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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식가용 Sep 16. 2024

왜 나에게 이런 일이?

 814만 5천 분의 1

로또 1등 당첨 확률이다. 요즘 보통 로또를 자동으로 1만 원 정도 구매하면 81만 4천5백 분의 1이 된다.

재생불량성빈혈에 확진될 확률은 100만 분의 3 정도다. 이 3명 중에 나처럼 초중중은 100만 분의 1 정도 된다.

로또 1등이 되려면 벼락을 2번 맞을 정도의 확률이니 복권을 구매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 확률보다는 조금 낮지만 당첨(?)이 되어 확진이 되었다.

 도대체 왜 내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기에, 아니면 전생에 나라에 해를 끼쳤길래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싶었다.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다고 어깨 으쓱해지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여자친구도 생기고 이제 돈을 모아 내 인생을 설계하려 하는 시점에 남들도 모르는 병에 걸리니 흔히 말하는 멘탈이 붕괴되려 했다.

 회사사람들, 친구들, 지인들은 "그게 무슨 병이야? 다 나을 순 있어? 힘내"라는 말을 하는데, 어디서 모여 회의라도 했는지 같은 질문을 거의 100명 가까이 해댔다. 거기에 처음엔 답을 했는데 20명 넘어가서는 "저도 알아가는 중이어요..."라고 얼버무리게 되었다.

10년이 지나고 다른 지인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 주위에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무슨 말을 그 사람에게 해야 마음이 안 상할까? 네가 경험자니 이야기해 줘"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힘내라는 말보다 네가 정말 힘들고 마음이 고통받을 때 꼭 연락해. 맛있는 거 사들고 갈게."라고 말했다. 어차피 당사자가 아니면 큰 관심이 없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쁘다, 이기적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다들 자기 인생이 제일 힘들고 스스로도 이해하기 위해 80년 가까이 답을 찾아 사는 게 인간이라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수많은 전화통화, 문자와 병문안은 입원한 지 채 10일이 지나지 않아 뚝 끊겼다. 간혹 오는 것이 회사에서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한 문의사항일 뿐이었었다.

 며칠은 밥을 잘 먹지 못했다. 모든 것이 짜증 나고 싫었다. 나는 되라는 복권은 되지 못할망정 남들이 기대수명을 다 살고 나서 겪는 큰 병을 20대에 겪었다는 것에 모두를 원망했다.

그다음엔 내가 건강관리를 못해서 그런가 싶었다. 술을 자주 마셨고, 담배도 많이 폈다. 그럼에도 스스로 생각하는 건 "다른 사람은 더 멋대로 사는데 건강만 하네..."라고 마음속에 채찍질을 해댔다.

하지만 병동 주변에 환우들을 보고 마음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19살에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린 고등학생부터, 온몸이 근육질로 식단조절도 완벽히 하다 쓰러진 림프종에 걸린 경찰관 아저씨, 학교에서 수업 듣다가 픽 쓰러진 백혈병에 걸린 17살 고등학생 등등.. 병원에는 정말 다양한 사연이 있는 환우들이 많았다.

그들도 나처럼 재수가 없어서 걸렸을까? 뭐가 원인일까? 되뇌었을 것 같다.

나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준 간호사분께 질문했다. "아픈 환우분들이 참 많네요..." 하니까 이렇게 대답을 해주신다. "대한민국 시민 3명 중 1명은 암에 걸려 사망해요. 20대시니까 오히려 이때 아팠다가 나으면 건강하게 더 오래 잘 사니까 걱정 말아요"

 이 대답이 내가 투병생활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인간은 언젠가 아파서 죽는 건 사실이다. 이 것을 이겨내기 위해선 내 의지도 상당히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있는 병동은 아니지만 소아과 병동에는 2살짜리, 3살짜리 아이가 백혈병과 싸우는 아이들이 수백 명도 더 된다고 했다.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내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겠지 하니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아 내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행동을 했구나.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이겨낼 플랜을 세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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