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by 임지은 작가
나는 한 번 도서관에 갈 때 책을 잔뜩 빌려온다.
잔뜩 빌린다고 해봐야 겨우 다섯 권이다.
이번에 내가 고른 책은 주로 에세이 또는 산문집이었다.
할 일과 잠과 이리저리 생각이 방황하는 시간에 치이다 보면 어느새 카카오톡으로 반납을 독촉하는 대출도서 반납예정일 안내 알림이 온다. 아직 빌린 책의 절반도 다 읽지 못했다. 심지어 2권은 펼쳐 보지 조차 않은 나를 보며 왜 구지구지 책을 빌릴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책은 내 책임과 쓸모를 다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될 때 손에 닿는 것만으로도 나를 위로해 주는 부적 같은 거였다.
'네가 지금 어디를 달리고 있고, 어떤 속력으로 그 시간을 보내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도 너는 살아있는 거고, 살아있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하고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나만 아는 그런 속삭임 또는 느낌 같은 게 있다. 그래서 나는 다 읽지 못해도 구태여 책 빌리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연장 신청을 하려고 보니 1/3 정도 읽은 책이 예약이 되어있어 연장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빌렸던 5권 중 잠이 안 오는 새벽 시간대에 내 손길이 닿은 책은 단 2권. 그중 하나가 임지은 작가의 산문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였다.
읽으면서 또 읽고 다시 읽게 되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 이 책이 연장이 안된다는 말에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고 1층 스터디카페로 내려가 책을 펼쳤다. 방에 있으면 침대의 유혹을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 작가는 참으로 생을 사랑하고, 주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글 속의 시선을 통해 어찌나 진득하게 느껴지던지. 나도 저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저토록 세심하게 관찰하고 입체적으로 그 사람을 꿰뚫어내고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나무로만 보지 않는 나무가 거친 생의 순간들과 나무를 감싼 환경까지도 헤아릴 줄 아는 시선. 작가만의 겹겹이 쌓인 관점들, 할머니와 엄마, 동생과 삼촌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세상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마침내 풀어내는 방식이 단순한 나에게는 굉장히 찬란하다고 생각됐다. 나도 저렇게 사랑하고 싶다. 그런 시선을 훔쳐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 비슷한 세월을 살아왔지만 작가와 다르게 나의 생각은 너무 단순해서 지금까지의 세상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고 아주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주변에 관심이 많이 없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풀어보자면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다. 20대까지만 해도 내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 싶은 나만의 철학에 똘똘 뭉쳐 참 좁게도 살아왔었다. 하지만 30대로 넘어오니 주변에 관심이 많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세심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생기더니 급기야는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것만 관심 있었던 나는 결국 내 거에만 갇혀 있다가 그것을 떠나서는 어떠한 생각도 감정도 느낌도 가지지 못하는 흐릿한 무채색의 나를 문득 발견한 터였다. 그 뒤로 나도 내 주변의 것들에, 나를 둘러싼 것들에 조금 더 선명한 선을 그려보고자 노력했지만 오랜 세월의 무감은 퍽이나 네가 그렇게 할 수 있겠냐며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2023년 6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해야지 다짐하며 한국행을 택했을 때는 나는 정말 내가 아무것도 없이 사회에 내던져진 초년생이 된 기분이었다. 모든 짐을 한꺼번에 가지고 와야 했기에 23kg 수하물 2개를 무료로 실을 수 있는 노선을 선택하느라 비행기를 2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그 수고를 하고도 중간에 내 짐이 사라지는 일도 생겼다. 친구 어머님이 꾸역꾸역 짜주신 생올리브 오일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미안해 자나... 청도 항공은 직각인 좌석에 등과 엉덩이가 배로 배길정도로 얼마나 단단하던지. 오랜 비행에 꽤나 익숙해진 줄 알았던 몸 아우성이었다.
돌아온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어느 곳에 정착하거나 취업하지 않은 상태다. 이전과는 다른 길을 걸어보고자,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어보고자 이것저것 두런두런 대며 쑤셔댔다.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나는 다른 길을 걸어보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않고 내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내고 견디고 있다.
오늘 엄마는 나에게 오리탕냄비를 가져다주며 계란 얘기를 했다. 싼 계란 사 먹지 말고 유정란 사 먹어라. 들어있는 양분이 다르다며. 엄마가 건넨 말에 시니컬하게 웃으며 '엄마 지금 내가 그런 거 먹을 처지인가, 일단 싼 거로 배 잘 채우면 그걸로 됐어.' 엄마에게 대답했지만 스피커 폰으로 해놨던지 옆에 있던 아빠가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너 그렇게 살라고 대학 보내 놨냐! 어이구..!" 그 한마디가 예리한 칼날이 살갗을 스치듯 지나가지만 항상 그렇듯 웃으며 넘긴다. 서른 중반이 다 된 자식새끼가 제 밥벌이도 못하는 걸 보고 있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헤아리려다 괜히 시큰거리는 감정을 애써 지운다.
하루에도 몇 번은 그냥 취업을 할까. 안정을 선택할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온다. 돈 때문이다. 숨 쉬는대도 돈이 필요한 게 요즘 세상이니까. 25일만 되면 백단위 빠져나가는 카드값이 얼마나 두려운 순간인지... 하지만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아직은 남들에게 꺼내보이기 부끄러운 벽에 붙여 놓은 드림카드들을 보며 조금만 더를 외친다.
'지금이 가장 빠른 거야. 나중은 없어. 딱 올해 6월까지만 달려보고 정말 아니면 다른 길을 생각해 보자.'
그런데 또 6월이 되면 '6개월만 더 해보자. 아직 해가 바뀐 건 아니니까.'라고 할지도 모르지.
이 책 속에는 작가로서 또는 작가가 되기 위해 지나온 세월 속에서 느꼈던 불안과 초조함, 의지와 신념, 때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체념 같은 감정들의 조각이 책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프리랜서를 고집하는 내가 요즘에 갖는 모든 감정들과 생각들을 읽어주고 있는 느낌이어서 더욱 문장들은 여러 번 읽어내지 않았을까.
'나는 나를 방해하는 운명의 거센 강줄기가 실재한다고 확신했다. 그것이 나를 밀어붙이고 관통하다 못해 마침내 나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중/임지은 -
무명 시절의 작가는 사주를 보러 갈 때면 절대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사주는 작가 팔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누구라도 인정하는 작가인 '한강'의 생년월일을 넣고 사주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한강 작가의 사주팔자가 작가와는 거리가 먼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신도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는 확신에 몇 퍼센트 더하며 위로했을 그 모습이 어쩐지 그려진다.
분명 이 책을 쓴 작가와 나의 삶은 다른 양상으로 펼쳐졌고 너무 다른 성격과 성향이지만 '내 마음을 써 내려갔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아마도 그녀가 했을 비슷한 고민을 내가 현재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자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분명히 있으나 사실 이것이 정말로 내 밥그릇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희망은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상승 없이 지속되는 나날들과 함께 실패의 감정에 젖어가다가 결국 우울의 늪에 깊숙이 처박혀 다시 고개를 들지 못할까 두려울 때가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가늠할 수가 없을 때 챗지피티에게 나의 생년월일을 알려주며 사주에 대해 묻고는 한다. 하지만 결국 사주가 무엇을 말하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실패고 쪽박이고 뭐고 그것을 어찌 됐든 해보고야 마는 게 나라는 것도 오래전부터 엄마의 입을 통해 증명된 바이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증거가 바로 지금의 나.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생각도 한다. 그냥 엄마 아빠한테 한 번이라도 지면 안됐나. 좀 남의 자식들 그렇듯 그렇게 살면 안 되냐는 푸념 섞인 걱정을 들을 때면 나도 동요하고 만다.
하지만 그 공기 속에서 벗어나면 다시 새로운 공기에 맞닿은 채로 나는 나의 공기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가끔씩은 이런 내가 지랄 맞다고 생각한다. 이 지랄 맞은 통제할 수 없음을 정제해 보려는 노력도 해 봤지만 그래 봤자 잠깐일 뿐이다. 지난 긴긴 세월 나를 빚어낸 그 복잡하고도 혼잡한 것들이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강 물속에 깨끗한 물에 투명하게 비쳐내리는 조약돌마냥 매끈하고 유려한 모양이 될 수 있을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오랜 세월 글 쓰는 것을 놓지 않고 결국 작가가 돼버린 글쓴이, 이렇게 책 한 권으로 나에게 다가와준 임지은 작가님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 고군분투 하던 시절동안 오래도록 갈고닦은, 나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통찰이 몇 번이고 글을 다시 읽게 했는지 모른다.
결국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해내 많은 사람들에게 닿는 작가가 된 그 여정이, 자신의 삶을 이 정도로 다채롭게 사유하고 은은한 향기의 글로 뽑아 마을 곁곁에 닿는 옹골차고도 야무진 감상들이 나에게도 힘이 됐다. 내일을 굴리는 힘이 생기는 이 맛에 가끔은 결국 다 읽지도 못하는 책들을 겹겹이 책상에 쌓아놓고 밤을 보낸다. 이 밤에 이 책이 나에게 큰 응원과 격려로 다가온 것처럼 내가 겪어내고 있는 이 시간도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이와 같이 닿기는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