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영원한 숙제

by 초코파이

1. 상담교사라서 ~도 잘하겠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여기에서 ~이란 보통 엄마, 아내와 같은 역할이 많다. 나의 직업 때문에 열 가지 중에 한두 가지의 유리한 점이 있겠지만 집에서의 나와 직업인으로서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집에서는 상담을 하는 사람처럼 말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고 항상 나의 주간이 개입되며 나의 본성이 더 적나라게 드러난다. 나는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협박도 하고, 체벌도 하고, 고성도 지르고 등짝도 때리는 무시무시한 엄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그런 본성을 가진 사람인데, 상담을 하는 것으로 월급을 받는 직업인이다. 직업과 나의 성격과는 관계가 없다. 그래서 나의 직업이 나의 생활에 특히 나의 다른 역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좋은 상담 선생님이 곧 좋은 엄마, 좋은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좋은 상담 선생님이 뭔지는 잘 몰라도...


2. 학교에서도 나의 직업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교사인데, 상담하는 교사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말을 많이 하지만 나는 듣는 것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다른 선생님들은 사정이 생겨서 (예를 들어서 코로나에 걸리면) 학교에 일정기간 오지 못하게 되면, 다른 선생님들이 대신해서 수업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나에게 사정이 생기게 되면 아무도 대신해서 상담을 해주지는 않는다. 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상담을 며칠 안 한다고 해서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고 십수 년 전에는 상담교사 없이도 학교는 잘 돌아갔다. 내가 학교에서 오랫동안 없으면 누군가가 나를 대체하겠지만 며칠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몇 명의 아이들은 서운해하겠지만... 아직도 나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인지 대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내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자조를 해보자. 이가 없으면 임플란트나 틀니를 끼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잇몸으로 씹어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자.

3. 결혼하기 전 여러 번의 소개팅에서 상대편 남자에게 "역시 상담 샘이라서 그런지 제가 오늘 말을 많이 하네요." 또는 "저도 언제 한번 상담해주세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상대방은 모른다. 이런 말은 마치 '당신이 공대생이니까 우리 집에 고장 난 냉장고 좀 수리해주세요'라는 말과 비슷하다는 것을... 상대방은 나에의 호감을 얻기 위한 칭찬을 했을 수도 있고, 다음 만남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수작이었다면 늦었지만 고맙다.)이었을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런 말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소개팅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나는 소개팅에 나가서 까지 모르는 사람에게 상담을 하는 그런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내담자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남자 친구로 적절한 사람을 만나러 간 것이다. 단지 그들의 플라세보 효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담교사라서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한 것이 아니고, 내가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말을 많이 안 하니까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한 것뿐이다. 난 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친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 목이 쉴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말을 많이 안 한다는 것은 함께 있는 사람이 불편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4. "상담교사가 왜 그래" 이런 말도 들었다.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상담교사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시급을 주길 바란다. 최선을 다해보겠다.


5. 나는 상담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집에서 엄마로서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밖에 자잘한 사회적 활동을 위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나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가끔 이러한 정체성들의 충돌이 오기도 한다. 그럼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주 정체성이 달라지겠지만 나는 나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정체성이 합쳐진 것이 곧 나로서의 정체성이 되겠지만 어떤 한 정체성만 강요받는다면 그건 스트레스이다. 나에게는 어쩌면 수백 가지의 정체성이 있고, 이것들은 항상 자신이 주 정체성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큰 정체성이 몇 개 있고 나머지는 잔잔바리겠지만 이것들은 계속해서 자신이 대장이 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서열 1위와 2위의 싸움만으로도 피곤한데, 아랫것들도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려고 한다. 나는 이들을 진정시켜야 하고, 서열을 정리해줘야 하고, 이들이 사이좋게 잘 지내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6.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사실 주변 사람들이 "넌 어떤 음식을 좋아해?" "넌 뭘 좋아해?"이런 질문에 바로 답하기가 어렵다. 나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한 질문이다. 또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선생님은 진짜 열정적인 것 같아요."라든지, "진짜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라고 나에 대해서 말할 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 사람이 정말 내가 맞는가 싶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그려놓은 나에 나를 맞춰 넣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다. 다른 사람이 그려놓은 나에게 나를 맞춘다면 그것도 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7.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상담한다. 학생들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정체성 혼란을 겪는 학생을 상담하는 사람도 아직 정체성 혼란 중이다. 불혹의 나이인 나도 아직 정체성 혼란 중인데, 에릭슨은 왜 청소년기 핵심과제를 자아정체성 확립이라고 말했을까?


8. 내가 누군지 안다면 나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나는 내가 예측 가능한 행동만 할 것이다. 내가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 미래 또한 예측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9. 페르소나란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썼다고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한다고 한다. 이런 페르소나를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본성을 감추기 위한 사회적인 가면으로 설명한다. 집에서는 늘어진 티를 입고 게으르게 바닥을 쓸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밖에 나가면 깔끔하고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 집에서는 분노조절 장애처럼 가족들에게 화만 내는 가장이라도 밖에서는 온화한 직장상사, 집에서는 사춘기 반항 만땅인 상전일지라도 학교에서는 자기일 척척 알아서 하는 모범생... 자신의 본성을 감추기 위해서 사회적인 가면을 쓰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자신의 본성을 감추는 것은 건강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낸다면 사회적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가면을 쓰지 않고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면 그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채워질 수 없다. 그래서 그 페르소나는 그 상황에 대한 정체성에 맞게 쓰고 벗을 수 있어야 한다.


10. "너의 정체가 뭐야?" 이렇게 물었을 때 "나의 정체에 대해서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내 정체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서 2박 3일 정도 소요될 예정인데, 혹시 그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줄 의향이 있다면 제가 한번 답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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