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2. 아픈 기간 동안 쓰는 글
독감에 걸렸다. 영락없는 타노스 같은 목소리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나운서라니,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가령 오른쪽 발가락을 두 개쯤 잃은 베컴? 눈썹 왁싱한 송승헌? 정도가 되려나. (하긴 그들의 미모라면 그래도 살아남았겠다.)
헛소리 그만하고!.. 목소리가 안 나오니 생각이 많아진다. 정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내 장점은 무엇일까? 그것 정말 나만의 것일까? 아나운서스러운 목소리를 내고 그럴듯하게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유일한 밥벌이인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그럼 무엇일까? 여러 고민을 하던 끝, 소통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담을 하든 뉴스를 하든, 또 사회를 보든, 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절한 때에 내 이야기를 꺼내며 융화되려 노력한다. 그게 내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근데! 그런 것들을 누가 알아주지? 어떻게 알 수 있게 하지? 사실 그에 대한 답은 없다. 내 주변 가까운 사람들 외엔 내 진짜 모습이나 편한 목소리 등을 알지 못한다. 못하는 건가? 아님 내가 안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내 장점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이렇듯, 중요한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속 남편인 이선균은 아내인 임수정에 실증이 났다. 알아주는 카사노바라는 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는 말 같지도 않은 부탁을 한다. (학창시절 임수정을 무척 좋아했기에 그 내용이 딱히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리고 아내가 카사노바에게 조금씩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선균은 본인이 얼마나 아내를 애틋하게 생각했는지 알게 된다. 진짜 어리석은 내용이지만, 잃으면 비로소 보이는가보다.
이별을 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헤어지고 나니, 내가 얼마나 상대를 사랑했는지 알게 된다. 반대로 헤어져도 아무렇지 않으면, 내가 그만큼 그를 사랑하진 않았는가보다 지레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의 올곧은 기준이 없다면 아주 오래 휘둘릴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아나운서라는 일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닌데..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느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프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아무튼 확실한 건, 내가 가진 진짜 장점이 무엇인가 돌아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가 아니라 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모쪼록 지금도 난 전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