾은 나의 소파생활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기고 걷는 과정을 지나 뛰어놀게 되면서 아이는 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나의 모성애는 로망을 이기고 말았다.
나는 중고카페에 내가 산 금액의 반값에 소파를 내놓았고 어떤 젊고 예쁜 아가씨는 그 금액에 사겠다 하더니 집에 도착해서는 그 반값에서 애걸복걸하여 더더 저렴한 가격에 덜렁 나의 소파를 싣고 떠나가 버렸다.
소파가 사라지자 집이 넓어졌다.
아이는
신이 나서 붕붕카를 밀며 뛰어다녔다.
하얀색 패브릭에 아이가 뭐라도 쏟을까 묻힐까 조마조마, 얼룩질까
때가 탈까 세탁하기 바빴던 소파가 사라지니 손이 갈 일은 적어졌다.
그런데
어릴 때처럼 꿈결같이 나타났다 또다시 사라진 소파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쩌면 소파와 나는 인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또 소파를 갖고 싶다.
아이가 좀 크면 그때
다시 한번 끝내주는 소파를 사겠다.
그때는 푹신하면서도 다루기 쉽고 때도 타지 않는 그런 소파를
살 것이다.
2015년의 비공개 일기장.
끝내주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편안한 우리 집
소파에서 쓰는 이 글.
붕붕카를 밀던 그 아이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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