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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Sep 17. 2024

수학여행

40대에 가는 수학여행

修(닦을 수)

學(배울 학)

旅(나그네 여)

行 (다닐 행)

수학여행: 학생들이 문화 유적지 등에 실제로 가서 직접 보고 배우도록 하기 위해 교사의 인솔로 실시하는 여행 (출처(주)오픈마인드인포테인먼트)



 나는 담임선생님도 아니면서 수학여행에 따라갔다. 버스에 올라타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학생들이 물었다.

"샘은 왜 가요?"

나도 수학여행이 가고 싶으니까.


보통 초6, 중2, 고2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간다. 요즘은 제주도를 많이 가지만, 해외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 학교는 이번에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서울로 가는 이유 중 하나는 학생들이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교 학과 교수님을 만나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는 목적이 컸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본다면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은 수학여행의 목적에 부합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로 수학여행 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도 통영에 살 때 서울 학생들이 통영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수학여행은 어차피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


한 학생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3박 4일 동안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안 들어가는 게 좋은 거지요"


나도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수학여행에 따라가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고 싶다는 나의 의사를 계속 밝혔고, 나의 노력(?)으로 결국 이루어졌다. 


  내가 본 요즘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의 특징은 차에서 각자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나 영상을 귀에 꽂고 있다. 그래서 차 안은 조용하다. 우리 때는 카세트 플레이어나 CD플레이어, MP3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학여행을 위해 준비한 노래 목록을 챙겨서 기사님께 전달하고 떼창을 했었는데, 요즘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그리고 우리 때도 그랬겠지만 수학여행을 가도 만나는 사람이 학교 친구 아니면 선생님인데, 아무도 안 쳐다보는데, 아무도 관심 없는데... 아마 나의 예측으로는 사진을 찍기 위함(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여학생 중 반 이상이 새 옷을 사서 입었는데 배꼽이 보이거나, 등이 보이거나, 속옷이 비치거나, 짧은 스커트를 입었다. 커플인 학생들은 커플티와 시밀러룩을 입기도 했다. 화장도 최선을 다한 풀 메이크업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아니고는 절대 할 일 없는 착장으로 나타났다. 누가 봐도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 복장'이 따로 있는가 싶었다.  남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앞에 가니 티가 많이 났다. 나이는 2~4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날 텐데, 고등학생들의 사복은 촌스러운 티를 벗어날 수가 없는가 보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야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발견할 수 있는가 보다. 병아리도 아니고 닭도 아닌 촌스럽고 어중간한 사춘기. 40대가 되어서 보니까 기이하고 신기하다. 


나의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야기를 하자면 할 말이 많다. 

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강원도 설악산으로 갔다. 4월이었는데, 눈발이 날렸다. 그때 강원도에 큰 산불이 나서 진화된 시기였다. 지나가면서 강원도의 큰 산불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은 산을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고생이던 시절은 산이 너무 싫었다. 설악산은 너무 높게 느껴졌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너무 힘들었고, 산중턱에서 그 당시에 3천 원(그때 당시 엄청 바가지였다.)하는 사발면을 먹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산에 올라갈 때는 입이 댓 발로 나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려도 수학여행은 밤에 모든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상당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이놈의 쒜끼! 니까지 이러나?! 미쳤나!' 정도의 선생님 반응과 범생인 줄 알았는데 나름 알고 반항도 하는 학생이라는 멋있는 이미지를 얻고 싶다는 큰 꿈을 꾸었다.(아 너무 큰 꿈이었다.) 나의 그런 로망을 성취하기 위해 아빠의 협조를 구했고, 흔쾌히 동조해 주셨다. 마트에 같이 가서 아빠랑 술을 사고, 술을 술이 아닌 것으로 위장시키며 얼마나 신났었는지 모른다. 이 나이 때는 선생님께 많은 신망을 받던 내가 수학여행(수학여행에서 하는 일탈은 너무나 쉽게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기에) 중에 뭔가(?) 걸리고, 선생님께 배신감을 안겨드리고, 그게 신나서 까르르까르르 웃고, 혼나서 토끼뜀으로 설악산을 올라갔다 오라 해도 너무나 신날것 같은 그런 기분으로 수학여행을 준비했다.


수학여행 숙소에 들어가서 기대하고 고대하던 선생님들의 소지품 검사가 이루어졌다. 나와 방친구 5~6명이 함께 여기저기 숨기고, 보이는데도 숨겨놓고, 진짜 모르게도 숨겨 놓고, 위장도 열심히 하며 선생님들의 검사를 기다렸다. 다른 방에서 술이 엄청나게 나왔다. 애들이 어떻게 짐 속에 그 많은 술을 숨겨 왔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몇 박스가 나왔을 것이다.(참고로 여자고등학교) 심장도 콩닥콩닥 거리고 너무 기대도 되었다. 다른 방에서 선생님들의 소통 치는 소리와 아이들 비명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우리 방 쪽으로 오고 있었다. 친구들과 이불을 펴놓고 서로 키득 거리며 기다렸다. 그 와중에도 소심한 친구들은 '우짜지? 우짜지?' 했고, 그 소심한 친구들 나름 대범했던 나는 얼마나 설레었던 순간이었는지...


그런데 선생님들이 우리 방은 그냥 지나간다. 왜? 왜요? 왜 그냥 지나가요? 왜 검사 안 해요?

우리 술 가지고 왔는데... 우리 방은 검사 안 해요?


아마 지금 생각엔 선생님들도 소지품 검사로 너무 지쳤고, 우리 방의 구성원을 보면서 얘들은 술을 가지고 와도 봐주자. 이때 아니면 언제 마셔보겠나. 이런 심정으로 우리 방을 패스 한건 아닐까... 생각한다. 


수학여행에서 비행청소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반항아로 찍힐 기회를 잃어버린 나와 우리 방의 친구들은 너무나 허탈한 마음에 일찍 잠들었다. 그래도 결국 사 온 술이니, 아무도 관심도 없는 술로 마지막날 술판을 벌였는데, 가지고 간 팩소주는(그때 소주는 처음 먹어봤다.) 너무나 맛이 없어서 선물용으로 산 달달한 산머루주(거의 도수가 없는 주스였다.)를 뜯어서 섞어 마셨다. 하지만 뭔가 두근두근 걸릴까 봐 걱정하며 마셔야 재미가 있는데, 우리 방에 같이 있던 친구들 대부분이 술이 처음이라서 술주정이나 꼬장도 부리지 못하고, 약간 취기가 오르자 다들 겁을 먹고 "빨리 자자."라고 말하며 아무 추억거리도 못 남기고 잠들었다. 처음 마셔본 술은 그렇게 아무 재미도 없이 맛만 없는 그런 술이었다.


나름 대범했었는데, 소심한 평소 모습을 탈피할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 아무도 몰라주니 그냥 끝이 나버렸다.

나의 한 번밖에 없는 수학여행을 망쳐버린 선생님들은 다들 퇴직하셨겠지.


우리 학교 학생들은 내가 못한 스릴과 관심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2학년 학년 부장님이 학생들에게 안전교육을 하시면서 수학여행에 술을 가지고 오는 것은 90년대 감성이라며, 촌스럽게 놀지 않기를 당부하셨고, 담임선생님들도 철저히 교육을 하셨다.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이들이 방에서 뭘 했는지 초췌해 보인다. 첫날에는 많은 아이들이 조식을 먹으러 내려왔는데, 이틀, 삼일차에는 점점 조식 먹는 학생들이 줄었다. 학생들은 방에서 신나게 놀았거나(3인 1실 아니면 2인 1실이다.) 축구를 봤다고 말했다.


 '했다더라 통신'이 들리지만 모르는 척하겠다.


내가 교사가 된 입장에서 간 수학여행에서는 선생님들이 많이 보인다. 나 같은 아마도 모범생들도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일탈행동을 계획하는 것이 수학여행이다. 얼마나 사건과 사고가 많을지, 얼마나 긴장되고, 힘든 여행인지 예측할 수 있다. 특히 담임선생님들은 하루종일 사건 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불안과 학생들의 민원(호텔에 수건이 없어요. 물이 없어요. 너무 더워요. 왜 여기서 이렇게 오래 기다리나요? 그냥 숙소로 가면 안 돼요? 목말라 죽겠어요. 너무 재미없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머리, 어깨, 배, 무릎, 발) 아파요. 저는 차에 있으면 안 돼요? 밥 먹기 싫어요. 밀쿠폰을 차에 두고 내렸어요. 등등 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발한 민원이 오백삼십일곱가지 정도 된다. )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3박 4일의 날이 갈수록 선생님들도 초췌해진다. 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수학여행은 인솔교사에게 여행(旅行)이 아니라 고행(苦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같이 물색없이 학생들과 같이 즐거워하는 교사도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즐거운 수학여행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혈기 왕성한 아이들과 노쇄해 가는 선생님들의 여행은 그렇게 무사히 끝이 났다. 

학생들에게는 즐거운 여행과 추억이 되었기를 바란다. 

선생님들에게는 숙제 같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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