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일 같을까봐

무거운 하루의 시작이 내게 준 교훈

by 김린

아침 6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눈을 뜬다. 요 몇 달째 이 아침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감각 기관을 통해 느껴지면서부터 시작되는 단 한 가지의 생각.



‘오늘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즐겁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한 번도 살면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절망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더 자고 싶어서, 또는 몸이 아파서, 피곤해서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그냥 시작되는 하루가 무서운 느낌이다. 어제와 같은 하루가 반복될까봐 무섭다.



그래서 일어나기 싫다. 하루가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침대를 나가는 순간이 두렵다. 한국이 너무 그립다. 내 집이 너무 그립다. 고요히 지낼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너무 그립다.



‘아… 나 중증인가….’

그 느낌이 하루 이틀간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이 너무 괴롭다.



아침을 시작해야만 하는 하루 일과의 시작. 침대에 누운 채로 다리만 움직여 바닥으로 내려놓는다. 그렇게 일어나 세면대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언제 끝나지?’



한창 중동에서 내 시간과 뼈를 갈아가며 열심히 일했을 때 나의 아침 모습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에게 있어서 고통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왔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인간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인간관계가 엄청 좋지도 않았지만 무난한 편이었다.



사귀는 친구들이 보통은 무난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서로 선을 지키는 배려 탓인지, 내 친구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인간관계의 규칙을 보이지 않게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인간관계의 엄청난 갈등을 겪어본 너무 무난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았던 것이다. 오히려 모나고 둥글지 못한 것은 나였는데 넓디 넓은 포용력을 가진 나의 지인들은 이런 모습까지도 포용해 줬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보스는 너무 어려웠다. 80년대생. 자기 분야에서 확실히 인정받는 나의 보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예의의 선이 달랐다. 일의 영역을 구분 짓는 사고 자체가 달랐다. 어느 부분까지를 예의라고 해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일이 많고 몸이 지쳐도 공감을 얻으며 나눌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나의 못된 기분들, 부정적인 생각들도 순환이 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의견 하나 기분 하나 표출하지 못하는 분위기와 심리적 압박감이 오히려 병을 키웠다. 그리고 결국은 하루를 시작하는 고귀하고도 싱그러워야할 아침이 두렵다는 생각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생각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나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인간관계는 내 인생에서 걸림돌이 한 번도 된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인간관계를 고려 대상에 두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일생일대의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결국 그곳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그럴만 했네라는 말을 한다. 오히려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나도 점차 어느정도의 인간의 이성을 가지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나의 잘못 또는 그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맞춰 가려하면 맞춰갈 수 있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그만큼을 생각할 여유도 체력도 남지 않았던 것일 뿐.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나인데 한국으로 돌아오니 당장 할일이 없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나에게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다줬다.



'나이는 점점 먹고 있었지만 나는 많이 어렸고, 좁았고, 눈앞의 현실을 마주하느라 항상 조급하기만 했구나.'


'그것이 오히려 나의 감정을 벼랑으로 내몰았고 힘들게 했구나.'


'나는 많이 넓어져야겠구나.'





처음엔 한국에 왔을 때 더이상 나를 힘들게 하는 하루가 나를 기다리지 않고 있음에 감사했고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하루를 무엇인가 새로운 것으로 채워갈 생각에 설레인다. 아침이 무거우면 하루도 덩달아 무거워진다.


하루 시작의 기분이, 아침을 시작하는 내 생각의 문장들이 하루를 완성하는 소중한 열쇠와 같다. 그런데 내가 아침을 여는 문장이 나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고 나의 하루의 시작점을 어그러뜨린다면 과감하게 내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새 아침을 살고 있는 나는 새로운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하루들이 모여서 나에게 소중한 한달을, 일년을 그리고 삶을 선물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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