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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일 식도락 음식 일기

엄마의 시절 음식, 구수한 논고동 들깨찜

by 모모

그해 봄에도

엄마는 어김없이 방대한 양의 재료들을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하고 계셨다.


대서사와 같은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엄마가 첫 번째 하는 일은

지난가을 추수가 끝나고 텅 비어 있는 무논,

벼 밑동에 달려 있는 논고동을 잡으러 가는 일이다.

가끔은 어린 나도 언니가 신던 구멍 난 스타킹을 신고

주전자를 들고 따라나섰다.


경지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좁은 논둑길은 자칫 한눈팔면 논구덩으로 빠질 수 있기에

정신을 차리고 땅만 보고 걸어야 했다.

땅 한 뼘을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라

논둑길을 갉아내어 조금이라도 땅을 더 넓혀야 했으리라.


논고동이 살고 있는 논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물이 찰랑거리며 차 있는 논 중에 엄마가 들어가는 곳을 따라가면

어김없이 논고동이 있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약간 안개가 낀 날이면 땅 속에 있던

논고동이 먹이를 찾아 땅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벼 밑동에 붙어 있는 논고동은 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재미있었다.


잡아온 논고동은 입구가 넓은 항아리에 모으셨는데

가끔 들여다보면 촉수를 길게 빼고 움직이거나

항아리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며 풀을 뜯어 넣어주며 신기해했다.


이렇게 모아진 논고동이 주재료가 되고

다른 재료가 준비가 되면 논고동을 삶고,

우리는 구수한 냄새를 앞에 두고 둘러앉아 바늘로 논고동 알맹이를 빼냈다.



재첩은 시장에서 사던지 아니면 아침에 재첩국을 팔러 다니시던

할머니께 사서 준비를 하셨고 미더덕도 미리 준비를 하셨다.

뒷산에서 뜯어 온 고사리밥, 산나물을 듬뿍 넣으셨고

집 뒤에 심은 가죽나무순을 따는 것은 아버지 몫이었다.

밭에서 키운 부추와 대파도 듬뿍,

논고동찜에 꼭 들어가야 하는 방아잎도 넉넉하게 준비하셨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향긋한 냄새가 코를 따라 나에게 들어오는

들깨향이다.

찜에 들어갈 들깨를

돌확에 담고 동글동글한 몽돌로 굴리면서 갈았는데

우리는 서로 해보겠다고 순서까지 정했다.

불린 찹쌀도 같은 방법으로 갈아서 사용하셨다.

믹서기라는 신 문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 시절의 엄마들은 재료들과 함께 영혼까지 갈아 넣어서 음식을 만드신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큰 가마솥 안의 큰 거품이 '북덕 북덕'대는 소리가 되면

맛있는 논고동찜의 대서사가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알림이다.


잔칫날이 따로 없다.


아~

어떤 형용사로도 맛있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냥 행복한 맛이다.

온 가족이 함께 만들어낸 찜은

먹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고, 상상도 어려운 엄마의 맛이고

나의 맛의 고향이다.


<재료>

ㅇ우렁이 300g, 재첩국(시판용) 500g, 대합 300g, 생수 2L, 들깻가루 2컵, 찹쌀 2컵,

마늘 1컵, 가죽나물 두 줌, 콩나물 500g, 부추 300g, 방아잎 두 줌, 삶은 고사리와 산나물 500g

대파 2대, 고춧가루 50g, 양파 1개, 국간장 100ml, 천일염 약간, 통깨 3 스푼


<만드는 순서>

1. 찹쌀 2컵은 전날 미리 불려두고, 들깨도 깨끗하게 씻어 준비한다.

2. 냉동상태인 재첩국, 대합, 논고동은 전날 냉장 칸으로 옮겨 해동시킨다.

3. 해동된 논고동은 굵은소금 한 스푼을 넣고 바락 바락 주물러 씻어 놓는다.

4. 생수(육수) 2L를 찜솥에 붓고 팔팔 끓으면 대합, 논고동을 넣고 끓이면서 위에 뜨는

불순물은 걷어낸 후 재첩국을 넣어 끓인다.

5. 고사리와 산나물 말린 것은 미지근한 물에 30분 정도 불렸다가 끓는 물에 한 번 데쳐

찬물이 씻어 5cm 길이고 썰고, 가죽나물 데친 것도 찜솥에 넣어 한소끔 끓인다.

6. 콩나물을 넣은 후 비린내 방지를 위해 잠시 뚜껑을 닫고 한 번 끓인다.

7. 부추 4cm, 양파 1cm 두께, 대파는 어슷썰기, 방아잎도 두 번 정도 썰어 준비한다.

8. 믹서기에 물을 조금 넣고 들깨를 갈아 넣는다

9. 찧은 마늘, 고춧가루, 국간장, 천일염으로 간을 맞춘다.

10. 이제 마지막으로 찹쌀을 갈아 넣는다(찹쌀가루)

딸과 함께 후후 불어가며 한 술 뜨고

엄마가 계셔서 아름다웠던,

이 푸른 지구별에 다녀간 나의 엄마 흔적을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할머니에 대해 물어주는 딸로 인해 엄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봄바람을 타고 노란 송홧가루가 날리면

논에 물이 차고

산에는 고사리, 산나물이 소리 없이 자라고

밭엔 방아잎, 대파, 부추가 푸를 때쯤

우리 자매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엄마의 시절 음식 논고동찜.


오래된 가죽나무를 켜서 만든 붉은 마루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던 논고동찜은

행복이었고 그리움이고 내 영혼의 수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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