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선배, 또는 멋진 상사

하지만 이 프레임이 오히려 나를 망치는 것이라면

by 김린

“너만 덥니? 남들도 다 더운데 말 안 하는 거야. 꼭 그걸 말하면서 티 좀 내지 마라.”



아. 생각하는 것도 다르시구나. 말 한마디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하는 말씀인 거야.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나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모든 생각하는 것 말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 모조리 흡수하고 싶었다.



“얘, A는 정말 생각이 없다.”

“얘, B는 정말 특이하다. 어떻게 생각해도 저렇게 하니?”

“얘, C는 말이 너무 많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

“얘, 저 애는 필시 어릴 때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못 받았을 거야.”



많은 사람을 경험한 보스는 사람 보는 눈 만큼은 정말 뛰어났다. 사람 보는 안목이 정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보스였다. 보스에게는 무난하게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최고지 싶었다. 항상 생각 있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평범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속없고 가벼운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것이 싫어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말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옆에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있으니 나도 누군가의 입에서 저렇게 오르내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쟤는 성격이 이래, 부모님이 이렇게 대했을 거야. 그러니까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원래의 나는 사실 마이웨이적인 성격이 강한 캐릭터였다. 고집도 황소고집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변 사람의 조언을 귓등으로 듣는 못된 습관이 있다.



고2 무렵 디자이너라는 꿈에 젖어 미대에 가려고 아득바득 우기며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없는 형편에 미술학원을 근 1년 반을 다녔었다. 돈도 많이 깨 먹었다. 그때 입시에 실패하며 그쪽으로는 눈도 안 돌리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쟤는 맞든 틀리든 일단 자기가 해봐야 해.’라고 하셨을 정도니까.



어릴 적 아빠의 차는 뒤쪽에 짐을 실을 수 있는 포터라고 불리는 작은 트럭이었다. 불법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할머니 댁에 갈 때 아빠는 나와 동생들이 트럭 뒤에 타고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어릴 적 만화 영화를 보고서 주인공을 흉내 내려고 달리는 트럭에서 풀밭으로 뛰어내린 적도 있을 만큼 과감하고 용감했다.



무슨 용기였는지 트럭에서 점프하면 주인공들처럼 공중제비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떨어져도 하나도 아플 것 같지 않았지만, 머리가 안 깨진 것이 다행이었다. 그리 빠르지 않은 트럭 뒤편에서 여름에 빼곡하게 자라난 풀밭으로 떨어져 큰 부상은 면했던 것이 다행이랄까.



한참 유행했던 ‘천사 소녀 네티’를 보고 담을 타고 올라가 지붕에 올라가려다 지붕에서 굴러떨어져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렸던 적도 있었다. 원숭이도 아닌데 큰 나무만 있으면 나무를 타고 올라가 두 다리를 나뭇가지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생각도 못 할 일이다. 개성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나는 특이한 것들을 좋아했다. 특이하고 싶었고, 눈에 띄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말 특이하고, 정말 똑똑하고,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머리로 깨달았다. 나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그저 이상한 사람밖에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터득했다. 이렇게 점점 가면을 쓰는 날이 많아지며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나는 점점 우울해지고, 남의 눈치만 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 의견 하나를 내는 것도 내 아이디어 자체보다도 어떤 사람의 평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잘못된 초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아닌, 그냥 의지 없는 무생물처럼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었다.



질질질….

이런 삶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재빨리 나의 상황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면 관성에 의해 해왔던 방식에 머무르는 쪽을 택하게 된다. 나만의 새로운 초점이 필요했다.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남보다 나에게 더 귀 기울이는 어린 시절의 내가 필요했다.



분홍색 및 남색 간소한 패션 책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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