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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일 식도락 음식 일기

햇 쑥으로 만드는 쑥차

by 모모

집 앞에는 아주 큰 저수지가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는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저수지다.

저수지 초입에 있는 넓은 자갈밭에는 몇 년 전부터 쑥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올해에는 집에서 바라보아도 푸른 쑥 무더기가 보일 정도로 많이 번져있다.



쑥을 캐러 가기 위해서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다.

얼굴에는 선 패치를 붙인 후 선크림을 넉넉하게 바르고, 손에도 선크림을 바른다.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착용하고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넓은 수건을 얹으면

얼굴 쪽은 준비가 끝난다.

남들보다 유난히 잘 타는 피부 덕분에 치러야 할 과정이다.

다음으로는 엉덩이방석, 칼, 간이 숫돌, 소쿠리, 물, 휴대폰을 준비하고

끈질기게 옷에 붙는 도깨비풀을 방지하기 위해

매끄러운 옷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고 출동한다.


두어 시간 정도 허리가 아플 만큼 캐다가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워

발목을 잡는 탐스러운 쑥을 물리치고 훗날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4월이지만 벌써 햇볕이 따갑고 허리가 아프기에

쑥을 캐는 것이 아니라 뜯다시피 해서 집으로 가져와

식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TV를 켜 놓고 다듬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고 몇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다듬은 후 이제 쑥을 씻어야 하는데 이 과정도 만만하지가 않다.

살살 흔들어가며 3회 정도 씻은 후

깨끗한 물에 식초 3T를 넣고 10분 정도 쑥을 담가두었다가

다시 3회 정도 씻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물질이 물에 뜨지 않을 때까지 세척을 해야만 한다.


힘은 들었지만 다듬어서 씻겨 놓으니 예쁘다.


대합을 넣고 쑥국을 끓여 먹을 양만큼 남겨두고 쑥차를 만들기로 했다.

대소쿠리 위에 망사천을 깔고 씻은 쑥을 펴고 다시 망사천을 위에 덮은 후

가장자리에 빨래집게로 집어 팽팽하게 만들어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린다.


2시간 정도 후 쑥이 시들해지면 1차 유념을 해 준다.

2시간 정도 후에 2차 유념을 하고 다시 2시간 후에 3차 유념을 하고

바싹 말린다.


유념은 시들해진 쑥을 모아서 왼손으로 누르듯 잡고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듯 비비는 과정인데, 이 과정을 통해

쑥향이 더 발향이 잘 되고 부드러워지며 이물질도 떨어져 나간다.


바싹 마른 쑥은 유념을 하면 다 부서져버리기에 시들할 때 해야 하는 과정이다.

햇 쑥은 회색빛이 돌고 시간을 두고 발효시킨 쑥은 약간 갈색을 띤다.

(좌:2025년 4월산 / 우:2017년4월산)

유념을 끝낸 쑥은 사과만큼의 크기로 꾹꾹 눌러가면 동글동글하게 뭉친다.

이때가 가장 뿌듯하다.

동그랗게 뭉친 쑥은 천 주머니에 넣어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두었다가

장마가 시작되면 주머니 채로 지퍼백에 담아 보관한다.

뜨거운 물을 부어 15분 정도 우려낸 후

따뜻할 때 마시면 몸에서 땀이 난다.

차를 우려 보면 햇 차는 신선한 쑥향이 나는 젊음이고

발효차는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향이 나는 울림이 있는 어른이다.

단오 전후로 채취한 쑥이 약 성분이 많다고 하지만

많이 쓰기 때문에 어린 햇 쑥으로 차를 만들면 향도 연하고

누구나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다.


집 주변에서 나는 식용 가능한 뿌리, 줄기, 잎. 꽃, 열매 등으로

수제차를 만들어 두고 번갈아가며 연하게 끓여 낸다.


'이거 무슨 찬데 맛있다!!'

이 말 한마디에 내 머릿속은 다음 차를 구상하고 있다.



해마다 쑥을 뜯어다 쑥차를 만들어 두고

오늘같이 벚꽃 잎이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춤출 때

우려내어 마시는 한 잔의 쑥차는 내게는 여유이고 충만 그리고 감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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