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유년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께서 타지에서 근무를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안방에서 잘 때 MBC의 9시 뉴스 시그널송을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와 근처 전철역까지 자주 걸어갔고, 동네 뒷산에 함께 가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의 지인을 만나러 용산에도 갔었고 1호선 끝자락의 송도 유원지에도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탄을 사용했기에 새것을 넣고 헌 것 중 오래된 것을 버리고 다른 하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넣어서 새 연탄에 불이 붙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던 개 똥을 흙과 잘 섞어서 연탄재 쪽에 버리셨던 기억도 납니다.
유치원 졸업식 때는 막대사탕으로 꽃다발을 만들어서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탕을 하나하나 빼먹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린핑거(green finger)를 가지셨던 할머니는 옥상에서부터 집 안에까지 온통 초록 세상을 만들곤 하셨습니다. 매일 물을 주시고 분갈이를 하시고 여러 덩굴과 이름도 모를 꽃들로 할머니댁은 항상 가득했었습니다. 봉숭아(꽃말 : Touch me not) 씨주머니를 터트리고 분꽃의 검은색 동그란 씨앗을 모으는 것이 여름기간 하루 일과였습니다. 씨를 모으고 버리고 그다음 날 또 모으고 그런 것들이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도 함께 그린핑거를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국화를 길러서 오라는 숙제에 할아버지께서 키워주신 큼지막하고 곧은 줄기의 국화꽃으로 상을 타는 치트키를 쓰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댁의 한편에 핀 봉숭아 꽃으로 매년 분홍색 물을 손톱에 들였고 하얀색 명반이 뱀을 쫓는 데 사용된다는 말도 그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할머니와의 이쁜 추억을 이제는 고이 간직할 때가 되었습니다. 수년 동안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요양병원에 계실 때 몇 번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거리도, 시간도 어떻게 보면 제한될 것이 없는데, 이렇게 찾아뵙지 못한 것은 할머니께서 주셨던 사랑과 할머니와 보낸 시간들을 어느새 잊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전의 좋은 기억들이 더 잊히기 전에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