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산다는 건

익숙한 공간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by 아무말

최근 마음에 쏙 박힌 문장이 있다.


여행하듯 살기, 살듯 여행하기


춘천의 한 작은 예술&스테이 공간인 춘천일기스테이의 카피문구다.

pata caliente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 스페인어로, 불난 발바닥. 코스타리카에 살 적 홈스테이 할아버지가 지어준 별명이다 - 숨쉬듯 자연스레 여행하다보니,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 익숙한 장소도 여행하듯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은 날이 너무 좋아서 밖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 갈까, 아니, 소중한 건 옆에 있다지. 동네 산책을 떠나본다.


9월의 5시는 산책하기 딱 좋다. 더운 시간은 지났지만 온 세상에 불 켜진듯 환한 시간. 어린 나뭇잎 하나, 작은 개미 한마리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비춰주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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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이 닿는대로 루트를 정해본다. 파친코 구슬마냥 툭툭 길을 나아간다. 이 동네에서 10년이 넘게 살았지만 한번도 걸어보지 않은 작은 오솔길, 놀이터 뒷길, 단지 사이길, 상가 뒷길이 눈에 들어온다.


흘러흘러 어느새 옆단지 한가운데 다다른다. 지척이나 절대 갈 일 없는 공간이다.


계곡에서나 느낄법한 차고 습한 공기가 문득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설마, 했는데 우거진 나무 아래 물이 흐른다. 나무 사이로 햇볕이 삐져나오는 곳으로 홀린듯 걸어들어간다. 작은 언덕길, 기와 양식의 돌담을 따라 오른다. 단지 깊숙한 곳. 가구를 옮기는지 드르륵 소리, 밥짓는 냄새, 이따금씩 들리는 풀벌레 소리. 오래된 작은 상가, 자그마한 세탁소에서 몽글몽글 새어나오는 고요한 다림질 소리. 익숙한 다리미 스팀 냄새. 순간여행하듯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다림질 하는 엄마를 가만히 바라본다.


아파트 정 없다 했는데 오늘 마주한 풍경은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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