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나 스스로 미루기 대왕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일을 할 때 일의 기한을 정하고 시작한다. 하지만 그 기한은 계속 연기시킬 수 있다. '내일 해도 될 것 같아. 내일 하자!', '다음 주에 해도 되는 일이잖아. 다음 주에 하면 되겠네.' 나의 일에 대한 고민의 한 70%는 이렇게 미루기로 끝이 난다. 매일 아침 다이어리에 오늘 할 일을 적어보지만, 항상 반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 내가 항상 오늘의 나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내일 해도 되겠는데'라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
2. 미루기의 기본은 '지금은 하기 싫어'이다. 결국은 지금 하지 않으면 이 일이 실패로 하거나 포기해야 되는 상황, 더 이상 물러설 때가 없는 상황까지 끌고 간 다음 그 일을 시작한다. 왜 지금 하기 싫을까?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아마도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몸은 더 편하게 하고 드라마를 보거나 노는 것일 것이다. 주변에 유혹이 너무 많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일하는 것보다 놀거나 쉬는 게 더 좋다. 현재의 쾌락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미룬다. 그러다 보면 항상 급박하게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미친 듯이 하게 되어 있다. 일의 우선순위는 그렇다. 중요도를 따지지 않고, 그냥 급박한 일부터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미루다 미루다 보면 그 일이 하기 싫고 하고 싶고를 판단할 수 없게 된다. 하기 싫어도 무조건 해야 되는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3. 미루기는 정말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마음 한편에서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를 수백 번씩 외친다. 그 정성이면 지금 당장 하면 되지만 지금은 하기가 싫은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마음 한편에 약간의 웅덩이를 파고 거기서 찰랑이는 물이 항상 보이지만 언젠가는 해치워야 하는 그런 일을 보고 있으면서 찝찝해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4. 이 미루기의 시초를 생각해보면 국민학교(나는 국민학교 졸업자다.)를 다니던 그 시절부터였지 않을까? 어릴 때는 숙제를 미루고, 공부해야 되는 것도 미루고, 방청소도 미루고, 어른이 되어서는 일을 미루고 집안일도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삶은 미루기의 연속이 되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왜 하기 싫어지는 걸까일까? 시험공부를 할 때 100분 토론이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고, 고전소설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할 공부가 많았지만 그 재미에 빠져버리면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미루기의 새싹이었던 나는 지금도 미루기를 꾸준히 실천 중이다. 미루기는 어떻게 보면 하기 싫은 일의 회피 기제라고 생각한다. 미루기를 해서 할 일들을 빚처럼 쌓아두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부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미래의 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떤 일을 결국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에게 손실로 피해를 끼친다. 나는 자주 미래에 항상 빚을 지고 살아간다. 최대한 미래에 빚을 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너무 믿고 있다.
5. 미루기의 가장 좋은 합리화는 데드라인의 법칙이다. 신문사 기자들이 마감날짜가 임박해 올수록 더 효율성이 올라간다고 한다. 작가들이나 기자들 사이에는 마감일자가 글을 마무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록 마감 날짜는 일을 마무리하게 한다. 나도 만약 그 데드라인,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날짜가 오게 되면 정말 초 집중력을 발휘해서 할 수 있다. 마음만 찝찝하게 그렇게 노력하려고 해도 다른 일이 눈에 더 잘 들어오기 때문에 잘 안되던 것이 말이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나와 현실적인 나는 항상 대립하고 있다. 이상적인 나는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오늘 할 일을 목록화한 후 오늘도 어떤 계획서를 쓰고, 내일 출장 준비도 하고, 누구누구를 상담하고 깔끔하게 쉬는 시간에 일지를 적어야지. 그리고는 칼퇴를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이 일은 출근을 할 때만 해도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나는 그런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출근하자마자 그렇게 쉬워 보였던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나는 매일 나에게 속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겪어봤으면서도 매일 아침은 미루지 않는 하루가 쉬워 보인다.
7. 게으른 사람은 어떻게 보면 완벽주의 자기 때문이라는 말을 TV에서 들은 적이 있다. 완벽주의자들은 그 일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쉽게 포기하거나 계속 미루고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완벽할 수 없으면 일이 하기 싫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다. 나도 완벽주의자가 아닐까? 잘 생각해보면 정말 완벽하게 잘하고 싶은 마음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미루면서 마음속으로 계획만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이런 위로는 건강하다. 미루는 나를 질책하는 대신에 내가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그래서 미루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합리적인 이유? 때문에는 나는 미루기 대왕이지만 하루하루 어제의 부채를 갚아 나가고 있다.
8. 미루기 대왕이라는 것은 하기 싫은 일만 미루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도 미룰 수 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충동적으로 즉각적으로 할 수 없다. 나는 내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내가 정말 먹고 싶은 것, 내가 정말 사고 싶은 것들도 참을 수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미루면서 산다. 다들 그렇게 버티고 견딘다고 생각하니 사람들이 예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9. 미루기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세상 모든 일이 일장 일단이 있겠지만... 미루기는 습관이다. 미루다가 결국은 포기하거나 해내기는 하지만 가끔 미루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미루고 싶어 진다. 미뤄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당장 하면 내가 너무 부지런해지는 것 같아서 낯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10. 결국 나는 미루기를 좋아한다. 게으른 것 하고는 다르게 미루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