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출근을 하면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나에게 '먹는 낙'을 빼놓고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 식시시간이 내 인생들의 수많은 시간들 중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신나게 잘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를 주는 행위이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할 때 못 먹으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것이겠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먹방을 보면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겠지. 세상에서 가장 빨리 행복해지는 방법은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른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점심식사에 맛있는 것을 먹을 것이고, 열심히 일을 하면 당연히 배가 고플 것이고,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도 많지만 가장 기다려지는 이유는 점심을 먹는다는 것이 하루에 하는 일 중 가장 빨리 행복을 찾는 일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2. 학교 선생님들은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는다. 급식을 먹으면서 드는 생각은 '나는 퇴직을 할 때까지 급식을 먹겠구나.'이다. 학생들을 대하는 말로 '급식이'라고 한다. 대학교 교내 식당에서 먹는 밥은 학식이고, 회사 구내식당에서 먹는 밥도 중식이 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학교만 유달리 급식이다. 나는 퇴직할 때까지 '급식이'로 살아야 하니 '급식이'를 못 벗어나는 직업이다.
3. 나는 급식을 좋아한다. 집에서는 밥을 직접 해야 하는 주부로서 나의 수고 없이 먹을 수 있는 밥을 사실 다 맛있다. 거의 매끼마다 밥과 국과 반찬이 갖춰진 급식은 대충 배고픔을 때우기 위한 식사가 아니라 '밥심'을 내게 해주는 4천 원대의(교사들은 급식비를 내는 한 끼에 4천 몇백 원이다. 4천 몇백 원 정도라는 정도로 알고 있다. 나는 백 원 단위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학교마다 다르다.) 가성비가 갑인 식사이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자
4. 교사는 점심시간도 학생 생활지도를 하는 시간이므로 업무시간이다. 사실상 점심시간에 제일 많은 학생들을 만난다. 위클래스라는 학교 상담실은 점심시간 행사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여러 명씩 찾아와 나와 이야기를 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가만히 앉아 있거나, 공부를 하거나(간혹), 친구들과 놀거나, 여러 가지 볼일을 보러 온다. 내가 하루 가장 많은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점심시간에 위클래스는 활기가 넘치는 곳이 된다. 나는 상담실이 조용하고 정적인 공간이기보다는 활기가 넘치고 언제든지 가서 편히 놀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올 수 있도록 점심시간에 행사(홍보행사나 사과데이 같은 행사)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보드게임을 하도록 비치해놓기도 한다. 또 아이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나는 10대들이랑 노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이다. 그래서 어쩐지 졸업생들은 나에게 말투가 고등학생 말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나의 커리어라고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해도 괜찮을 것 같다.
5. 점심시간은 밥을 먹는 것 외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모자란 잠도 잘 수 있고, 친구들과 꽤 오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 선생님들은 가끔 점심시간에 각종 위원회를 열기도 한다. 회의를 하는 시간이다. 선생님들은 각자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점심시간뿐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위원회가 자주 열리는데, 가끔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면 소화가 잘 안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밥을 먹고 나면 그래도 사람은 조금 긍정적이 될 수 있다. 힘든 일이 있을수록 더 좋은 음식을 잘 먹고 힘을 내면 된다.
6. 나는 4교시에 상담이 없으면 4교시에 점심을 먹고, 4교시에 상담이 있으면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을 때는 선생님들은 학생들 뒤에 줄을 서지 않고 새치기를 한다.( 정해진 규칙은 아니지만 선생님에 대한 예우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렸을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그렇다고 나도 똑같이 학생들과 줄을 서서 먹지는 않는다. 사람이란 편안한 것에 익숙해지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先生(선생)이라는 말을 한자로 풀이하면 먼저 태어났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어른에 대한 예의로 선생님이니까 학생들보다 먼저 밥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코로나 전에는 선생님들 배식을 따로 하기 도 했지만 지금은 학생들하고 같이 배식을 받는 것이 내가 새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약간 불편하다. 학생들이 내가 새치기하는 것을 선생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7. 예전에는 급식 메뉴가 적힌 가정통신문을 고이 간직하며 매일매일 일별로 잘라서 일력처럼 스템플러로 찍은 다음 한 장씩 뜯어내며 오늘의 메뉴를 확인하는 학생들도 많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는 날을 기다리며 메뉴를 외우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급식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고, 학교 학생회 SNS에서 매일 급식 메뉴를 알려주기도(우리 학교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다. 나는 SNS로 자주 확인하는 편이다. 급식 메뉴는 중요한 사항이다. 급식 메뉴에 따라서 학교 가고 싶은 날이 생길 정도이다. 내가 사는 도교육청은 한 달에 한번 채식 데이도 한다. 기후위기 등을 위한 채식의 날(다채롭데이)은 그래도 학생들의 영양을 생각하여 페스코(육류만 제외한 채식)식으로 나와서 달걀, 유제품, 생선 등 풍부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나는 채식의 날을 좋아한다.
8. 나는 내가 밥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담교사로서 학생들도 밥을 먹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점심시간에 학생들에게 "밥 먹었나?"가 나의 인사이다. 요즘 학생들은 밥을 잘 안 먹는다. 이유도 그렇게 다양한다. 예전에는 급식을 안 먹는 친구가 있다면 "급식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요."가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급식을 먹을 친구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마스크를 벗기 싫어서 안 먹는 학생, 다이어트한다고 안 먹는 학생, 급식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급식을 안 먹는 학생, 이유도 천차만별이다. 나는 밥을 안 먹는 학생에게는 폭풍 잔소리를 한다. 밥을 좀 먹으라고 한다. 사람의 몸은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먹지 않으면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에너지가 없으면 사람이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굶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너무 무기력해서 하루 종일 바닥에 붙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급식 메뉴가 좀 맘에 안 들어도 밥을 잘 먹었으면 좋겠다.
9. 나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을 때 일부러 늦게 가서 거의 끝에 밥을 먹기도 한다. 그러면 혼자 조용히 빈 테이블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그래서 1학년들은 내가 학교에서 직장 내 왕따를 당하는 줄 알고 오해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싫어서 급식을 먹지 않는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말이다. "
10. 나는 점심시간이 좋다. 학교에서 있는 시간 중에 점심시간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