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1. 우리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 어떤 직업이든 딜레마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딜레마의 사전적 의미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다. 그런 딜레마를 만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딜레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에도 안 좋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다. 딜레마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말은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길을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갈림길인데 한쪽은 흙탕길이고 한쪽은 빙판길이다. 그 선택을 못하면 어디든 갈 수 없다. 문제는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최선이 없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나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결과가 나쁘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봤자 본전도 못 건진다는 말이다. 피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결국 선택을 해야 하는 딜레마이다.
2. 가장 흔하게 겪는 딜레마는 상담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담을 하는 것이 학생에게 당장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의존적으로 만들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으며, 약물의 부작용처럼 다른 문제를 낳게 하는 부작용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내담자가 상담을 계속 하기를 원할 때, 나는 상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항상 모든 내담자들을 상담할 때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꼭 상담이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일도 고민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있다. 위클래스(학교 상담실)는 내가 일하는 교실인데, 여기도 청소구역이 배정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청소를 하러 온다. 그런데 나는 청소를 잘 시키지 않는 편이다. 내가 스스로 청소를 하는 편인데, 이 학생들이 청소시간에 와서 놀거나 쉬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일까?(다른 학생들은 각자의 청소구역을 열심히 청소하므로)라는 고민이 있다. 그렇다고 청소를 시키는 것도 불편하다. 청소를 시키는 것이 불편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렇게 별것 아닌것에도 해결책을 찾고 싶다. 고민이 많은것도 타고 난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3. 결국 어떤 결론을 내리고 선택을 하는 데에는 나에게 책임이 따르게 되어 있다. 상담 장면 안에서 딜레마적 상황에서는 나는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인지 몰랐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해야 할 것만 할 때는 이런 딜레마에 빠지지 않았을까? 아니 그때도 그 나름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겠지 사람은 어떤 것을 하더라도 선택을 하게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중국집에 가서도 우리는 짜장면을 먹을 것인지 짬뽕을 먹을 것인지 선택해야 되지 않나...
4. 그렇지만 나의 딜레마를 헤쳐나가는 방법에도 어느 정도의 규칙은 존재한다. 첫째는 지금 당장의 손실보다 조금 더 멀리 봤을 때 조금 더 나은 쪽을 선택하는 편이다. 둘째는 최대한 내담자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자신이나 타인을 헤치는 것이 아니면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하기, 아니면 최소한 학생들의 입장에서 이해 하기이다. 두 번째 방법은 다른 어른들에게 질책을 받을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그 질책을 받는 일조차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첫째, 둘째에 해당되지 않을 때는 최대한 학생에게 피해가 적은 쪽을 선택하기이다. 이런 경우 내가 계산하기는 참 어렵다. 내가 뭐라고 손실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겠는가? 뭐가 좋은지는 사실 알지 못한다. 이건 동전 던지기와 비슷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선택에서 장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5. 나의 직업은 직업 자체가 딜레마이다. 상담을 하는 사람인데 뒤에 교사라는 말을 붙여서 두 가지 역할을 하도록 해놓았다. 상담 윤리에는 내담자와 이중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상담하는 학생들이 매일 밥은 먹고 있는지, 쉬는 시간에 간식으로 뭘 먹는지, 수업시간에 자고 있는지, 선생님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지각을 하는지, 점심시간에 급식은 뭘 먹었는지 실시간으로 알게 된다. 내 눈으로 보고도 알게 되고 내담자의 친구들과도 친하며 담임선생님과도 나는 동료 사이이다.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이 내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이중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있는 위치, 학교에서 상담교사를 하는 것 자체가 딜레마이다. 어쩌겠는가. 그냥 받아들여야지.
6. 그래서 나는 나의 내담자들에게 결국 그들의 엄마와 같은 폭풍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해는 하지만, 공감도 하지만 잔소리도 한다. 간혹 그 잔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다. 이건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하나
7. 나는 매일 근본적인 딜레마에 빠진다. 출근을 하기 싫은데 하고 싶은 딜레마이다. 출근이 하기 싫다. 나도 주말이 좋고 방학이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끼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나.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다. 출근하는 것을 좋아하기로 했다. 출근하는 것을 아무리 좋아하려고 노력해도 항상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겨우 화요일이야."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입 밖으로 나온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다.
8.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라는 책을 쓴 메리 파이퍼는 심리치료를 하면 할수록 사람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는 그 글귀를 읽는 순간 내가 상담하는 사람이라면 그 말을 심장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태도는 나를 아주 전문성 있게 보이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도 점점 학생들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5월의 싱그러운 초록을 좋아하듯이 나는 막 진녹색이 되기 직전의 그 학생들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방학 때나 학교 휴업일에 학생들이 없을 때의 학교의 평화란 학교라는 공간을 편안한 휴양지로 만들어주곤 한다. 정말 학생들이 없는 학교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이런 딜레마...
9. 결국 딜레마 상황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즐기면 된다. 내가 딜레마라고 생각하는 상황은 정말 자주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거의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딜레마는 딜레마라고 생각할 때 딜레마가 된다. 딜레마를 고민하지 않고, 관습대로, 누군가의 답을 베껴서 내면 나는 그만큼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많은 딜레마를 느낀다면 나는 그만큼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경력교사라고 해서 딜레마를 느끼지 않는다면 나는 오히려 반성해야 할 것이다. 당연한 것은 세상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도 나는 고민하고 생각하는 항상 딜레마에 빠져 있는 교사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딜레마에 빠져야 성장할 수 있는 이런 딜. 레.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