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을 피어낸 일요일의 카페와 목소리

봄은 신기한 계절이야.

by 김린

수많은 고민?

끝나지 않는 번뇌?

끝마치지 못한 고민들.

매듭짓고 싶지만 지을 수 없는 관계들.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문제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버리고 싶지만 버리지 못하면서 이 많은 것들을 담고 있으려니 가끔씩 이 무게에 눌려 헛웃음만 내고 있는 나를 본다. 그 모습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화병 나기 딱 좋은 성격이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착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살다 보니 그 착하다는 표현이 마냥 좋은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네가 너무 착해서 그래."



이 말은 사실 마땅히 따져할 것도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포기의 얼굴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게 만만하게 굴 기회를 주고, 내게 무례함을 서슴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주는 완곡한 표현의 형태다.



모두에게 착하고 정의롭고 싶은 사람이었던 나는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바보같이.



얼마나 이런 순간이 되풀이 됐던가. 나는 그만 오랫동안 나의 기억을 함께 했던 도시의 공기를 떠나기로 선택했다. 새로운 공기에 둘러 쌓이면 새로운 마음과 조금은 더 단단한 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연한 희망을 품고.



우연한 기회에 운 좋게 참여하게 된 정부지원사업은 사업지를 로컬에 내야만 하는 조건이 걸려있었고, 나는 바로 옆 소도시를 선택했다. 나와 얼기설기 설켜있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한 여정을 그렇게 시작했다. 살면서 생각해 보지 않은 '창업'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하고서 나는 덜컥 무지한 생애 첫 사업자를 내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뒷일은 생각조차 안 한 선택이었다.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길이 맞는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나라는 사람을 정의를 채울 수 있는 일인가?



이제는 너무 식상해져 버린 질문. 한국에 돌아온 후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2023년 6월 22일. 해외에서 하던 일을 모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날이다. 2년이 꼭 채워지기 전에 뭐라도 손에 쥐어지는 결과를 만들고 싶지만 아직 그런 것이 없음에 마음 저변에 깔린 불안감이 뇌의 후각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로컬이라는 소도시를 찾아 들어오면서, 정부지원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바뀌어져 갔다. 정말 이상한 사람도 만났다. 내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회복하게 해 주는 사람들.



내가 100%의 신의를 줘도 나의 200%를 빼앗고 상처까지 내는 사람들을 겪다 보니 나는 점점 말 수가 줄어들고, 사람을 관찰할 뿐 먼저 다가가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를 단념하게 됐다.



그 누구와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 이상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덜컥 창업이라는 세계에 준비운동도 없이 뛰어든 내가 혹여 놔버릴까, 고민만 가득한 채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네가 잘됐으면 좋겠다.'라는 살가운 말과 함께 불편하지 않게 살피는 눈들이 있었다.



최근 무기력이라는 웃지 못할 기운과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도 정확히 모른 채 그렇게 조용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침대에서 나가기 싫은 지속되는 날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은 지속되는 밤들.

그러던 중 머나먼 곡성에서 전화가 왔다. 지원사업 캠프 이후 몇 번의 안면이 있던 그분은 안부를 묻더니, 갑자기 나의 사업장에 가보고 싶다며 그렇게 바로 다음날을 약속 잡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사업장에 방문한 그분은 요모조모 살피더니 그냥 듣기만 한 것보다는 훨씬 준비가 많이 된 것 같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렇게 내가 머무는 소도시의 유명하다는 카페로 이동해 타깃고객부터 마케팅의 실무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어떻게 이런 주제가 생각지도 못하게, 정말 갑자기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냐는 부분이다.



평소의 사념부터 나의 과거에서부터 이어지는 현재의 고민들, 이 사업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들과 나름의 이행철학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 못하는 이야기 들이었다.



20대 때부터 안정적인 궤도를 타고 탄탄한 경력을 쌓아 소위 말하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 버린 나의 친구들에게 나는 '걱정거리'였다. 갑자기 해외에서 돌아오더니 백수가 됐다. 이것저것 해본다더니 그 열심은 3개월이 맥시멈이었다. 반복되는 자발적 멈춤이 '나를 정의하는 무언가'가 되어 나를 괴롭게 하기 시작했다.



'나는 뭐 하나 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인가?'

'끈기가 없는 걸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 걸까?'

'내가 잘하는 걸 찾을 수 있을까?'

'거둔 거 없이 세월만 보내는 것 같아...'



이런 와중에 틈틈이 진행하고 있던 지원사업은 약하게나마 나의 시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누구도 내가 이 지원사업을 통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이루기에는 아주 미비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정말 나를 채울 수 있는 어떤 것을 찾고 싶었고 크고 작은 것들을 배우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결제하는 강의료는 점점 많아지고, 수입은 없었다. 잔고가 줄어들기만 하니 이런 생산성 없는 나를 자조하기 시작했다. 아주 못되고 악랄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나를 내가 상처 입히며 그래도 살아야 한다며 조금씩은 나아가야 한다며 억지로 무거운 발을 들어 올렸다. 항상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인간관계, 확신이 없는 현재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 대해 오랫동안 알아온 지인도 아닌 사람에게 그냥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을 내가 만난 적이 있던가? 사람에 대해서, 사업에 대해서,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 나보다 오래전부터, 나보다 더한 고민과 상황을 겪었던 시절을 가진 사람이었다. 카페에는 오후 3시 30분에 왔는데 시간은 어느덧 8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냥 표면적인, 위로하기 위한 '지금 잘 가고 있다.'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하고 있음을 믿고 응원해 주는 모습.



친구들과 비교하며 착잡해하는 내 모습에 대해서 조차도 '남들보다 더 빨리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는 거다.', '그렇게 깊어지는 거다.' 라며 지금 잘하고 있다는 메시지.



이 긴 대화를 마치고 나니 내일은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라는 게 참 뭔지. 나의 무기력의 끝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꽤나 먼 거리인데 여기까지 올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어느 자리에서건 조용히 있는 나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냥 내성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단단하고 깊어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한 번쯤 꼭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끌릴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나를 단단한 사람이라고, 깊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얼마나 기껍던지. 그 말을 다 믿지는 못할지라도 그 말이 위로가 되었나 보다.



그날을 업고 다가온 월요일은 조금은 다른 월요일. 온전하지 못한 도전과, 삐걱대며 움직이는 나의 수레바퀴. 이렇게 내일은 조금 더 기름칠을 해볼까 보다. 비워야 채워진다고 했던가? 오래되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비워낼 때 나를 빛나게 할 새로운 것들이 새 얼굴을 하고 다가올 거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자를 것들을 자르는 연습도 해가면서 말이다.



봄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공간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긴 겨울의 시간 안에서도 새봄을 맞이하는 준비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동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정말 그런 공간이 되려면 내가 먼저 이 봄을 느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선물 같았던' 하루를 이 공간에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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