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끊으니 감각되는 것들
바쁘게 살던 컨설턴트 시절, 한시간 반 통근시간은 1분 1초 촘촘하게 흘러갔다.
구독하고 있는 경제 시사 뉴스레터와 밤새 쌓인 이메일을 밀린 숙제하듯 읽어 없애고, BBC 뉴스 팟캐스트를 듣고, 스페인어 단어를 외우고, 중간중간 카톡을 보내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들을 검색하고.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 콩나물1이 되는 구간에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멀뚱멀뚱 주변 사람들은 뭐하나 쳐다보고, 지하철 광고엔 무슨 얘기를 하나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환승하는 구간에 바쁜척 이메일을 열심히 훑어보다가, 팟캐스트를 듣다가, 뭔가를 검색하다가. 그럼 어느새 회사 앞에 도착해있다.
노마드의 삶을 선택한 후 더이상 통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수시로 업무메신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인터넷에서 좀 멀어지고 싶어 데이터를 적게 쓰는 요금제로 바꿨다. 2GB. 평소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지도 않고, 데이터를 많이 쓰지 않는 편이라 이정도면 한달 쓰겠지 했는데. 웬걸, 이틀만에 동이 났다.
데이터를 끊으니 갑자기 시간이 느려진다. 지하철에 멀뚱히 앉아 무얼 해야할지. 갈곳을 잃은 액정 위 두 엄지는 괜히 어플 몇개를 더 열어보다, 무릎 위 다소곳이 내려앉는다. 순간 멍하다. 자연스레 시선이 반대편 창문으로 간다. 핸드폰 화면에 집중한 사람들이 보이고, 그 옆에 프린트물을 넘기며 공부하는 사람. 그 너머로 비내리는 풍경이 보인다.
귀의 감각이 살아난다. 지하철 안내방송, 문 여닫는 소리, 공조기 돌아가는 소리. 넘치는 소리들에, 물 속에 풍덩 빠진 기분이다. 느닷없이 소리 여행이 시작된다. 한때 출근길이었던 익숙한 그 길에, 소리에 집중해본다. 환승 개찰구 소리, 걷는 소리, 뛰는 소리, 바닥 걸레질 소리, 할머니 사탕까는 소리, 내 발소리. 익숙한 그 길이 갑자기 낯선 여행지가 된다.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