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계속] 작은 성취들

by Trenza Impact

※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기업, 기관, 상황은 순전히 가상의 것이며, 실존하는 인물이나 단체와는 일체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일상의 무게

편의점 자동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리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러닝을 마친 직후라 더욱 상쾌하게 느껴졌다.

등에 흐르던 땀이 순식간에 마르는 느낌이었다.

냉장고 앞에 서서 차가운 에너지음료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바닥에 전해지는 차가운 감촉이 좋았다.

파란색 캔에 맺힌 물방울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카운터로 걸어가면서 습관적으로 가격을 확인했다. 2,500원.

평소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금액인데, 오늘따라 왜 이런 계산이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걸까?

"2,500원입니다."

카드를 건네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마신 아메리카노가 4,500원이었다.

점심에 사 먹은 편의점 도시락이 7,000원.

그리고 지금 이 음료수까지.

벌써 14,000원이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만 원을 훌쩍 넘었다.


편의점을 나서면서 나도 모르게 오늘 하루 지출을 계산하고 있었다.

출근할 때 탄 지하철비 1,370원, 퇴근할 때도 1,370원.

이것만 더해도 16,740원이다.

이런 식으로 정확히 계산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돈에 민감해진 걸까?


걸어가면서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서도 가격을 확인하게 되고, 편의점에서 과자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도 했다.

예전엔 이런 소소한 지출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집 앞 골목에 들어서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지만,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항상 가계부를 쓰셨다.

어릴 때 어머니가 작은 수첩에 뭔가를 적는 모습을 자주 봤는데,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아침에 사용한 세제 냄새와 은은한 방향제 향이 섞인 내 집만의 냄새.

러닝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으면서 하루의 피로가 몰려왔다.


샤워를 마치고 평소보다 일찍 침대에 앉았다.

보통은 침대에 눕자마자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켜는데, 오늘은 왠지 다른 걸 하고 싶었다.

핸드폰을 들어 가계부 앱을 켰다.

사실 이 앱을 설치한 지는 꽤 됐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카드사 앱과 연동해서 자동으로 가계부가 작성되는 기능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로딩이 끝나고 지난달 카드 사용 내역이 화면에 떠올랐다.

숫자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카페 4,500원', '편의점 3,200원', '지하철 1,370원', '점심 8,000원', '서점 15,000원', '치킨집 18,000원', '영화 14,000원'... 하나하나는 작은 금액이지만,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내역들을 보니 현실감이 밀려왔다.


특히 카페 지출이 많았다.

거의 매일 커피를 사 마신 것 같았다.

4,500원씩 한 달이면... 빠르게 계산해보니 13만 원이 넘었다.

커피만으로 13만 원이라니.

이 돈이면 새 운동화 한 켤레는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편의점 지출도 만만치 않았다.

출근길에 사는 물, 점심 대용 삼각김밥, 야식으로 먹는 컵라면과 과자들.

하나하나는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모이니까 상당한 금액이었다.


나는 정말 돈 관리를 못 하고 있는 건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같은 회사 동기들도 나처럼 이렇게 쓰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지만 돈 얘기는 친한 사이라도 쉽게 물어보기 어려운 주제였다.


어른이라면 이런 걸 더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조언을 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부끄러웠다.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나이인데,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 하고 있다는 게 창피했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마음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인색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주 친구 성민이와 치킨집에 갔던 저녁이 떠올랐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회사 얘기, 연애 얘기, 어릴 때 추억 얘기를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성민이는 최근에 새로 사귄 여자친구 얘기를 했고, 나는 러닝을 시작한 얘기를 했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앉아 있으면서 정말 즐거웠다.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데. 18,000원이라는 돈으로 그런 즐거운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오히려 싼 것 아닐까?


혼자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액션 영화였는데, 극장의 큰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팝콘을 먹으면서 주인공의 모험에 함께 빠져드는 그 순간의 몰입감과 카타르시스를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서점에서 충동적으로 산 에세이집도 생각났다.

표지가 예뻐서 집어 들었다가, 몇 페이지 읽어보니 너무 좋아서 바로 샀던 책이었다.

집에 와서 밤늦게까지 읽으면서 작가의 문체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 책에서 받은 감동과 생각할 거리들도 15,000원의 가치가 있었다.

퇴근길에 마신 따뜻한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나서 지친 몸과 마음에 스며드는 커피의 따뜻함과 향긋함.

그 순간만큼은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만약 이런 것들을 모두 포기한다면 삶이 너무 메마르지 않을까?

돈을 아끼려고 모든 즐거움을 차단한다면, 그게 정말 잘 사는 걸까?

효율적일 수는 있겠지만, 행복할 수 있을까?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어스름이 내린 하늘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맞은편 아파트 창문들도 하나씩 불이 켜지면서 각자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들도 나처럼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정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 아끼며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쓸 수도 없다.

어딘가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디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게 혼자 사는 20대의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을 때는 몰랐던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예전엔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러닝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봐야겠다.

뛸 때면 머리가 비워지면서 평소에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발걸음의 리듬에 맞춰 내 마음도 정리되는 느낌이다.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명확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뛰면서 천천히 찾아가면 될 것 같다.


작은 성취들

러닝 앱을 열고 오늘의 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번졌다.

'5km, 29분 52초'. 드디어 30분을 깼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3개월 동안 목표로 삼았던 30분 벽을 드디어 뚫은 것이다.


핸드폰 화면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잘못 측정된 건 아닐까? 하지만 분명했다.

29분 52초. 8초나 빨랐다.

이 8초가 얼마나 소중한지 러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3개월 전을 떠올려보니 믿기지 않았다.

처음 뛰었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1.5km도 제대로 완주하지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중간에 걸어야 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빨리 뛰었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소파에 주저앉아 한참을 헉헉거렸다.

'내가 정말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체력이 이렇게 바닥인 줄 몰랐다.

학창시절에는 축구도 하고 농구도 했는데, 언제 이렇게 체력이 떨어진 걸까?


앱에 저장된 첫 번째 기록을 찾아봤다.

'1.5km, 12분 20초'.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떨까?

아마 믿지 못할 것이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으니까.


두 번째 주의 기록들을 차례대로 봤다.

'1.6km, 11분 45초',

'1.8km, 12분 10초',

'1.4km, 10분 30초'.

거리는 비슷했지만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내 몸이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매번 뛸 때마다 힘들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오늘은 얼마나 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뛰는 중간에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한 달이 지나자 2km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다.

'2.1km, 15분 30초'라는 기록을 봤을 때, 나는 정말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집 앞 공원에서 혼자 '예스!'를 외쳤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때부터 러닝이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매번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게 게임 같았다.

오늘은 조금 더 빨리 뛸 수 있을까?

오늘은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을까?

이런 기대감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들었다.

두 달째에는 3km까지 뛸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비 오는 어느 저녁의 기록이었다.

'3.2km, 22분 15초'.

그날은 정말 뛰기 싫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회사에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 하늘을 보며 '오늘은 러닝 쉬는 날이구나' 생각했다.

집에 와서 넷플릭스나 보고 싶었다.

소파에 누워서 치킨이라도 시켜 먹으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7시가 되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뛰지 않으면 뭔가 하루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미 러닝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민하다가 결국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처음엔 불쾌했다.

젖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러닝화도 더러워질 텐데.


하지만 뛰기 시작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빗방울이 얼굴에 닿는 느낌이 오히려 상쾌했다.

평소보다 시원했고, 숨쉬기도 편했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냄새, 가로등에 반사되는 물웅덩이,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뛰는 것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비 오는 밤거리를 뛰어가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아, 내가 정말 러너가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에 상관없이 뛸 수 있다는 것, 그게 진짜 러너의 모습이 아닐까?


"요즘 밝아 보여요."

어제 회사에서 옆자리 선영 선배가 한 말이었다.

복사기 앞에서 마주쳤을 때, 평소보다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선영 선배는 원래 말이 많지 않은 편인데, 먼저 말을 걸어온 게 의외였다.

"그래요? 뭔가 달라 보여요?"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예전엔 항상 좀 지쳐 보였는데, 요즘은 활기차 보여요. 피부도 좋아 보이고요. 운동이라도 시작하셨어요?"


그 순간 러닝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왠지 쑥스러워서 그냥 애매하게 웃고 넘어갔다.

"아, 그냥 일찍 자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기뻤다.

내 변화가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인다니!


사실 최근에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같은 팀 후배 진우는 "형, 요즘 뭔가 젊어 보여요"라고 했고, 동네 슈퍼 아주머니는 "요즘 건강해 보이네"라고 했다.

처음엔 단순한 인사치레인 줄 알았는데, 여러 명이 비슷한 얘기를 하니까 정말 뭔가 변한 게 맞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선영 선배 말이 맞았다.

얼굴에 핏기가 돌았고, 눈빛도 전보다 또렷해 보였다.

뭔가 건강해 보였다.

피부도 확실히 좋아진 것 같았다.

예전엔 트러블이 자주 났는데, 요즘은 거의 없다.


러닝의 효과일까?

아니면 규칙적인 생활 패턴 때문일까?

이유가 뭐든 기분 좋은 변화였다.

실제로 몸의 변화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침에 일어날 때였다.

예전엔 알람이 울려도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었다.

몸이 찌뿌둥하고, 하루를 시작할 의욕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알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날 수 있게 됐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씻고 나면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됐다는 느낌이 든다.

아침 식사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됐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해도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

어깨와 목이 뻐근한 정도가 확실히 줄었다.

예전엔 오후만 되면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는데, 요즘은 그럴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오후에도 집중력이 유지된다.

예전엔 점심 먹고 나면 졸려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동료들이 "오후에 커피 마시러 갈래요?" 하고 물어봐도 "괜찮아요"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지하철역 계단을 오를 때도 숨이 차지 않는다.

예전엔 4층까지 걸어 올라가면 헉헉거렸는데, 이제는 평상시와 똑같다.

심지어 계단을 두 계단씩 올라가도 괜찮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일상 전체의 질을 높여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음의 변화가 컸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도 예전만큼 짜증이 나지 않았다.

상사가 갑자기 업무를 추가로 주거나, 지하철이 연착돼도 '오늘 저녁에 뛰면서 풀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러닝이 내게는 일종의 해결책이자 위안이 된 것이다.

뭔가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저녁에 뛰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하는 확신이 있다.

실제로 뛰고 나면 웬만한 스트레스는 다 날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었다.

연애는 여전히 막막했다.

러닝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다던 애초 목표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가끔 인스타그램에서 러닝 크루나 동호회 게시물을 본다.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고, 함께 뛰면서 대화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남녀 구분 없이 편안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저런 곳에 가입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히 민폐를 끼치면 어떡하지?', '다들 나보다 훨씬 잘 뛸 텐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받으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특히 실력 차이에 대한 걱정이 컸다.

나는 이제 겨우 5km를 30분 안에 뛸 수 있는 수준인데, 크루에 있는 사람들은 10km, 20km도 거뜬히 뛸 것 같았다.

괜히 발목 잡는 건 아닐까?


결국 핸드폰을 끄고 혼자 뛰러 나가곤 했다.

혼자 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내 페이스에 맞춰 뛸 수 있고, 부담도 없다. 하지만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 뛰면서 대화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29분 52초라는 기록을 보며 문득 깨달은 게 있었다.

적어도 나는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3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몸도, 마음도, 그리고 하루를 보내는 방식도.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어제 밤 가계부를 보며 고민했던 돈 관리 문제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하지만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러닝을 통해 배웠다.

첫날 1.5km도 못 뛰던 내가 오늘 5km를 30분 안에 뛸 수 있게 된 것처럼, 다른 일들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해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러닝을 시작한 이유도 단순했다.

건강해지고 싶었고, 체력을 기르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다.

특히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런 목적들보다 더 중요한 걸 얻었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작지만 분명한 성취를 통해 스스로를 더 믿게 됐다.


러닝화 끈을 풀면서 내일 계획을 세웠다.

5.5km에 도전해볼까?

아니면 같은 거리를 더 빠른 시간에 뛸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하든, 분명한 건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져 있을 거라는 것이다.


문득 3개월 후의 내 모습이 궁금해졌다.

지금보다 더 빨리 뛸 수 있을까? 10km도 뛸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로 러닝 크루에 가입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뛰고 있을까?

그런 미래의 모습들을 상상하니 가슴이 설렜다.

물론 확실한 건 없다.

계속 혼자 뛸 수도 있고,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희망적이었다.


오늘 밤 가계부를 보며 했던 고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답답하고 막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해결될 것이다.

러닝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돈 관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의식하고 노력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오늘 가계부를 확인한 것도 작은 시작이었다.

러닝을 시작할 때처럼 작은 걸음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지금 상상하지 못하는 큰 변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가슴속에서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큰 행복인 것 같았다.


샤워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평소보다 목소리도 경쾌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밝아 보였다.

정말로 달라진 게 맞는 것 같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다음에 전화할 때 러닝 얘기를 해드려야겠다.

아마 놀라실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싫어했던 내가 매일 뛰고 있다니.


그리고 가계부 얘기도 해봐야겠다.

부끄럽긴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고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부모님도 내 나이 때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침대에 누우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러닝으로 시작해서 편의점에서의 작은 깨달음, 가계부 앱을 통한 현실 직시, 그리고 다시 러닝 기록을 보며 느낀 성취감까지.

평범한 하루 같았지만, 돌이켜보니 의미 있는 하루였다.


특히 30분 벽을 깬 것이 가장 기뻤다.

숫자로는 고작 8초 차이지만, 내게는 큰 의미였다.

처음 목표를 세웠을 때 과연 달성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해냈다.

나도 해낼 수 있구나.


핸드폰을 침대 옆 테이블에 놓으면서 마지막으로 러닝 앱을 한 번 더 확인했다.

'5km, 29분 52초'. 여전히 뿌듯했다.

내일은 또 어떤 기록을 만들어낼까?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될 것이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러닝하고, 집에 와서 하루를 정리하는.

그런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3개월 후, 6개월 후, 1년 후의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어떤 모습일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지금보다는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내일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살짝 러닝 얘기를 해볼까?

아직은 쑥스럽지만,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로 러닝 크루에도 가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용기가 나지 않지만, 몇 개월 더 뛰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실력도 늘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이 기다려졌다.

새로운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내일이.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내일이.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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