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멀어지는 연습

나의 부정성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환경 세팅

by 김린

아침이 되면 의미 없는 하루가 흘러갈까 두렵고, 저녁이 되면 하루가 이렇게 가버렸나 싶어 후회되는 일상의 반복.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지금 무기력하다는 것은 안다.

누군가는 그동안 너무 열심히 달려서 더 이상 에너지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예전의 나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들이 널려있지만 도무지 우선순위를 잡지 못하고 널브러진 채 헛걸음만 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지속되고 있다. 무엇 한 가지를 꾸준히 하지를 못한다. 그런 나를 향한 자책이 시작된다.



무기력이든 우울감이든 이것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더욱 이 기간이 길어져 더는 빠져나올 길이 없어지기 전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이 순간 가장 효과적일 수밖에 없는 방법은 '빠질 수 없는 스케줄 만들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그 스케줄을 끝낸 후엔 반드시 손에 쥐어지는 물성의 결과 또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아침 10시 목공예와 원예수업을 신청했다. 그러지 않으면 눈을 뜨면 도무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나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에.



목공예가 끝나는 낮 12시는 해가 가장 높이 떠있으면서도 내 손에 내가 원하는 투박한 느낌의 나무색을 낸 목공예작품이 들려 있다. 해 아래 나뭇결이 그득히 살아있는 갈색의 물건들을 보면 괜히 나만의 취향이 생긴 기분이다. 도심 한가운데 있지만 우드페인트에 젖은 나무 위에 빈티지 느낌을 내기 위해 문지른 모서리의 투박한 사포의 흔적과 불규칙한 나뭇결에 기분이 조금씩 우상향 한다.



원예수업이 끝나는 낮 12시는 평소엔 내 일상에 없는 향기가 있다. 덕분에 팔자에 없는 식집사가 되어버렸다. 원예수업이 끝나는 날이 더해져 갈수록 방에는 초록한 생기가 하나하나 새 식구가 되어버렸다. 첫째 주가 끝났을 때는 잎이 얼룩덜룩한 라임빛 홍콩야자가, 둘째 주가 지나니 프렌치 라벤더가 책상 왼쪽을 나란히 차지했고, 셋째 주가 마무리됐을 때는 스킨답서스가 곰돌이 모양을 한 이끼에 뿌리를 감싼 채 침대 맡을 차지 했다.



낮시간에는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 말고 홍콩이와 라벤더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 잠깐의 시간, 왠지 나만의 대 낮의 낭만이 생긴 기분에 조금씩 거무스름한 공기만 가득했던 공간이 환기되는 것만 같았다. 그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고.



이 초록이들을 바라보면 낮 12시, 내 손으로 만든 것들을 직접 들고 밝은 바깥을 걷는 기분이 떠올라 답답한 커튼이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시간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자기 계발 다양한 강의를 모조리 신청했다. 이렇게 하루가 끝났을 때, '오늘은 이것을 해냈다.'라는 느낌이 강제적으로 필요했다. 항상 나를 더욱 부정적으로 몰고 가는 생각들은 '네가 한 게 뭐 있어?', '결국 아무것도 마치지 못했어?'였다.



하루하루 작은 성공을 만들라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의 조언들에도 내 꿈에 닿기 위한 다리가 될 그 작은 성공을 스스로 마음먹고 스스로 만들지 못해 일단은 전혀 상관없는 것들로라도 시작했다. 이렇게 3월이 끝나가고 새로운 4월이 다가오기 전에 이 무기력과 멀어지기 위해 닦아놓은 계단들이 무사히 나를 새로운 공기로 데려다 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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