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계속] 오늘의 이야기

by Trenza Impact

※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기업, 기관, 상황은 순전히 가상의 것이며, 실존하는 인물이나 단체와는 일체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소소한 변화들

새벽 공기가 차갑게 폐를 파고들 때마다, 나는 한 달 전의 나를 떠올린다.

그때만 해도 3km는 꿈 같은 거리였다.

첫 러닝에서 1km도 채 못 뛰고 헐떡거리며 벤치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러닝화 끈을 묶고 스트레칭을 마치면, 몸이 자연스럽게 달릴 준비를 한다.

첫 1km는 몸을 깨우는 시간이고, 2km째부터는 리듬이 생긴다.

3km 지점에 다다르면 오히려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처음 다짐했던 격일 러닝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이 한계다.

야근이 있는 날엔 불가능하고, 비가 오면 핑계가 되고, 때로는 그냥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러닝을 하지 않는 날이 사흘 넘게 지나면 몸이 근질거린다.

뭔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는 것 같은 찜찜함.


한강공원을 뛰며 마주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생겼다.

새벽 6시에 나오는 아저씨는 매일 같은 코스를 뛴다.

우리는 이제 눈인사를 나눈다.

저녁 7시쯤 만나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나처럼 피곤한 표정이다.

가끔 커플이 함께 뛰는 모습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괜히 민망하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애초 목표는 여전히 요원하다.

러닝 동호회 같은 걸 알아봤지만, 막상 가입하려니 부담스럽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언젠가는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지금처럼 혼자 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함께 뛸 사람이 있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러닝 기록을 스마트워치로 측정하기 시작한 것도 변화 중 하나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간과 거리만 확인했는데, 이제는 페이스, 심박수, 칼로리까지 신경 쓴다.

지난주보다 10초라도 빨라지면 기분이 좋고, 심박수가 너무 높게 나오면 페이스를 조절한다.

이런 작은 데이터들이 나에게 성취감을 준다.


회사에서 후배가 "선배, 요즘 뭐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러닝 시작했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후배의 감탄 어린 반응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했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는 안도감.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꾸준함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단순히 운동 중독에 빠진 건 아닐까?

러닝을 통해 내가 정말 원하는 걸 얻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시간을 때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면,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뛰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적어도 후회는 없다.


꾸준함의 발견

러닝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가 생각보다 꾸준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전에는 내 성격을 평가할 때 '평범한', '무난한' 같은 단어를 썼는데, 이제는 '끈기 있는'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회사 일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나는 특별히 뛰어난 성과를 내지도, 상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맡은 일은 반드시 마무리한다.

아무리 지겨운 업무라도, 아무리 마감이 촉박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야근을 하더라도, 주말에 나와서라도 끝을 본다.


동료들이 나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급할 때 부탁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이런 평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천재도 필요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민이 생겼다.

이런 꾸준함이 과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

러닝은 분명 좋은 변화다.

체력이 좋아졌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수면의 질도 전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연애? 더 나은 직장? 경제적 여유? 아니면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

생각할수록 답이 명확하지 않다.

러닝이라는 새로운 습관을 통해 뭔가 달라지기를 기대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완전히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 달 전의 나보다는 나아졌다.

몸이 가벼워졌고, 작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내 안에 있던 꾸준함이라는 자질을 재발견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본다.


다만 앞으로는 방향을 좀 더 명확하게 설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뛰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이를 통해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방법을 찾아야겠다.

러닝 동호회 가입도 그런 시도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벽들

월급날이 되면 통장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월급 320만 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270만 원 정도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소득세, 지방소득세... 이런 것들을 떼고 나면 생각보다 많이 줄어든다.

270만 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울에서 혼자 살기에는 빠듯하다.

월세 70만 원은 어쩔 수 없는 고정비용이다.


그나마 보증금 1000만 원에 이 정도 월세면 괜찮은 편이라고 부동산에서 말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럽다.

생활비로 100만 원을 잡았지만, 실제로는 더 들어간다.

식비만 해도 하루 15000원씩 잡으면 한 달에 45만 원이다.

집에서 해먹으려고 해도 재료비, 가스비 등을 생각하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교통비, 통신비, 각종 구독 서비스까지 더하면 100만 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용돈 50만 원도 빠듯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 번 마시면 5만 원은 기본이다.

옷 한 벌 사면 10만 원, 미용실 가면 3만 원, 영화 한 번 보면 만 오천 원...

이런 것들을 다 합치면 50만 원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그래서 실제로 저축할 수 있는 돈은 3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다.

좋게 잡아서 매달 50만 원씩 모은다면 1년에 600만 원, 10년이면 6000만 원이다.

집을 사려면 최소 2억은 있어야 한다는데, 이 속도로는 30년도 넘게 걸린다.

그것도 물가 상승이나 이자를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집을 살 수 있을까?", "결혼은 언제 할 수 있을까?",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 주식이나 코인 해볼까?" 친구 중 하나가 제안했다.

나도 한때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손을 대지 않았다. 잃을 돈도 없을뿐더러, 그런 것에 신경 쓸 정신적 여유도 없다.

회사 일만 해도 스트레스인데, 주식 차트까지 들여다보며 일희일비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적금과 예금을 병행하고 있다.

수익률은 낮지만 안전하다.

원금 손실의 위험이 없고, 계획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언제까지 월급쟁이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안전함과 모험 사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안전한 길만 선택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도 하고, 부업도 하고, 창업도 하면서 돈을 불려가는데, 나는 그저 월급쟁이로만 살아가고 있다.

대학교 동기 중에 프리랜서로 전향한 친구가 있다.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지금은 나보다 훨씬 많이 번다고 한다.

물론 불안정하긴 하지만,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수입도 더 좋다고 했다.

"너도 해보지 그래?"라고 제안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다.


또 다른 친구는 부모님 도움을 받아 오피스텔에 투자했다.

전세를 끼고 월세를 받아서 매달 2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다.

나도 관심이 있지만, 초기 자본이 없다.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렵고,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회사 선배는 퇴근 후 택시를 운전한다.

주말에는 거의 하루 종일 나간다고 한다.

"피곤하긴 하지만, 한 달에 80만 원 정도는 더 벌 수 있어"라고 말했다.

나도 부업을 생각해봤지만, 체력적으로 버틸 자신이 없다.

러닝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부업까지 하면 몸이 견딜까?


이런 선택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나는 정말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큰 성공보다는 큰 실패를 피하고 싶어 한다.

이게 나의 성향이고, 어쩌면 장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도 완전히 후회하지는 않는다.

안전한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다.

빚도 없고, 건강도 괜찮고, 직장도 안정적이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다만 앞으로는 조금 더 모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러닝을 시작한 것도 작은 모험이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삶의 일부가 됐다.

이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봐야겠다.


작은 성취감들

러닝을 시작한 이후로 작은 변화들이 누적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조금 더 쉬워졌고, 하루 종일 피로감이 덜하다.

계단을 오를 때도 숨이 덜 찬다.

이런 변화들은 수치로 측정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성취감이 생겼다.

3km를 완주했을 때의 기분, 지난번보다 빠른 페이스로 뛸 수 있었을 때의 만족감, 일주일에 세 번 러닝을 완수했을 때의 뿌듯함... 이런 감정들이 일상에 활력을 준다.


회사에서도 변화가 있다.

체력이 좋아지니까 오후에 졸지 않는다.

야근을 해도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

동료들도 "요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고 말한다.

실제로 업무 효율도 올라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다.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에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부터 가졌다면, 이제는 '일단 시작해보자'는 마음이 든다.


물론 아직 큰 변화는 아니다.

여전히 혼자 살고, 연애도 하지 않고, 월급쟁이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러닝 동호회에 가입할 수도 있고, 더 멀리 뛸 수도 있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도 있다.

이런 작은 성취감들이 모여서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러닝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지는 못했지만, 변화의 실마리는 제공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꾸준히, 조금씩, 내 속도대로 계속해갈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최선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강공원을 뛰며 든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모습,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작은 변화들이 쌓여가는 과정...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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