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대로 생각하기 vs. 생각하는대로 살기

내가 다시 노마드를 자청한 이유

by 아무말

난 원래 본투비 노마드(nomad)다. 사주부터가 역마살이 있다 - 사주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어릴 적엔 여행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우리나라 절이란 절, 산이란 산, 유명하다는 대부분의 관광지는 모두 다녀본 것 같다. 스무살이 되어 내가 사는 방식을 결정하는 자유도가 확 높아진 이후로는, 거의 쉴새없이 돌아다녔다. 내일로 기차여행, 농촌 봉사활동, 전공수업을 위한 등산, 일본 홋카이도 숲 실습, 러시아 학술발표, 인도네시아 생태학습. 일반인들이 닿을 수 없는 숲 구석구석까지 가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글로벌 노마드가 된건 대학교 3학년, 뉴질랜드로 교환학생을 떠났을 때다.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집 떠나와 첫 남의 나라 생활. 늘 비슷한 사람 속에 섞여 살다가, 처음으로 이방인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게 되었다. 진한 파란색, 연청색, 밝은 파란색, 채도가 좀 다른 파란색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보다가 빨강, 초록, 검정 듣도 보도 못한 색깔들이 훅훅, 나의 시선 속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매일매일이 놀라움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기숙사 문화, 대학강의 방식,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 음식, 명절, 친구, 연애… 생각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처음엔 너무 생소해서 재밌었고, 나중에는 익숙함을 찾아 편안해졌다.


한 해 대학 다녀보니, 다른 나라 교육은 또 어떨지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받은 교육은 대체로 지루했다. 학교 공부가 재미있었던 마지막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방학숙제로 했던 구름연구였을까. 구름을 보고 내일 날씨를 예측하는 방법을 열심히 독학해서, 관측도 해보고 보고서도 썼는데, 푹 빠져서 공부했던 아련한 기억이다. 아무튼, 보통 유학은 미국으로 많이 가는데, 미국 다녀온 교수님들을 보아하니 미국 교육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무턱대고 유럽! 뉴질랜드는 영국식 교육이 많이 묻어나는데, 실용적이고 흥미로운 컨텐츠가 많았다. 대체로 미국 친구들보다는 유럽 친구들이 생각이 깊고, "잘 교육받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고. 그렇게 졸업 후 1년동안 연구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을 준비했고, 어쩌다 덴마크에서 석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약 8년 정도 전세계를 떠돌아 다녔다. 학기 중간중간 유럽 여행도 많이 다녔고, 코스타리카에서 석사논문을 쓰고, 일본에서 인턴연구원으로 일하고. 덴마크에 돌아가 취준을 하다, 운좋게 한 국제기구에서 데이터 컨설턴트로 일하게 되었다. 그것도 재택으로! 세상을 누비며 일할 생각에 들떠있던 그때, 코로나가 터졌다. 세상을 누비진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전국을 누비며 여행하고 일하고. 노마드 생활을 만끽했다.


노마드가 갑자기 발이 묶인건, 갑자기 한국 회사에 취직하면서부터다. 컨설턴트로 계약했던 4년 프로젝트가 종료되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던 무렵. 어떤 길을 갈까 고민하다, 가벼운 마음에 시작했던 알바가 직업이 되어버린거다. 환경을 전공하고 기후위기를 진심 걱정하는 나는, 기업의 탄소중립을 돕는 ESG컨설턴트로 일하게 되었다. 수평적이고 진취적인 기업문화, 열정적인 동료들, 최신 지식을 계속해서 습득해야하는 챌린지, 문제해결형 과제들, 다 너무 좋았다. 좀 바빴을 뿐.


1년 반, 정신없이 일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지쳐있더라. 너도, 나도, 쟤도 다같이 빠듯한 마감선을 긋고 스스로를, 서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이러다 체하겠어', 어느 출근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하루하루 소중한 것들을 두 눈에 꾹꾹 눌러담고, 하루의 생각들을 꼭꼭 소화하고 싶은데, 세상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 어지러웠다. 그만하면 되지, 싶다가도, 돈 한 푼 더 모으는 게 아쉬워지기도 하고, 노후 걱정도 되고. 그렇게 어느새 <어린왕자>가 어느 별에서 만난,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바쁘게 오억일백육십이만개의 별을 세는 사업가 아저씨처럼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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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대로 생각할 것인가, 생각대로 살 것인가


맹목적으로 바쁘게 살다보면,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힘이 사라진다. 일하는데 온 힘을 옴팡 다 써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몸을 택시에 실어다가 집에 오면, 뇌를 끄고 유튜브를 본다. 그렇게 하루가, 한 해가 금방 가버렸다.


생각할 기력이 없을 때, 흘러가는 일상에 생각도 맡기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애써 탐색하지 않게 된다. 일하고 있으니까 나는 원래 이 일을 하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해야만 할 것 같다고. 유튜브로 시간을 보내니까 나는 그렇게 시간보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린다. 어느새 일 잘하는 바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파도에 휩쓸리듯 살다보니, 유유히 노를 저어 나아가고 싶었다. 그냥 조금 천천히, 내가 정하는 방향으로, 내가 편안한 속도로. 내 생각대로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 세상을 좀 더 탐색해보고 싶었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다시 노마드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 두었다. 퇴사를 결심한 날 출근길이 그리 달콤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너무 들떠 두둥실 떠올라버릴 것 같았다. 회사와 아름다운 작별을 하고 - 하지만 지금은 회사 자문컨설턴트로 여전히 함께 일하고 있다 -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중이다. 생각이 이끄는 대로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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