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부정한 다리를 갖고 있다.
남자임에도 곧은 다리를 갖은 사람들을 보면 항상 부러웠다.
여름이 다가오고 반바지를 입을 즈음이 되면
나는 구부정한 다리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9월 중순, 가을의 중턱에 나는 오늘도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물론 길거리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바지와 치마의 길이는 길어졌고
유독 나의 구부정한 다리가 더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왜 나의 다리는 이렇게 구부정하게 되었을지 생각해봤다.
개인적 여행의 경우와 회사에서 출장을 해외로 나가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다리는 플라터너스 나무처럼 곧은 것을 줄곳 보게 된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잠투정을 하며 버둥거리는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 조금은 알고 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어릴때 업어서 키운다.
나의 구부정한 다리는 내가 어렸을 때 무거운 나를 힘겹게 업고
포대기로 칭칭 감아 떨어지지 않게 하며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던
어머니의 사랑 증표였다.
우리는 줄곧 주어진 나의 상황, 처지, 키, 얼굴 생김새,
심지어 다리의 모양까지 그 원인을 남의 탓으로 끊임 없이 돌리려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나의 나됨이 있기까지 드러나지 않았고 잊혀져 있었던
많은 이들의 수고와 노력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