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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 Jan 23. 2024

쓰레기통 같은 방

출입금지 구역

  아마 많은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자녀의 방을 보면 스트레스를 가득 받을 것이다. 청소를 해라고 하루에 수십 번 말해도 안 되고, 청소를 대신해 주면 자기 물건을 못 찾겠다고 난리를 칠 수도 있다. 입고 벗은 옷들과 잡다한 물건들이 방을 뒹굴어 다니며 책상에는 책이 몇 겹으로 쌓여 있다. 물론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학생들도 백명중에 몇 명은 있을 것이다. 만약 사춘기 아이의 방이 돼지우리 같다면 지극하게 정상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어지럽게 방을 더럽히는 것일까? 사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나의 방을 깨끗하게 유지하지 못한다. 청소는 아직도 어렵고, 내 책상은 치워도 일주일 안에 여러 가지 물건으로 여백의 미를 찾을 수가 없다. 나의 자녀들 또한 어릴 때부터 방청소를 잘하지 못했다. 유전일 수도 있지만, 내가 정리정돈의 미숙하다고 해서 아이의 방이 혼란의 상태인 것을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아이에게 방청소를 하라고 하루에 다섯 번 이상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방청소를 하지 못한다. 내 기준에서 방은 무척 더럽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도대체 뭘 치워야 할지 모를 것이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약간은 이해할 수 있다.(이해하는 것과 더러운 방을 보면 열이 받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부모님이 방청소를 하라고 하면 도대체 어디를 청소해야 할지 몰랐다. 왜냐하면 나름 내 기준에서 체계를 갖추고 있는 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이 수십 권씩 겹쳐져 있고, 여기 저기 쓰레기 같은 프린트 물들이 구겨져서 박혀 있어도 나는 귀신같이 내가 필요한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방청소를 하라는 말을 들으면 어디를 어떻게 청소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내 기억에는 내가 아무리 청소를 해라고 해도 청소를 하지 않으니 보다 못한 아빠가 답답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뒷모습으로 내 방 청소를 하고 있었던 장면이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은 왜 방상태(나처럼 어른이 되어도 조금밖에 개선이 안 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참고로 나는 저리를 못하기 때문에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한다.)가 그럴까? 뇌는 뒷부분부터 앞부분으로 발달한다. 뒤통수 쪽에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해서 이마가 있는 전두엽이 가장 나중에 발달한다. 대뇌 피질인 전두엽을 여러 가지 체계적인 사고와 기억력을 주관하고, 여러 가지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들을 조정한다. 또한, 행동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두엽에게 뇌의 CEO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한다. 뇌과학을 공부할 때, 많은 학자들이 쉽게 말하면 청소년기는 이렇게 중요한 전두엽을 리모델링 중이라는 표현을 썼다. 집을 리모델링할 때는 집이 엉망진창이다. 여기저기 자재들도 흩어져 있고, 쓰레기들도 많으며, 가구들도 정리되어 있지 않고, 어떻게 바뀔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공사판이 되어 있다. 그리고 원래의 집을 기능(편하게 쉬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등등)을 전혀 할 수 없다. 


   전두엽도 리모델링 중이라면 전두엽은 제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여러 가지 정보들을 모아서 체계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엉망진창인 자신의 방을 보고도 (체계적인 사고를 한다면 사람이 사는 공간정도로는 청소를 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눈치도 없다. 청소를 안 하는 것은 반항의 의미가 아니다. 그냥 내방은 완벽해 보일 뿐이다. 어차피 내일 입을 옷을 바닥에 펼쳐 놓는 것이며, 어차피 내일 펴야 되는 책을 미리 펴서 올려놓는 것이다. 또 사춘기 때 나는 항상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가장 빨리 뭔가 할 수 있는(옷을 입거나, 공부를 하거나, 놀거나 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 체계를 갖춘 것이 나의 방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를 하는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더 낫다(이것도 전두엽이 리모델링 중이라 체계적이 사고 및 정보에 대한 조정을 못한 탓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청소를 하는 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청소를 하다가 추억의 물건들이 구석에서 나오면 청소를 미루고 그 물건에 대한 탐구를 한다든지,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든지, 추억 속 옛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든지, 그러다가 그 물건을 찾은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 일기도 쓰고, 일기를 쓰다 보면 글을 잘 쓰는 내가 너무 기특해서 에세이라도 한편 써야 했고, 그 에세이가 너무나 멋져 내가 작가로 성공하는 상상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청소년의 나의 청소는 청소에서 시작해서 청소 끝으로 끝나지 못했다.  


  

  나는 나의 과거를 생각하며,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해하는 것과 화를 내는 것과는 정말 별개의 문제 이긴 하지만 10번 중에 1~2번 정도는 우리 아이만 쓰레기통 같은 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옆집 아이의 방도 쓰레기통 같을 것이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고, 나도 그랬는데 잘 컸으니 우리 아이도 잘 컸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 시기가 지나가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부모님들은 사춘기 우리 아이의 방이 쓰레기 통이라면 아이가 너무 더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며, 청소를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의 방이 괜찮아 보이더라도 방에서 쓰레기는 정리하고, 바닥에는 먼지나 머리카락들이 다른 물건들과 뒤엉켜 굴러다니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너무나 방이 더럽다면 부모님들이 너무 많은 걱정을 하신다. 그러니 적당히 더럽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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