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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3일 식도락 음식 일기

꿀벌들이 한 짓

by 모모

오늘은 24 절기상으로 처서이다.

처서는 24 절기 중 14번째에 해당된다.

처서에는 모기 입이 돌아가서 공격을 하지 못할 정도로

온도 변화가 심하고,

더위가 물러가면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을 기대하는데

올해는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밭에 내려갈 때마다 소쿠리에 담아 오는 여러 가지 모양의

미니 수박들로 인해 잠시나마 더위와 거리를 둘 수 있어 행복하다.


지난해에

애플 수박과 블랙 망고 모종을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물과 영양을 주면서 키운 애플수박은

농사의 기쁨을 안겨줄 정도로 2~3kg 정도의 크기로 튼실하게 키워

몇 덩이를 맛있게 먹고 씨앗을 받아 두었다.

블랙 망고는 엄청나게 켜져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툭 떨어진 것이

설익었길래 먹지 못하고 씨앗 몇 개만 건져 두었다.


지난봄에

애플수박 모종을 사서 심었다.

제법 자랐을 때 아예 양파망에 담아 매달아 두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애플수박 구경하러 밭에 갈 정도이다.

경험상으로,

애플수박은 심고 45일 정도가 지나면 열매가 맺기 시작하고

열매를 맺은 후 45일 정도 지나 수확을 순차적으로 하면 된다.


애플수박은

껍질이 얇아 수박을 자르는데 힘을 쓰지 않아도 되고

연하고 사각거리는 붉은 속살에는 수분이 굉장히 많고 당고가 높다.

작은 것은 한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보관도 편리하다.

그런데....

지난해에 받아 두었던 애플 수박 씨앗과 블랙 망고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 사각틀에 넣고 기다렸지만

20일이 지나도 새싹이 나오지 않아서 포기하고

그 자리에 콩 씨앗을 심었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콩은 싹을 틔웠고 자란 콩 모종을 밭에 옮겨 심었다.

어느 날,

콩밭에 가보니 콩 대 사이로 수박 순이 바닥을 점령하면서 자라고 있었다.


콩 집에 수박이 얹혀 사는지,

아니면 수박 집에 콩이 얹혀 사는지 모르겠지만

콩도, 수박 순도 잘 자라고 있고 귀찮기도 해서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수박 순을 뽑지 않고 그냥 두었었다.


생각해 보니 수박 씨앗이 먼저 방을 차지하고 있었네.


남편에게 말했더니 가끔씩 물조리에 물을 주러 다니는 모양이다.


콩잎을 따러 밭에 가보니

엄청난 수의 꿀벌들이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사이로

모양은 럭비공인데 줄무늬가 있는 수박이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확해서 온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잘라보니

속살이 분홍, 노랑이 섞여있다.

먹어보니 아삭하고 상큼하고 수분도 많고 당도도 애플수박보다 높다.

드디어 오늘

블랙 망고 수박을 땄다.

원래 블랙 망고 수박은 아래 오른쪽 사진처럼

겉은 럭비공 모양에 속은 노란색이다

그런데 우리 콩밭에서 자란 블랙 망고 수박은 달랐다.

겉모양은 짙은 녹색에 럭비공 모양인데

단면으로 잘랐을 때

속살은 사진처럼 동그란 띠를 두른 특이한 모양이다.

그럼 맛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먹어본 수박 종류 중 최고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맛이고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색깔은 망고, 식감은 사각거리는 아삭함? 당도 또한 엄청 높다.

단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속살이 입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꿀벌들이 만들어낸 창작품 덕분에

불가마 더위에 특별한 수박을 먹으며 보낼 수 있어

꿀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 본다.


어, 그런데 수박들 이름은 뭘로 하지?


벌써 내년 수박 농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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