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도 길지도 않은 18년의 기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일본, 독일, 캐나다 엔지니어들과 수년간 일을 함께 해볼 수 있었다. 일본 엔지니어는 친절, 꼼꼼함, 메모, 근면함 표현할 수 있다. 모든 회의 내용을 메모하여 열심히 검토하여 회신을 해준다. 철저하게 공학에 기반하여 근거와 함께 결과를 제시하며 결과물을 볼 때면 항상 그들 안에 누적되어 있는 내공(노하우)이 느껴졌다. 당시 이들에게 워라밸은 안타깝게도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반면, 독일 엔지니어는 고집(때로는 아집), 자긍심(때로는 자존심), 철저한 워라밸을 위한 업무 효율성 추구를 실천했다. 그들은 하나의 일을 추진하기 위한 모든 정보가 모이기 전에 절대 일을 착수하지 않으며, 하나의 업무에 두세 번 일을 하지 않음으로 업무의 시간을 줄이며 생산성을 높이려 노력했다. 조직으로 일을 하기보다는 객체가 일을 한다는 개념이 더 강하였다. 업무가 매우 프로세스화 되어 있어서 절차(Rule과 Process)를 어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과도한 업무를 하지 않도록 제도화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대부분 유럽국가에서의 납기는 상당히 길다.
캐나다 엔지니어는 프로페셔널리즘, 창조, 노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캐나다의 엔지니어들은 아이언 링(Iron Ring)이라는 반지를 하나씩 갖고 졸업을 한다. 퀘벡 브리지는 설계와 시공계획의 문제에 기인하여 1907년 건설도중 붕괴하여 75명의 작업자가 사망하였다.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엔지니어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자 아이언 링을 세끼 손가락에 끼고 프로의 입장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에게 일을 하는 절대적인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하루의 일과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기한이 정해지면 프로답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업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물론 특정국가의 특정회사를 일반화하는 데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엔지니어링을 통한 설비의 공급을 정해진 기간 내에 특정한 성능을 보장하며 최소의 비용을 통해 최대의 이윤을 남기려 노력했다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그들의 업무 스타일(업무 시간, 업무 프로세스), 신념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어떻게 일을 하는가? 우리는 근면성실하게 빠르게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선택해 왔다. 방향보다는 속도를 중요시했다. 업무의 효율보다는 열심히 다 함께 하는 업무 스타일을 추구해 왔다. 그리고 업무의 성과보다는 관계와 체면을 더 중요시했다. 그리고 일본을 따라 배우며 그들의 노하우를 습득했다. 독일을 따라서 프로세스에 따른 일하는 문화도 도입을 했다. 점점 캐나다와 같이 프로처럼 일하고자 하는 개념도 도입을 하였다. 포스코 DX는 사원부터 부장까지의 직급체계를 프로로 단일화하였다. 이를 통해서 상하의 개념을 수평의 개념으로 전환하여 사원은 과장에게 기대고, 부장은 과장에게 일을 전가하기보다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발현되고 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의 기업은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관계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잔존해 있다. 수년 전 모시던 분께 공식 회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부족한 면을 드러내다가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회의는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고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찾거나 부족한 자원을 지원하기 위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 회식 또한 의무적으로 눈치를 보며 마시기 싫은 술을 억지로 마셔가며 참석을 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알아가므로 업무 간에 케미를 높일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접근의 방법의 개선이 필요하다. 네 명이 넘어가면 서로 눈치를 보며 진솔한 이야기가 감소하기 때문에 작은 규모로 교류를 하며 소통 간에 나온 고충은 기록 후 반드시 조치하여 그 경과를 피드백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물론 서로 관계가 좋아지면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서 소통이 수월한 것이 사실이다. 업무를 할 때, 관계가 좋은 사람, 관계를 맺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관계가 나쁜 사람, 이 들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업무는 업무일 뿐인데, 우리는 아직 업무에 사람 간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도가 크다. 우리는 회사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싸움이 아닌 일과 일의 마찰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한다.
한국 기업의 관계와 체면의 문화 때문에 킴 스콧의 완전한 솔직함(Radical Candor)이 발현되기에는 많은 세월이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기성세대(X세대 및 이전세대)와 Z세대 사이에 낀세대(M세대) 리더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근간을 일구신 기성세대 분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과거 성공의 방법과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머지않아 공정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Z세대가 현재의 M세대 리더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이어서 현재 임원인 X세대의 자리에 이를 것이다. Z세대 리더와 임원이 이끄는 미래 한국의 기업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공정성과 효율성에 민감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기업에 아직 남아 있는 관계와 체면의 좋은 부분만을 계승할 수 있을까? X세대(임원), M세대(리더)의 올바른 리더십이 지속적으로 발현된다면, 그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X세대와 M세대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리더십, 그리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리더십을 Z세대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아직까지 한국기업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뛰어난 성과와 함께 좋은 관계와 평판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그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어느 세대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이 나라의 다음세대인 Z세대가 미래에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선배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