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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an 28. 2024

2024년 1월 26일 식도락 음식 일기

나의 영혼의 음식 -누룽지 숭늉밥

요 며칠 동안 엄청난 한파로 인해

밖으로 나가 햇볕을 못 보고 살았다.

복층구조에, 집 주변으로 사방팔방 막힌 곳이 없는

시골집이라 외풍도 상당히 심해서

2시간 간격으로 30분씩 보일러를 가동해도

아파트와 비교하면 딱 게으르기 좋을 정도의 

집안 온도다.

그러다 보니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은 

뒤로 미루어두고

따뜻한 방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책상에 앉았다가 눈도 따갑고 허리도 아프기 시작하면

핸드폰을 들고 따뜻한 방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뒤따라 오는 것은 잠이다.

곧바로 방바닥과 내 등을 마주대고

딱 잠자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레 잠이 든다.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야 할 몸이

또다시 나른해진다.

기운이 없고, 움직이기 싫고, 무기력해지면서

어깨며 팔다리도 같이 쑤셔댄다.

머리까지 텅 비어 있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의미도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의 몸 상태와는 상관없이

어김없이 다가오는 것은 '밥때'다.


식구들이 조금만 아픈 기색이 보이면

입맛을 잃지 않도록 이것저것 해 먹이지만

정작 내가 아프면 식구들은

'어디 아파?'라는 말 한마디면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돌봄의 사각지대에 빠지는 것이다.


엄마인 나는 아파도

내 입에 넣어야 하는 것들은 내 손으로 해야 한다.

이런 날이면 약간 슬퍼지면서

나도 엄마의 딸로 지낼 때를 떠 올린다.


엄마가 해 주신 음식 중에서

아플 때,

어떤 때는 그 음식이 먹고 싶어 아픈 척한 때도 있었다.

엄마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눙밥 숭늉'이다.


시골에서는

가마솥에 불을 지펴서 밥과 반찬을 했다.

큰 가마솥에는 주로 밥을,

작은 가마솥에는 찌개 등 반찬을 하는 용도다.


내 영혼의 음식, 

엄마표 '누룽지 숭늉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쌀뜨물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마솥에서 식구들의 밥을 다 푼 후

밥을 조금 남겨서 주걱으로 편 후.

은근하게 불을 지피면서 노릇노릇하게 누룽지를 만드셨다.

이때 누룽지가 솥 바닥에서 바짝 일어날 정도가 아니라

가마솥에 누룽지가 붙어있을 정도로 만든 후

받아 놓은 쌀뜨물을 조금 붓고 주걱으로 살살 문지르고,

다시 쌀뜨물을 붓고 주걱으로 누룽지를 살살 문지르기를

반복하면 부드럽고 고소한 누룽지 숭늉밥이 되는 것이다.


큰 둘레상을 펴고

그 위에 숭늉밥이 올라오면

이불속에 누워있던 나는 못 이기는 척 일어났다.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나는 맛있었고, 행복했다.


내 몸이 이유 없이 아프고

삶이 무의미하고

정신적으로 텅 빈 상태가 오면

엄마가 만들어주신 '눙밥 숭늉'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나를 위해,

나의 영혼의 치료약인 '누룽지 숭늉밥'을 만들기로 했다.


전기밥솥으로

맵쌀, 찹쌀, 현미찹쌀, 귀리, 서리태를 넣어

지은 밥을

살짝 달구어진, 바닥이 두꺼운 전골냄비에

두 주걱 정도 올리고 넓고 얇게 펴 준다.

이때 한 두 숟가락정도의 찬물을 뿌려주고 펴면 예쁘게 펴지고

주걱에 밥알이 달라붙지 않아서 쉽게 펴진다.

냄비의 중앙에는 약간 두텁게 밥을 깔아주면 된다.

불은 약불에서 천천히 가열한다.

귀리는 미리 불려서 사용하는데

톡톡 씹히는 맛이 좋다.

누룽지 윗부분에 밥알이 촉촉할 때

한 번 뒤집어서 꾹꾹 눌러 노릇하게 구워주면 된다

누룽지 숭늉밥을 만들기 전에  

벌써 오며 가며 뜯어먹은 흔적을 보일 정도로 고소하고 맛있다.

범인은 쥐(인) 서방이다.

받아 논 쌀뜨물을 부어 뭉근하게 끓이면서

주걱이나 국자 뒷부분으로 누룽지를 살살 뭉개준다.

쌀뜨물을 받는 요령은

처음 쌀을 씻은 물은 버리고

두 번째는 약간 박박 문질러서

 뽀얀 물이 나올 정도로 해서 준비한다.

좀 더 진하게 쌀뜨물을 받기 위해서는

미리 받아놓은 쌀뜨물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첫 번째 쌀을 씻은 물을 버리고

박박 문지른 후 미리 받아놓은 쌀뜨물을 부어 

진하게 만들면 더 구수한 숭늉을 만들 수 있다.

* 방앗간에서 만드는 숭늉가루를 두 스푼 정도 넣어서 끓이면 진한 숭늉이 된다.

뜨끈한 누룽지 숭늉 한 그릇을 먹을 때면

입에서 절로 '아, 좋다!'라는 말이 연신 흘러나온다.

누룽지가 넉넉하게 만들어졌다면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누룽지를 튀기면 훌륭한 간식이 된다.

부드러워진 누룽지 위에 입자가 굵은 원당을 뿌려 먹으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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